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相逢’은 중지되어야 한다
     
     남북 쌍방은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주선을 명분으로 또 한 차례의 남북 적십자회담 ‘놀음’을 벌인다. 이번 적십자회담은 지난 8월17일 묘향산에서 현정은(玄貞恩)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이 “10월3일 추석(秋夕) 명절을 전후하여 금강산에서 한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시켜주라”는 선심을 쓴 데 따라 이를 실천에 옮기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이 같이 북한 독재자의 변덕스런 선심에 의존하여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이 과연 이산가족의 단장의 고통을 해소시키는 올바른 방법인가를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 동안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의 실태를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성사된 것은 1971년9월이었다. 그 이후 38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개최된 각종 남북적십자회담의 횟수는 도합 138회다. 그러나, 2000년6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4억5천만 달러의 ‘검은 돈’을 뇌물로 김정일에게 건네주고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낼 때까지 남북간에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9월에 시범적으로 실시된 단 한 차례뿐이었다. 남북간에는 ‘6.15 선언’ 발표 후 15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열여섯 차례의 상봉에는 한 번에 한쪽에서 100명의 이산가족이 참가하여 상대편 지역의 이산가족들을 만났다. 한 쪽에서 겨우 도합 1,600명과 그들의 가족들이 상봉의 수혜자가 되는 데 그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2000년 ‘6.15 선언’이 발표된 후 이산가족 상봉 참가 희망자 신청을 접수했다. 그러나, 이때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12만5천명에 불과했다. 이때 상봉을 신청했던 12만5천명의 대다수는 고령(高齡)이었고 그로부터 8년여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그 가운데 5만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서 현재 남아 있는 상봉 신청자는 7만5천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그 동안의 페이스로 상봉을 하게 될 경우 남은 신청자 7만5천명이 모두 상봉의 수혜자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계산 상 500년 이상이 된다. 이래서는 그 동안의 적십자회담 방식이 결코 효과적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그 동안의 적십자회담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은 그나마 한 번 2박3일의 상봉 후에는 또 다시 서로 재상봉은 물론 서신교환마저 허용되지 않는 재이산(再離散)을 강요당하는 새로운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은 그 동안의 남북적십자회담 방식은 남북 쌍방 당국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허상(虛像)을 조작하여 각기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에 이를 이용할 뿐 실제로 이산가족 고통 해소의 실질적 방법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은, 원래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심인사업본부(CTA)가 개발하여 각국 적십자사에 권고하는 이산가족 심인사업 방식은 이러한 것이 아니다. ICRC의 CTA가 개발한 사업 방식은 희망하는 모든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하여 ① 생사와 주소 확인 및 통보, ② 서신 교환, ③ 상봉과 왕래 및 ④ 희망자의 경우 원하는 쪽으로 영구적 재결합 등의 수순을 권유하고 있다.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초기 남측은 바로 이 같은 ICRC의 CTA 방식에 의한 이산가족 재결합 사업의 전개를 제안했으나 북측이 이를 거부하여 시범사업의 차원에서 그 동안 진행된 상봉을 시작했던 것이 그나마 횟수를 거듭하게 되었다. 이번에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적십자회담은 이 역시 김정일의 선심으로 이루어지는 또 한 차례의 1회성 상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도, 전례가 이번에도 되풀이된다면, 이번에 이루어지는 상봉도 틀림없이 남쪽에게는 ‘공짜’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만약 이산가족을 진정으로 돕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그 동안의 남북적십자회담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는 것을 그만 두고 그 대신 국제여론에 호소하여 국제사회의 지지를 구축해서라도 당초 남측이 원했던 대로 ICRC의 CTA 방식에 의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적극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점차 이산가족 문제를 단순한 ‘인도주의 사업’이 아니라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는 쪽으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은 제16조2항에서 ‘가족’을 “사회와 국가가 보호할 의무를 지닌 사회의 자연스러운 기초적 집단”이라고 규정하여 불가분(不可分)의 존재임을 분명히 했으며 ‘제네바협정 제1의정서’는 제74조에서 ‘모든 협정 및 분쟁 당사자’들에게 “전시에 발생한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위하여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북한 독재자의 변덕스러운 선심에 의존하여 구걸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나마도 한 번의 상봉이 있은 후 보다 더 애절한 재이산의 비극의 주인공을 양산하는 그 동안의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신 남북이산가족 문제를 유엔기구를 통하여 ‘인권’ 문제로 제기하여 ICRC의 CTA 방식으로 이의 해결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이 모색되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