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법인세 증세 저지… 野 소득세 과표구간 신설과 누리과정 특별회계 '빅딜'
  • 2017년도 예산안이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2017년도 예산안이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사상 처음으로 총액 400조 원 규모를 돌파한 2017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법정시한을 약 4시간 넘긴 3일 새벽 3시 57분 본회의를 열어 400조5000억 원 규모의 2017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비록 법정시한을 약간 넘기긴 했으나 그 차이가 미세하고, 예산심의 과정에서 정국의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40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예산안이 통과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예산 규모는 처음으로 200조 원을 돌파한 2005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두 배로 뛰게 됐다.

    우리나라의 예산 규모가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한 것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의 일이다. 이후 친노·친문세력이 정권을 잡고 포퓰리즘 정책이 판을 치면서 재정지출 규모가 급증해 불과 4년 만인 2005년 200조 원을 돌파한 바 있다.

    ◆경기 진작에 초점, SOC↑ 국방→ 복지↓… 문화·체육·관광은 삭감 직격탄

    이처럼 예산 규모가 해마다 급증하는 가운데,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민생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돋보였다는 지적이다.

    경기 부양과 직결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당초 정부가 편성한 규모는 21조8000억 원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22조1000억 원으로 3000억 원 증액됐다.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국가기간망인 철도 부설에 4000억 원을 더 쓰기로 한 결정이 인상적이라는 평이다.

    SOC에 추가되는 비용은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 복지 분야 예산을 130조 원에서 129조5000억 원으로 5000억 원 삭감해 충당할 예정이다.

    민생경제 살리기에 전념하면서도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혼란한 국내 상황을 틈타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안보 관련 예산 확보에는 만전을 기했다. 40조3000억 원 규모의 국방 예산은 총액 변동 없이 정부안이 승인됐다.

    '최순실·차은택·고영태 예산'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쓴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은 직격탄을 맞았다. 7조1000억 원에서 6조9000억 원으로 2000억 원 삭감을 면치 못했다. 총액 규모에 비춰볼 때 매우 큰 삭감 폭이다. 이로써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이던 '문화융성'은 사실상 5년차에 들어서면서 추동력을 잃게 됐다는 분석이다.

    ◆법인세 증세 저지… 소득세와 누리과정 특별회계는 야당 주장대로

    새누리당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법인세 증세 저지에 총력을 기울여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법인세 증세'에 연대 전선을 형성하고 강공을 펼쳤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 속에서 예결위원장과 국회의장을 모두 야당에서 맡고 있어 지극히 곤란한 형국이었으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법인세율 현상 유지를 이뤄낸 성과가 돋보였다.

    정국의 불안정으로 기업의 투자 의욕이 극도로 위축된 국면에서 법인세까지 증세될 경우 고용 감소로 직결될 우려가 컸다. 그렇게 되면 청년실업난이 악화되고 양극화 또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에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총력을 다한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여야 협상 과정에서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과 누리과정 특별회계 편성은 야당에 양보했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된 소득세법 개정안은 이날 국회에서 함께 통과됐다. 소득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근로소득 5억 원 초과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이 구간에서는 소득세율 40%를 적용한다. 소득세 최고세율도 종전 38%에서 40%로 높아졌다.

    어디선가 세입을 더 거둬야 한다면, 그 방법은 국민 전체에게 전가되는 간접세나 법인세 인상보다는 직접세인 소득세 인상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게 세정의 일반원칙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뼈아픈 것은 누리과정 특별회계 편성이다. 누리과정 예산 충당을 위해 3년 한시의 특별회계를 편성하고 국비로 45%인 8600억 원을 부담토록 하는 내용이다.

    지방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충분히 충당할 여력이 있는데도, 그간 교육감 공약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미명 하에 쓸데없는 포퓰리즘 사업으로 예산을 돌리고자 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누리과정 특별회계 편성을 통해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탕진하고 있는 교육감들의 정치 행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지적이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김광림 "지구상에서 법인세 올린다면 웃어… 설득해 분위기 바꿨다"

    이처럼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법인세 증세를 저지해낸 것에 방점을 찍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지구상에서 한 나라도 법인세를 올린다는 나라가 없고,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은 35%에서 15%로, 브렉시트 중인 영국은 20% 이하로, 홍콩·대만·싱가포르는 14~15% 정도로 하는데, 법인세를 올린다고 하면 웃는다"며 "이런 사례를 대자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번에는 법인세를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인에게는 세금을 올리지 않지만, 그로부터 고소득의 월급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연간 1억5000만 원 이상을 38% (소득세 부과)하던 것을 5억 원 이상 구간을 신설해 2% 올려서 40%로 했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소득세는 일부 세율을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부연했다.

    ◆민주당, '국정농단' 빌미로 청와대 특수활동비까지 탈탈 털어

    민주당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웠다.

    민주당 윤호중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 김태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예산을 삭감하고, 이를 재원으로 위기에 놓인 민생을 지원하기 위한 '민생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서 860억 원을 삭감한 것을 비롯해, 문화융성위원회와 아리랑 핵심콘텐츠 개발 및 세계화 사업 예산 등이 대폭 삭감됐다. 최순실 씨가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통합이미지 연구개발 사업과 K-Style Hub 사업 예산은 각각 30억 원과 12억9000만 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돼 사라졌다.

    딱히 '최순실 예산'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유탄을 맞아 삭감된 예산도 있다.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예산은 12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70억 원이 삭감됐다. 경찰청의 살수차 장비 구입 예산은 4억9000만 원 중 2억7000만 원이 삭감됐다.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147억 원 중 12억 원을 삭감했고,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전 위원장으로 있던 국민대통합위원회 운영 예산도 67억 원에서 19억 원을 삭감했다.

    ◆국민의당, 호남선KTX·남해안철도 등 호남 지역 예산 증액 '철저'

    국민의당은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관련 예산을 차질없이 챙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 김동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는 친환경자동차 부품클러스터 조성 예산을 130억 원 증액했으며 △전남은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광주송정~임성리) 예산을 655억 원 증액했고, 남해안철도(보성~임성리)도 650억 원 증액했고 △전북은 새만금 남북·동서2축도로 예산 386억 원을 증액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은 호남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쌀값 폭락으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위해 쌀 직불금 지원에 5000억 원을 추가했다"는 점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