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도적인 세력에게 비인도적인 대접해야”…1991년부터 실전 지휘관 두루 경험
  • ▲ 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 ⓒ美캘리포니아大 방송국 관련보도 화면캡쳐
    ▲ 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 ⓒ美캘리포니아大 방송국 관련보도 화면캡쳐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美대통령 당선자가 국방장관으로 내정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야 이미 유명인물이라 그렇다지만 다른 나라에서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그의 경력과 신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N.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1950년 9월 8일 워싱턴州 풀먼에서 태어났다. 워싱턴州 리치몬드에서 자랐으며, 1968년 콜럼비아 고교를 졸업한 뒤 1969년 美해병대에 사병으로 입대한다.

    美해병대를 전역한 뒤 센트럴 워싱턴大에 입학,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 재학 중 ROTC 생활을 하고 대학 졸업 뒤인 1972년 1월 1일 다시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다. 이후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44년 동안 군 생활을 하게 된다.

    중위 시절 그는 서태평양을 담당하는 美해병 제3원정군 소속 제3해병사단에서 소총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대위 때에는 로즈 아일랜드州에 있는 美해군대학 예비스쿨의 교관, 제1해병연대 소총중대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소령 때에는 오레곤州 포틀랜드의 모병소 담당자로 근무했다.

    1991년 2월 ‘제임스 매티스’ 중령은 제7해병연대 제1대대장으로 ‘리퍼 특임대’에 배속돼 걸프 전쟁에 참전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걸프 전쟁의 최선봉은 美해병대였다. 그의 본격적인 ‘참전 경험’이 시작됐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뒤 11월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제7해병연대장이던 ‘제임스 매티스’ 대령은 제1해병원정여단의 선봉을 맡아 현지로 투입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제58특임대’를 이끌면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소탕 작전을 벌인다.

    당시 유명했던 일화가 작전에 투입되기 전 지친 장병들을 모두 재우고, 연대장인 자신과 측근 참모들이 직접 불침번을 서면서 장병들을 지켰던 일이다. 또한 야전에서는 직접 야전식량(MRE)을 데우고 경계근무를 감독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으로 유명해졌다. 이런 이야기는 미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03년 3월 ‘대량살상무기’ 의혹으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제1해병사단장으로 이라크에 투입됐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의 용맹은 잘 드러났다. 특히 2004년 이라크 팔루자 일대를 제압,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라크 전쟁을 냉소적으로 묘사한 미국 드라마 ‘제네레이션 킬’에서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총격전이 벌어지는 최전방까지 와서 직접 지휘하는, 매우 저돌적이고 단호한 사단장으로 묘사됐다. 드라마에서 그는 연대장 한 명을 현장에서 보직해임 하는데,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매티스 소장은 바그다드 공략에 나선 제1해병연대전투단의 진격 속도가 늦다는 이유로 연대장 조 다우니 대령의 보직을 그 자리에서 해임해 버렸다.  

  • ▲ "아군이 될지 적이 될지, 네가 선택하라!" 2004년 이라크 침공 당시 제임스 매티스 제1해병사단장이 팔루자 족장들을 불러놓고 한 말. 그의 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SNS 핀인터레스트 화면캡쳐
    ▲ "아군이 될지 적이 될지, 네가 선택하라!" 2004년 이라크 침공 당시 제임스 매티스 제1해병사단장이 팔루자 족장들을 불러놓고 한 말. 그의 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SNS 핀인터레스트 화면캡쳐


    그리고 이라크 팔루자 작전 당시에 나왔던 ‘제임스 매티스’ 소장의 발언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와 사담 후세인의 친위조직인 ‘사담 페다인’이라는 민병대가 곳곳에서 미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팔루자 일대의 부족장들을 모아서 만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평화를 위해 여기에 왔다. 보시다시피 포병대도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곡히 바라는 점은 내 뒤통수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여기 있는 모두 죽여 버리겠다.”


    ‘제임스 매티스’ 소장이 이끌던 제1해병사단 관할지역에서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2004년 5월 한 결혼식장을 이라크 정부 잔당들의 모임으로 착각해 UAV로 공습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42명이 숨졌다. 하지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부수적인 피해’라면서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이 지휘하는 제1해병사단이 귀국할 때 그는 ‘중동 전문가’로 불릴 정도로 현지 사정에 정통해 있었다고 한다. 귀국 후 진급한 ‘제임스 매티스’ 중장은 해병전투개발사령부의 사령관을 맡게 된다.

    ‘제임스 매티스’ 중장의 발언을 왜곡한 언론 보도가 이때 나온다. 2005년 1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대테러 전략 관련 포럼에서 그는 이런 발언을 한다.

    “여러분이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가게 된다면, 베일(니캅)을 두르지 않았다고 부녀자들을 5년 동안 두드려 패던 인간들(탈레반 종교경찰)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주기 싫다. 이런 자들과 전투를 벌이며 총을 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그들에게 총을 쏴주는 것은 그런 X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위 ‘진보성향’이라는 美언론들은 이 발언 가운데 “현지인과 전투를 벌이며 총을 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라는 말만 보도하며, 매티스 중장을 ‘미친X’으로 몰아붙였다.

