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 통째로 흔들리는 대한민국, 대통령 스스로 진실과 루머의 경계 분명히 세워야
  • 답답하다. 화가 난다. 그런데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건, 불안한 마음이다. 너무 많은 루머와 음모론이 터지고 있다. 이제는 무슨 일이 터져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괴롭힌다.

    웬 강남 아줌마 하나에 나라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으며, 탄핵 또는 하야 해야 한다는 의견이 42.3%로 치솟았다.<27일자 리얼미터 기준>

    최순실 게이트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권 안팎에서도 "지금이 바닥이 아니다"라는 회의적 전망이 끊이질 않는다. 친야(親野)성향의 미디어오늘이 (주)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하야 해야 한다'는 응답이 37.9%,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답이 31.1%가 나왔다. 조사대상의 과반 이상이 탄핵 또는 하야가 답이라는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이 앞으로도 계속 소극적이라면 이보다 더 심각한 민심이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 어떻게 보면 정권마다 터졌던 대통령 최측근의 비위(非違)행위가 이토록 심각한 민심 폭탄으로 번진 과정에는 국민 정서를 건드리는 몇가지 분수령이 있었다.

    "돈도 실력, 너네 부모를 원망해"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과거 SNS는 폭발력이 컸다. 이 SNS와 이화여대 특혜 의혹은 여론을 극도로 화나게 만들었고, 최순실 모녀의 비행(非行)을 끝도없이 폭로했다. 여론은 최순실씨의 수백억대 재산 출처에 관심을 쏟았고, 또다시 갖가지 루머가 쏟아졌다. 여기에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을 하인 다루듯 한 영상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귀를 의심케 하는 음모론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화난 여론의 근원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국가를 쥐락펴락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를 용인했다는 말이냐'는 마음은 이제 한두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대국민 사과도 화난 민심에 기름 부은 분수령이었다. '아시다시피', '순수한 마음으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등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느낌보다 '실수했다. 미안(송구)하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사태 수습방안이나 대책을 고심하는 대목도 부족했다. 황망하고 괴로운 마음을 '진실이 밝혀졌으니 앞으로는 나아지겠지'라며 달래던 희망도 짐짓 옅어진 순간이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모습은 '진실'과 '당당함'이다.

    게이트로 번진 최순실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이미 '의심'이 가득하다. 믿기지 않는 '무당설', '8선녀' 외에도 말도 안되는 각종 염문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들의 가슴은 '무엇을 믿어야 하나'는 마음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벌써 이번 주말부터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는 여론이 폭주하고 있다. 광우뻥 사태 이상의 루머와 음모론은 국가 전체를 뒤흔들 블랙홀로 발전할 공산도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권 침몰이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쌓아온 외교 프로세스가 무너지고, 이를 통해 압박해온 대북제재는 물론이거니와 개헌과 각종 국내 경제정책 등 국가정책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돌파하고 다시 청와대와 정부가 국정(國政)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 진실을 말하고 당당히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김현웅 법무장관은 27일 국회에서 "불소추 특권을 가진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게 다수설"이라고 했다. 아직도 정부와 공직자들이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납작 업드려 있다는 여론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국민사과까지 밝힌 대통령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이상 전면 개각이니 청와대 비서진 총사퇴로 쉽게 여론을 수습하기 어렵다. 하야나 탄핵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도 '극단적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특검이든 검찰이든 사법 조사를 자진해 철저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대선 과정에서 이메일 스캔들로 FBI 조사를 받았고, '르윈스키 스캔들'에 직면한 빌 클린턴도 현직 대통령 시절 특검 수사에 응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송민순 회고록'으로 야권을 압박하던 상황에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가 야속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순실 사견을 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결재를 받았다고 의심받는 문재인 의혹의 경중(輕重)을 비교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적(政敵)을 향한 공세보다는 스스로 반성을 통한 보수 세력의 윤리적 권위를 세워야 할 때다.

    혼란한 국민의 눈은 박근혜 대통령만 향해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다.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음모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그리고 대통령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지자들과 이 정부를 위해서도 대통령 스스로 진실과 루머의 경계선을 바로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