찬성표 예측 뛰어넘는 수준… 박지원 "와우"에 좌중 일순 '술렁'
  • 예상대로의 결과였지만 예상보다 큰 표차였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진 9일, 긴장감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본회의장의 분위기 속에서도 표결의 결과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오후 3시 본회의에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은 거의 전원이 착석했다. 이들 야당 의원들은 표정은 엄숙하게 관리했지만, 서로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행동은 평소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뒤늦게야 본회의장으로 들어왔다. 본회의장으로 들어온 다음에도 서로 간의 인사나 대화는 없이, 팔짱을 끼고 허리를 세운 채 앞만 바라보는 등 여실히 경직된 모습이었다.

  •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김관영 제안설명… 여야 침묵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 들릴 듯

    이날 본회의의 유일한 의사일정인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고,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제안설명에 들어갔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제안설명 외에 어떠한 의사진행발언도, 어떠한 5분 자유발언도 허용되지 않았다. 유일한 발언자가 된 김관영 원내수석은 다소 긴장한 듯 "오늘 국회는 대통령이 뽑은…"이라고 말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목소리를 가다담으며 "오늘 국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대단히 안타까운 순간에 있다"고 이어갔다.

    김관영 원내수석은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혐의에 관해 거론한 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손상된 헌법질서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자,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장정"이라며 "국민의 엄중한 명령에 따른 탄핵 결정은 헌정의 중단이 아니라 헌정의 지속"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 표결함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인연이 아니라, 오직 헌법과 양심·역사와 정의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해서 부디 원안대로 가결해달라"며 "의원 여러분이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호소했다.

    김관영 원내수석이 제안설명을 하는 동안 본회의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함을 유지했다. 흔히 눈에 띄던 이석이나 양옆 동료 의원과 대화 나누는 의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원이 앞만 바라보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평소 의원석에 설치된 모니터 앞면에 각종 선전·선동의 구호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던 야당 의원들은 이날 본회의에서는 아무런 퍼포먼스도 하지 않았다.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낙관하는 가운데, 불필요한 행동으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역력했다.

    이처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는 태도는 이후로도 계속돼, 김관영 원내수석의 제안설명이 끝났을 때 "잘했다"는 추임새도 평소보다 현격히 작은 목소리로 소수의 의원들만 외쳤다.

  • 친박의 맏형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를 마친 뒤 개표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곁에는 이우현 의원.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친박의 맏형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를 마친 뒤 개표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곁에는 이우현 의원.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의총서 "반대" 호소했던 최경환 투표불참… 체념했나

    제안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투표가 시작됐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투표를 마친 뒤 개표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유일하게 투표에 불참한 의원도 친박계에서 나왔다. 300명 의원 중 진박(眞朴)으로 분류되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만 투표에 불참해, 이날 투표 수는 299표를 기록했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앞선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단돈 1원도 자신을 위해 챙긴 적이 없는 지도자"라며 동료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다.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한 자신이 정작 반대표를 던지지 않고 그냥 본회의장을 떠났다는 것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체념했다는 분석이다.

    당 지도부로서 차마 먼저 본회의장을 떠날 수 없는 새누리당 친박계 지도부 역시 체념한 태도가 역력했다.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은 본회의장에 있는 내내 아무런 말도 없이 앞만 응시하거나, 손깍지를 끼고 머리를 기대고 있는 등 허탈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원진 수석최고위원은 답답한 듯 도중에 투표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석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반면 정진석 원내대표를 위시한 원내지도부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를 대비하는 듯 긴박한 움직임이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경우 소추위원을 맡게 될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투표와 개표 도중 수시로 정진석 원내대표의 자리로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논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수석최고위원 등 친박계 지도부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개표가 진행되는 도중 허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수석최고위원 등 친박계 지도부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개표가 진행되는 도중 허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친박계 미리 자리 뜨는 등 결과는 예견… '찬성 234' 결과에는 "와~"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점점이 자리를 떴다. 새누리당 비박계와 민주당·국민의당 의원 등이 남아서 개표를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하는 도중에도 의원석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는 대조적인 풍경을 보였다.

    정진석 원내대표 주변의 원내지도부는 김광림 정책위의장·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민경욱 원내대변인 등이 둥글게 모여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반면 통로 건너편의 당 지도부는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이 서로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멍하니 앞만 바라봐 대조적이었다.

    감표위원으로 지명된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개표가 끝나갈 무렵, 뒤돌아서더니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손바닥을 펴서 숫자 2, 3, 4를 연속해서 표시해보이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허리를 세우고 팔짱을 낀 채 개표 현장을 응시하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와우" 하는 탄성을 내지르면서 비로소 안도한 모습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감표위원이) 왜 자꾸 신호를 보내느냐"며 "개표 결과는 의장이 발표하는 것"이라고 꾸짖는 사이, 개표 결과가 담긴 종이는 의사국장을 거쳐서 정세균 의장에게 전달됐다.

    정세균 의장은 "총 투표 수 299표 중 가(可) 234표, 부(否)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순간 세월호 유가족 등이 들어찬 방청석에서는 박수·환호와 함께 "촛불국민 만세"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정작 의석은 고요함을 유지했다. 여당 의원들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담담한 반응이었다.

  •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찬성표가 234표가 나오자, 의사봉을 들어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오후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대한 찬성표가 234표가 나오자, 의사봉을 들어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정세균 "탄핵안 국회 손 떠나… 나라 안정에 힘 모으자"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됐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 이어, 역시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포한 국회의장이 된 정세균 의장은 산회를 선포하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 자리에 있는 여야 의원들은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참담할 것"이라며 "더 이상 헌정 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이어 "탄핵안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며 "지금 이 순간부터는 국회도 국정의 한 축으로서 나라가 안정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것은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정치적 결단 덕분이었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일부 방청객들은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드러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주로 민주당이 할당한 방청권을 받아 입장한 이들 방청객들은 탄핵안 가결이 확정되자마자 국회경위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도 공범이다" "새누리당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일으켜 토사구팽(兎死狗烹)과 같은 본색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