    2006년 5월 31일 ‘제임스 매티스’ 중장은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군단장급)에 임명됐다. 2007년 9월 11일에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조시 W.부시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美합동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됐다. 美상원은 9월 28일 그의 임명을 승인한다.

  • ▲ 2011년 12월 15일 C-17 수송기를 타고 바그다드 상공을 날면서 대화를 나누는 마틴 뎀시 당시 美합참의장과 제임스 매티스 당시 美중부군 사령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 2011년 12월 15일 C-17 수송기를 타고 바그다드 상공을 날면서 대화를 나누는 마틴 뎀시 당시 美합참의장과 제임스 매티스 당시 美중부군 사령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제임스 매티스’ 대장은 여전히 해병대에 있었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초 그를 美해병대 사령관에 임명한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데이빗 페트라우스 육군 대장의 후임으로 중부사령부 사령관에 임명한다. 미국의 중동 정책을 총괄 관리하는 합동군 사령관 자리였다.

    하지만 ‘제임스 매티스’ 대장과 오바마 정부 간의 ‘궁합’은 잘 맞지 않았다.

    “필요하면 적의 목을 따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제임스 매티스’ 대장의 눈에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란과 협상하고, 이라크에서 대책 없이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재스민 혁명’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북아프리카 일대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은 ‘비정상’으로 보였다.

    결국 ‘제임스 매티스’ 대장과 오바마 정부의 ‘고위층’ 간에 심한 마찰이 생기면서, 2013년 5월 22일, 44년 동안 몸 담았던 해병대를 떠나게 된다.

    이상이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간략한 이력이다. 올해 예순 여섯 살인 그는 ‘미혼’이다. 그를 모셨던 美해병대 출신 장교와 사병들은 그를 가리켜 “해병과 결혼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반인들의 선입견처럼 ‘남성우월주의자’라거나 ‘폭력을 신봉하는 전쟁광’도 아니다. 부하들에게는 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프로답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다만 “대신 만약에 대비해 상대방을 어떻게 죽일지도 고민하라”고 가르쳤다.

  • ▲ 2013년 3월 25일 전역식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과 척 헤이글 당시 美국방장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 2013년 3월 25일 전역식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과 척 헤이글 당시 美국방장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미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독서광이자 지식인이기도 하다. 지인들은 그의 집 서재에 군사, 역사, 철학 관련 서적 7,000여 권이 있으며, 이를 모두 여러 차례 읽은 것에 감탄하면서, 그 이야기를 주변에 전했다.

    전역한 뒤 美방산업체 ‘제네럴 다이나믹스’의 이사로 취업하고, 씽크탱크 ‘후버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군인들을 위한 신기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 있는 한 바이오테크 회사의 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식과 실전 경험을 겸비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이 美국방장관이 되면, 미국의 군사전략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한국과 일본의 군사전략도 상당 부분 바뀔 가능성이 높다. 2005년 1월 포럼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비인도적인 세력에게는 비인도적인 대접’을 해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최악의 비인도적 세력’인 김씨 일가와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예전보다 더욱 공세적인 전략을 취하자는 미군의 권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15’가 일부 수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이력으로 볼 때 美국방부가 한국군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바로 ‘실전 경험’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군은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을 육성하는데 관심을 끊은 지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말로는 “실전 같은 훈련”을 외치지만, 실탄 사격을 포함한 대규모 기동 훈련, 실제 도심에서의 작전 훈련, 해외에서의 전투 경험 쌓기 등에는 무관심하다.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할 때에도 병력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현재 한국군 내부 분위기로 볼 때 그나마 실전경험이 있는, 2013년 1월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투입된 해군 특전단 요원들이 해군에서 ‘장성’까지 진급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 ▲ 美중부군 사령관 시절 이라크 전장을 직접 찾은 제임스 마티스 당시 해병대장. ⓒ美국방부 공개사진
    ▲ 美중부군 사령관 시절 이라크 전장을 직접 찾은 제임스 마티스 당시 해병대장. ⓒ美국방부 공개사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실전 경험이 있는 고위급 장성이 단 한 명도 없는 한국군이 영 미덥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김일성 때부터 ‘외화벌이’와 ‘동맹 지원’을 명목으로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 파견돼 실전 경험을 쌓은 장성들이 많은 북한 인민군을 보는 시선은 과거의 美국방장관과 다를 수 있다.

    현재 한국 언론들은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할 때 그의 별명이 ‘미친 개’라는 점만 부각시킬 뿐 “왜 ‘미친 개’라고 하는가”라는 점에는 무관심하다.

    1775년 창설된 美해병대의 마스코트는 ‘불독’이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다른 별명은 ‘지옥에서 온 개’다.

    한국 언론들은 美해병들이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을 ‘미친 개’라고 부르는 것이, 그가 ‘짖는 개’가 아니라 ‘짖지 않는 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