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장 관계없이 탄핵절차 돌입 유력…가결돼도 부결돼도 난감한 상황
  •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의. 당내 비박계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의. 당내 비박계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야당이 오는 9일 탄핵을 강행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친박의 편을 들수도 그렇다고 야당의 편을 들수도 없는 비박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탄핵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그에 따른 책임이 비박계로 몰릴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가 협의해서 퇴진 시기를 정해달라고 했지만, 여야 간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비박계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이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서 (비박계가) 무척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 같다"면서 "현재로써는 어떤 경우의 수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4월 말에 퇴진한다'는 당론에 따르면서도 대통령이 4월로 시기를 못박아 다시 발표해야만 탄핵에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퇴진 시기를 둘러싼 협상 없이 곧바로 9일에 탄핵소추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은 채 탄핵안 처리가 가까워져 오자, 정치권에서는 내주 중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 정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월 말 퇴진을 직접 발표하거나 혹은 국회 합의 불발을 이유로 거부할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지 간에, 두 가지 경우의 수 모두 탄핵소추안 상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탄핵안 표결에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비박계로서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시기를 둘러싼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내주중으로 다시 입장을 표명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시기를 둘러싼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내주중으로 다시 입장을 표명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4월 말 퇴진'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경우

    우선 비박계의 주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그대로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 난점이다. 비박계의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4월 말 사실상 퇴진을 직접 언급해달라"는 것이지만,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3차 대국민담화와 배치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회가 퇴진 시기를 정해주면 이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현재 퇴진 시기를 정한 정당은 새누리당뿐이다. 박 대통령이 4월 말 퇴진을 직접 언급하면 국회와 합의도 없이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주장을 또다시 밀어붙이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청와대는 이미 거국중립내각 총리에 김병준 내정자를 임명할 때 같은 경험을 한 번 한 바 있다. 청와대가 4월 말 퇴진을 직접 언급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같은 위험성을 감수한다 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언제든 탄핵안 표결에 동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친박계를 압박해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4월 말 퇴진을 외친다면, 비박계 역시 이 시점에서는 탄핵 정국을 끌고 갈 명분이 사라진다. 탄핵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친박계와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비박계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 및 친박계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안으로 비대위를 구성해 당을 쇄신하는 것이 최선의 카드로 보고 있지만, 아직 차기 비대위원장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정현 대표 역시 1월 21일 전당대회를 아직 주장하고 있다. 캐스팅 보트의 애매한 입장이 거꾸로 애매하게 양쪽에서 비난받는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청와대가 '4월 말 퇴진' 불가론 들고 나온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4월 말 탄핵안을 안 받을 경우 비박계의 입장은 더욱 난처하다. 비박계는 당초 7일까지 박 대통령이 입장을 꺼내놓지 않으면 9일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박 대통령이 국회의 합의를 거듭 주장한다면 비박계는 야당을 극적으로 설득하는 방법 외에는 탄핵소추안 표결에 동참하는 방법밖에 없다.

    당초 비상시국회의 등을 통해 밝힌 탄핵 동참 의원의 규모는 30~40명 규모다. 탄핵소추안의 가결은 일치 단합해 박 대통령을 몰아낸 셈이라는 점에서 새누리당을 분당으로 이끌 가능성이 커 부담스럽다. 부결되면 당시 비상시국회의 등에서 밝힌 숫자에 훨씬 못 미쳐서 곤혹스럽다.

    결론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탄핵소추안의 표결이 현실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캐스팅 보트를 쥔 비박계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탄핵소추안 처리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탄핵소추안 처리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비박계 두려운 야 3당은 공조…묘수는 없을까

    이같은 분석의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야 3당의 공조다. 정치권 일각에서 탄핵정국을 친박과 나머지의 구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야당의 3당 공조만 이뤄지고 있다. 야당은 비박에 대한 공조 대신 압박의 수위를 연일 높여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위해 탄핵 찬성 우선, 자진사퇴 우선 등으로 기준을 나누고 명부를 작성해 게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하태경 의원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 탄핵안에 찬성한 것으로 분류된 '탈당파' 김용태 의원마저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야권이 비박과 공조 대신 압박을 하는 이유로는 서로 셈법은 다르지만 향후 대선정국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비박계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야권으로서는 당장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그 책임을 반드시 비박계에 떠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탄핵정국을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에서,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자칫 주도한 자신들에게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비박계는 야권의 확장성에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어, 야권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비박계의 세를 크게 꺾어야 한다는 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비박계가 대선 구도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눈엣가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탈당에도 선을 긋지 않는 등 제3 지대도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해왔다.

    현재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는 새누리당과의 양자대결,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까지 가세한 삼자대결 모두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친문진영에게 최대의 변수는 제3지대일 수밖에 없다. 특히 문 전 대표의 확장성을 가로막으면서 중도층을 흡수하는 경우가 최악이다.

    국민의당에게는 제3 지대가 설 경우 뒤따를 주도권 싸움을 생각한다면 탄핵정국에서 비박계를 미리 공격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 비박계와 안철수 전 대표 간 연대를 할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먼저 세를 약화해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도움이 된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묘수'가 필요한 시점에 비박계의 다음 포석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다. 4일 현재 새누리당 비박계는 김무성, 심재철, 주호영, 유승민, 김문수, 권성동, 이종구 의원 등이 참석한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향후 대응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