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주도' 타이틀을 얻으려 따돌리고 훼방 놓아… 반대를 위한 반대 횡행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일 국회앞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일 국회앞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비박계와 민주당, 국민의당이 의미 없는 탄핵정국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국민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탄핵정국을 통해 체급을 키우려는 정치인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남발하면서 정국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더불어민주당 거국중립내각에 이어 하야·탄핵까지 반대

    더불어민주당은 2일, 당초 이날 탄핵소추안을 처리하기로 한 입장을 철회하고 탄핵 소추안 표결일을 9일로 미뤘다. 대통령이 퇴진 시기를 국회가 정해달라고 요청한 3차 담화에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주춤하자 서둘러 야 3당과 단일대오를 형성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내비친 것이다.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가장 현실적으로 탄핵안을 발의해서 처리할 수 있는 시점을 9일로 본 것"이라고 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안을 2일로 못 박기 전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언급하면서 거국 중립내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성향의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자 이에 반발했고 하야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검찰 조사가 발표된 후에는 협상 없이 탄핵 절차를 이어가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은 최순실 사태 이후 탄핵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의석수로 볼 때 친박계를 제외하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가장 많은 만큼 주도권을 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이런 민주당의 노력은 추미애 대표가 야 3당 합의를 하기 전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나 회동을 한데서도 드러난다. 추 대표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1월 말 퇴진을 협상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추미애 대표의 이 발언이 준비된 발언이라기보다는 김 전 대표의 4월 퇴진설에 반발하다 보니 김 전 대표가 받지 않을 '카드'로 1월 말 퇴진을 성급하게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시작부터 아무 계획성이 없이 왔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대표의 발언은 문재인 전 대표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문 전 대표는 2일 국회 앞에서 "탄핵을 무산시키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겠다"며 호소(號召)했다. 협상 없는 탄핵을 계속 주장하는 것으로, 추 대표의 발언과는 배치된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는 '세월호 사건'을 명기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동의하지 않는 사유다. 새누리당이 일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묶어 통과시킴으로써 탄핵소추안의 주도권 문제를 명확히 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이미 세월호, 개성공단 등의 내용이 탄핵 소추안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세월호 관련 의혹은 대통령이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여부"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만 보더라도 그 자체로도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야권이 객관적이지 않은 사유를 포함하면 탄핵 심판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 탄핵 소추안 표결을 위한 야권 공조를 위해 야3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탄핵 소추안 표결을 위한 야권 공조를 위해 야3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캐스팅 보트' 역할 놓칠라, 국민의당, 난사 작전으로

    국민의당과 새누리당 비박계에 '난사'하는 양상이다.

    국민의당은 당초 9일 표결론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5일 표결을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일 추미애 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와 회동한 이후 한때 5일 표결론을 주장하면서 각을 세웠다.

    2일 표결보다는 협상을 먼저 해봐야 한다는 비박계에는 숙고할 시간을 주는 한편 2일 표결 강행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에는 무조건 찬성해주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캐스팅 보트'를 자임했던 국민의당은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비슷한 행보를 걸으면서 안팎으로 '민주당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무리하게 각을 세우다 보니 어정쩡한 '5일' 안이 도출됐다는 정치권의 평가도 뒤따랐다.

    탄핵정국의 주도권을 의식한 듯 국민의당은 야 3당 합의 이후에도 민주당을 향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의당 이행자 부대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당이 탄핵발의 거부를 하며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라 했다"면서 "국민의당이 원망스럽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당은 그동안 무책임한 탄핵발의보다 탄핵 가결을 목표로 새누리 비박계를 어떻게든 설득해 2일이든 9일이든 탄핵 가결을 목표로 했다"면서 "그런데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이 박 대통령에 대한 단독회담 추진, 김무성 의원과 회동 등을 통해 야권공조를 깨는 독단적 행보를 일삼았다"고 꼬집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비박계를 겨냥했다. 장 대변인은 "비상시국회의 소속 의원들이 박 대통령 탄핵안을 5일 의결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7일 퇴진 시점을 밝히는지 두고 보겠다고 했다"면서 "대통령 탄핵절차에 즉각 착수할 것이라는 약속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한마디에 휘청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회본회의장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 그는 대통령 3차 담화문을 듣고는 탄핵에 대한 수위를 낮췄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회본회의장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 그는 대통령 3차 담화문을 듣고는 탄핵에 대한 수위를 낮췄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한 때 '분당론' 나왔던 비박계, 대통령 입만…

