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과 非朴들의 착각

    구차하게 촛불 쬐려 하다 횃불에 타죽는 수 있다.

    이강호       
      
      
    지금 좌익들이 주도하고 있는 야당과 촛불 선동 패거리들은 공공연히 ‘혁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이 모셨던 노무현이 존경한다던 모택동(毛澤東)은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이란 사람들과 만찬을 즐기는 것이 아니며 시를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자수를 놓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세련되지 않으며 여유롭고 점잖을 수 없으며 온화함과 친절, 정중함과 절도 그리고 고결함 따위와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이란 폭동, 즉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타도하는 폭력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혁명'의 내심의 본질이다. 이런 속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이 기회를 포착해 난장을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벌어진 싸움에 중간지대가 있을 것 같은가?

    어떤 싸움이든 격화되면 가장 먼저 중간지대부터 정리되어 사라진다. 하물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이면에는 좌우의 근원적 대결이 가로놓여 있다. 적당한 타협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이한 타협은 그냥 투항일 뿐이며, 모택동식 혁명론에는 정치적으로 투항한다고 해서 살려두는 법 같은 건 없다. 맞서야 할 때 맞서지 않으면 결국은 제물이 되고 만다.

    모택동의 ‘16字 戰法’이 있다.

    적퇴아진(敵退我進) : 적이 물러가면 진격한다.
    적진아퇴(敵進我退) : 적이 진격하면 물러난다.
    적주아요(敵駐我搖) : 적이 안주하면 요란을 피운다.
    적피아진(敵疲我進) : 적이 피로하면 진격한다.

    저들은 박근혜 정권과 여당이 안주했을 때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지금 저들은 박근혜 정권과 여당이 약점과 피로감을 노출하자 진격하여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다.
    촛불에 놀라 민심 존중 운운하며 물러선다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이 같은 순진한 발상이다. 좌익들은 상대가 물러나면 오히려 더 쫓아온다. 저들이 물러나는 것은 저들을 몰아세울 때일 뿐이다.

    그 누구이든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마치 집단 린치와도 같은 도를 넘은 행패에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얻어터지는 식의 꼴을 보이는 것은 대중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다고 자신의 진정성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대중들은 마냥 꼬리를 내리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은 자신을 이끌만한 존재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된다.
    잘못이 있었던 점에 대해선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지만 거짓과 뻥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안하무인에까지 굴복해선 안 된다. 맞서야 한다. 그래야 당장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세력을 보존할 수 있으며 권토중래(捲土重來)가 있다.

    지금 김무성과 비박들의 모습에는 그런 결기가 없다.
    지지도 4%의 대통령과 함께 망할까  떨려서 촛불이라도 쬐려 하는 꼴이다.
    그러나 구차하게 촛불 쬐려 하다 횃불에 타죽는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적 도리를 지켜야 한다. 배가 침몰할 듯 흔들린다고 바다로 먼저 뛰어들어 탈출하는 건, 사는 길이 아니다. 현명하지도 않을뿐더러 치사한 짓이다. 대중들은 비겁함을 보이는 자들을 지도세력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금과 같은 상황임에도 존재하는 4%에 대해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

    드러난 그 4% 뒤에는 지금은 실망감에 단지 입을 닫고 있을 뿐인 또 다른 다수가 존재한다.
    거짓과 뻥의 정체가 드러나며 그에 휘둘린 자들이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때 4%는 40%가 되고 40%는 또 60%가 될 수 있다. 잊지 마라! 여론은 변한다.

    보수의 결집이 시작되고 있다. 보수는 참을 때는 참지만 한번 분노하기 시작하면 노도(怒濤)의
    쓰나미가 된다.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쓰나미에 쓸려나가고 싶지 않다면 김무성 등은 이제라도 다시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