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지지율 폭락 △親朴 지도부 '흔들' △최순실 특검… 호재가 없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뉴시스 사진DB

    '현재 권력'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미래 권력'을 노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자신의 정치 플랜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반기문 총장은 여전히 유력한 대권 주자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주초인 2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반기문 총장은 22.2%의 응답을 얻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18.9%)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그 뒤를 따르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9.3%였다.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24일 저녁 최순실 씨의 연설문 첨삭 의혹이 최초 보도되고,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시인하며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정국은 일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하는 가운데,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도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졌다.

    당초 반기문 총장은 임기를 마친 내년 1월 중순에 귀국해, 대국민보고의 형식으로 정치 활동의 기지개를 켤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특정 계파와는 계속해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면서도, 적절한 시점에는 새누리당에 입당해 마땅한 차기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계의 물밑 지원을 받으며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이 과정에서 반기문 총장에게 힘을 몰아줄 인물로 충청권 중진인 특정 의원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넘겨줄 수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유지되는 가운데, 새누리당 내의 의사결정도 친박계가 주도권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다. 드러내놓고 친박계의 '꽃가마'를 타는 것은 본선경쟁력을 감안할 때 곤란하므로, 반기문 총장 본인은 친박계와 거리를 두면서 물밑에서 교감하는 형식이 정치권 관계자들이 유력하게 바라본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장악 능력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새누리당 내의 친박계도 결정적인 타격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당장 8·9 전당대회로 선출된 친박 이정현 지도부의 앞날이 짙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물러날 수 없을 뿐"이라며 "바닥을 치면 수습과 반전을 위해 지도부가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연내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것이 유력시된다.

    그 때쯤 되면 '난파선'에 가깝게 변할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장을 누가 맡느냐가 문제다. 지난 2004년 탄핵 광풍(狂風) 속에서 '천막 당사'를 치고 사태를 수습한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처럼 추진력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하면, 당내파 대권 주자들에게 무게가 실리게 된다.

    반면 인망 있는 외부 인사 등 관리형 비대위원장이 선임된다고 해도 반기문 총장에게는 그다지 좋을 것이 없다. 관리형 비대위원장의 권한과 책임은 정식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과 국민의 승인을 받은 당대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당내파 대권주자들의 견제구를 무릅쓰고 추진력 있게 당외 인사인 반기문 총장 영입에 나설 수도, 그 과정에서 어떠한 '당근'을 제시할 방법도 마땅치 않을 수 있다. 관리형 비대위원장이 당내에 확고한 조직과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당내파 대권 주자들을 제어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앞쪽의 붉은 옷을 입은 뒷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앞쪽의 붉은 옷을 입은 뒷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뉴시스 사진DB

    결국 어떠한 경우라고 해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8·9 전당대회로 성립된 이정현 체제가 위기에 빠진 것은 반기문 총장에게는 악재가 되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제3지대 운운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현실정치 경험이 없는 반기문 총장이 신당(新黨)을 만들어 성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다고 내년 1월에 귀국하는 반기문 총장이 정치 경험도 없이 바로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여야 합의에 의한 특검으로 가는 국면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반기문 총장에게는 호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검으로 가게 되면, 연내에는 △상설특검이냐 별도특검이냐 △특검 임명의 주체와 방식 △특검의 수사범위와 기간 등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전개되다가, 본격적인 수사는 내년이 돼서야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연말 예산국회에서 극심한 정쟁이 벌어져 국회가 꽉 막힌 가운데 반기문 총장이 귀국해 국민들에게 활동보고를 겸한 인사를 함으로써 '사이다'와 같은 청량감을 줘야 하는데, '최순실 특검 수사 돌입'이라는 '블랙홀'이 있어서는 '10년 만의 귀국'이라는 이슈를 빨아들일 우려가 높다는 관측이다.

    이에 정치권 관계자들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될 반기문 총장의 정치플랜의 해법으로 개헌(改憲)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세계 각국의 정치 체제를 두루 살펴본 반기문 총장이 직접 목도한 선진제국(先進諸國)의 발전된 통치구조를 화두 삼아 개헌을 매개로 정치 담론 주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반기문 총장에게 있어서 '최순실 게이트'는 악재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며 "내년 초는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 비롯된 병폐에 진저리를 칠 국민들에게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끌어올릴 비전을 제시할 절호의 시점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전 세계의 수많은 정치 시스템을 봐왔을 반기문 총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할 정치 시스템은 이것이어야 한다'고 국민들이 바라보고 움직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그 경우에 진정한 '반기문 대망론'은 점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반기문 총장이 귀국할 내년 1월 중순에 개헌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으면, 반기문 총장이 대국민보고 형식을 빌려 해외 선진제국의 통치구조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개헌 담론의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독일식 의원내각제나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대통령은 의전이나 외치만을 담당하므로 반기문 총장에게는 더욱 유리한 전장(戰場)이 조성되는 셈이다.

    지난 추석 연휴 때 미국 뉴욕을 방문해 반기문 총장과 교감을 나눈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순실 게이트'로 악전고투하는 와중에서도 개헌론 불씨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러한 측면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통령의 친인척 혹은 비선 실세의 대형 비리가 대통령의 임기 말에 예외없이 터져나온다"며 "이것은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내장된 제도적 결함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비리 의혹 사건의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손보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개헌 논의의 걸림돌이 아니라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