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 대표 도박이 메가톤급 '게이트'로? 정유라 "부모 원망" 막말이 결정적
  •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청와대

    '최순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국이 마비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정운호'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운호에서 시작한 나비효과가 정유라를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설명인데, 수많은 단계를 거치면서 내용이 발전하는 동안 잘못된 대응을 계속하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국내 유력 폭력조직이 해외 카지노에서 빌린 도박장인 정킷방을 운영한 정황이 드러났다. 단순한 조폭 사건이었지만, 이를 조사하던 검찰은 네이처 리퍼블릭 정운호 대표가 100억대 도박을 벌인 혐의를 추가로 발견했다.

    경제사건으로 확대된 이 문제는 검찰이 정운호 대표가 롯데그룹 면세점 선정 로비 혐의를 포착하면서 또 한 번 불이 번졌다. 정권이 대기업을 겨냥하는 정치사건으로 체급을 키웠고, 롯데 이인원 부사장이 자살하면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위기감을 느낀 정운호 대표는 변호사로 즉각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를 선임해 방어에 나선다. 최유정 변호사는 당시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던 때였다. 판사 출신에 대형로펌을 거친 그는 어려운 사건도 잘 막아내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돈'이 문제였다. 최유정 변호사는 착수금으로 20억,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얻어내면 별도로 30억 원을 추가로 달라고 요구했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임료였지만, 정운호 대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운호 대표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거금을 착수금으로 건넨 정 대표가 반발하면서 다툼이 일어났다. 정운호 대표는 30억 원 뿐 아니라 나머지 20억 원도 돌려줘야 한다고 맞섰다. 정운호 대표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최유정 변호사를 폭행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고, 최 변호사가 구속되면서 이슈가 됐다.

    판사 출신 여변호사가 구속되면서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받은 사건은 다시 법조계로 무대를 옮긴다. 최유정 변호사가 정운호를 구명하기 위해 로비한 명단에 홍만표 전 검사장의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다.

    ◆ '우병우 사건', 조선일보를 거치며 최순실, 그리고 정유라까지…

    여기까지는 재밌는 '인과 관계'로 이어진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이후부터는 태풍급 파괴력을 가진 사건으로 대폭 확대된다.

    정운호 대표의 이전 사건들을 추적하던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지난해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뒤 모 변호사에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중앙지검 3차장을 전부 잡았다"고 말한 사실을 포착했다. 이른바 '우병우 게이트'의 서막이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조선일보〉는 넥슨-우병우 간 부동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결정적 한 방으로 보기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다분히 청와대를 겨냥한 내용이었다.

    청와대는 관계자를 통해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조선일보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진태 의원이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에게 2억 원어치 접대를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뉴스컴 박수환 대표를 둘러싼 수사가 벌어졌다.

    정권의 서슬 퍼런 공격에 〈조선일보〉는 몸을 움츠렸다. 송희영 주필은 "저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제기된 것을 보고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 주필 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주필 직에서 물러났다. 독자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건넸다.

    청와대는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조선일보〉마저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결과론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내 대부분 언론이 청와대에 등을 진 셈이 됐다. 청와대가 언론계 전체를 적으로 돌린 패착의 시작이었다.

    〈조선일보〉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K스포츠 재단과 미르재단에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해 기업들로부터 상납금을 내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한겨레〉와 〈경향〉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파헤치다 나온 이름이 '최순실'이다.

    최순실은 지난해 세계일보가 '비선 실세'로 지목한 정윤회의 아내다. 박관천 경정이 2년 전 말했던 권력서열 1위, 그 사람이었다. 곧바로 미르재단과 최순실과의 관계, 그리고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의혹이 동시에 쏟아졌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이 20년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도 새삼 조명됐다.

    이 중 많은 국민을 분노케 한 대목은 정유라의 한 댓글이었다. 그는 지난 2014년 SNS에 "능력이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라", "돈도 실력이다.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학점을 유지한 것 모두가 부모 덕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같이 일고 있는상황에서 이같은 댓글은 국민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미르와 K스포츠를 지목했던 〈조선일보〉가 기사회생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최순실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은 특종이 됐고, 언론은 이잡듯이 그를 파헤쳤다. 〈중앙일보〉와 〈JTBC〉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마침내 최순실의 컴퓨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 파일이 수십 개 발견되는 '결정적 한 방'이 터졌다. 소문만 무성하고 말로만 떠돌던 '비선 실세' 의혹까지 한꺼번에 증명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보수·우파 층에서는 "너무나 말이 안 돼서 도무지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은 여태 언론들이 알린 것 보다는 나은 합리적인 설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려 했다. "설마하니 대통령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하달'하는 사람이 있을까. 또 언론의 보도가 맞다면 청와대의 수많은 참모진들은 뭐가 무서워서 그에게 끌려다녔어야 했나"라는 의문은 당시까지만 해도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곳곳에서 최순실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며 붕괴해버린 청와대는 사과문에서조차 제대로 된 입장을 드러내지 못했다. 누구에게 피해를 줬고, 실제 상황은 어떤 것이며, 얼마나 반성하는지, 또 앞으로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생각인지 털어놨어야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며 모든 의혹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호소했다. 자신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먼저 방어막을 친 셈이다.

    이것이 모든 국민이 하나 돼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 사건의 전체 이야기다. 이 모든 게 한 경제인의 비행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였다면, 너무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정치-법조-언론-재계 등과의 연관성을 보고 있노라면, 향후 최순실 사태가 후에 어떤 종말을 맺게 될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