    비상시국회의가 주축이 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4월 말 퇴진을 합리적으로 보면서도 "대통령이 직접 퇴진 날짜를 밝히라"며 공을 다시 청와대에 넘겼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주장한 것이 대통령의 퇴진이었는데 탄핵으로 하게 되면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걸린다 "면서 "원로들이 제안한 안이 합리적이라 봤다"고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여야 간 협상이 잘 안 되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을 정해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당론을 제기하며 이제는 갈라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비박계지만 탄핵 동력이 약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된 셈이다. 유 의원은 7일까지 박 대통령이 퇴진 시기를 명확하게 재차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비박계의 애매한 입장은 되레 야당이 비박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야 3당이 단단한 공조를 한다고 하더라도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의석수는 172석으로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28석 이상이 탄핵안에 찬성해야만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지지자들이 탄핵에 강경한 태도인 야당으로서는 비박계를 설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비박계로써는 탄핵안을 가결할 경우 탈당-분당 수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경우 국민의당 등 야당과 합당, 혹은 제3 지대에서 연대 가능성이 있다.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애매한 입장은 비박계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4월 퇴진을 수용할 경우, 굳이 탄핵안을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유 의원의 주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 지금은 '정진석'의 뜻대로…

    두 정당과 한 계파가 사안의 합리성보다는 서로 주도권 경쟁에 매몰되면서 결국 총리조차 지명하지 못한 채 국정 공백 상태가 계속되는 참극이 빚어진 셈이 됐다.

    이에 국정 공백의 피해는 전부 국민이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공백으로 인해 예산안도 밀도 있게 심사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새누리당내 계파색이 옅은 '낀박'이다. 그러나 거국중립내각과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그의 주장이 여러 곳에서 현실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새누리당내 계파색이 옅은 '낀박'이다. 그러나 거국중립내각과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그의 주장이 여러 곳에서 현실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결국, 탄핵안에 찬성하는 의원이 과반이 넘는데도 정작 정국은 '낀박' 정진석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흘러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달 14일부터 줄기차게 '질서 있는 퇴진'을 외쳤는데, 이것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김종필 전 총재가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외의 전개였다.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둘러싼 힘겨루기를 하던 당시 김병준 총리내정자를 박 대통령에 추천한 사람도 정진석 원내대표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달 4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때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천거했다"고 한 바 있다.

    특히 김 총리 내정자는 당시에는 야당의 극심한 반대가 뒤따라 한동안 잊혔지만, 탄핵가결 여부가 불확실해지면서 다시 거국중립내각 총리로 가능성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경우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모은 상태다. 그런데 현재 당장 탄핵소추안을 9일에 가결시키면 그 날 즉시 황 총리가 권한대행을 행사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이 전에 거국중립내각 총리를 국회에서 합의하기는 쉽지 않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이 밖에도 예산 정국에서도 2일 예산 부수 법안으로 통과할 가능성이 제기됐던 법인세 인상 등을 막아내는 등의 성과도 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탄핵정국에 집중하면서 예산안 처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탓으로 풀이된다.

    끝으로 정진석 원내대표는 줄곧 탄핵과 함께 개헌논의도 병행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개헌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이라는데 입을 모은다. 결국 9일을 지나 탄핵정국이 정점을 찍고 나면 개헌논의 쪽으로 정국이 급격히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는 개헌에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점이 근거가 되고 있다. 야권의 김종인 전 대표,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은 물론, 비박계 김무성 대표까지 개헌에 찬성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