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견을 전제"했지만 청와대와의 긴밀한 교감 고려하면 메시지 담겨 있다는 분석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부결돼도, 대통령이 당초 언명한대로 내년 4월에 퇴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이와 같은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현 대표는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4월에 자진 사임할 의사를 국민 앞에서 직접 공식 선언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정치권은 내년 6월 조기 대선 체제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정현 대표는 저녁 8시 20분 무렵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의원들이 탄핵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4월 퇴진~6월 대선'을 제대로 이행했으면 좋겠다"며 "대통령이 당론에 공감했다면 탄핵이 부결되더라도 그 정신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견을 세게 말씀드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뉴스통신사와의 통화에 이어 이례적으로 늦은 시간에 국회에서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해 같은 메시지를 반복 전달한 것에는 무언가 숨은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일차적으로는 9일 본회의에서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탄핵이 부결되더라도 '질서 있는 퇴진'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새누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부결을 호소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정현 대표는 "이번 탄핵은 '질서 있는 퇴진'이냐, 강제 퇴진이냐의 선택"이라며 "내년 4월 사임, 6월 대선이라는 예측가능한 정치 일정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예측불가능한 헌재의 심사 및 대선 일정에 따른 극심한 혼란으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수·안정을 희구하는 성향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천성적으로 예측불가능성과 혼란을 싫어한다. 탄핵이 가결될 경우, 언제 나올지 모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지는, 정국의 극도로 불안정성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아울러 탄핵이 부결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애초 공언한 '여야 합의에 의한 질서 있는 퇴진'을 '내년 4월'이라는 시한까지 못박아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뜻을 내비침으로써, '임기 고수'와 '촛불 시위'의 정면충돌이라는 혼란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탄핵이 가결되면 정국의 불안정성과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이정현 대표는 "탄핵이 의결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은 헌법대로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언제 나올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예상외로 일찍, 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이 내다보는대로 내년 1월에 나와버리기라도 하면, 여권은 예상치도 못했던 3월 조기 대선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마땅한 대권 주자를 준비하지 못한 새누리당으로서는 재앙에 가까운 상황일 수 있다.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것인지, 새로운 보수정당을 창당하는 것인지, 비박계 보수신당에 올라타는 것인지, 무소속 국민후보로 대선을 준비하게 될지 모든 '로드맵'이 불투명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도 몸풀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정국의 예측불가능성을 완화하고, 차기 대선을 위한 안정된 준비 기간을 가지려면 '4월 퇴진~6월 대선'이라는 '질서 있는 퇴진'이 낫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정현 대표가 늦은 저녁 시간에 이례적으로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한 것에 대해서는 단순한 '사견'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관측도 많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번 주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4차 대국민담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8일까지 대통령의 메시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지는 9일 메시지를 발표한다는 것도 여러모로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에는 6~7일 중 4차 대국민담화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에는 4일 새누리당 비박계가 전격적으로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관계없이 9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입장 선회로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탄핵안을 부결시켜주면 내년 4월에 사임하겠다"고 밝히고, 비박계가 이에 따라 부결 투표를 하게 되면 이것은 극렬 야권 지지자들의 시각에는 그야말로 '부역'으로 보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정현 대표가 메시지를 발표하게 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정현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분을 (대통령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며 "사견을 전제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 사이의 긴밀한 관계와 교감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뜻이 투영돼 있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