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공보물과 올해 공보물 내용 엇갈리는 점도 드러나… '위기 국면' 대응 주목
  •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난 13일 검찰의 기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소집된 긴급의원총회에 참석해 피켓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난 13일 검찰의 기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소집된 긴급의원총회에 참석해 피켓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정국도 급변하고 있다. 따뜻했던 시절, 한껏 강공을 펼치면서 기세를 올렸던 친노·친문 수장 문재인 전 대표와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당대표에 오른 추미애 대표에게 돌연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최근의 민주주의 후퇴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경찰간부의 귀에 농부의 한숨소리가 들렸다면 백남기 선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국가폭력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이 정부의 예술적 무지를 드러내는 사건" 등의 글을 잇달아 페이스북에 올리며 강공(强攻)의 시대를 즐겨온 문재인 전 대표는 정국 급변에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유엔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요청 의혹'이 터진 직후인 14일에는 "(남북) 채널의 대화가 다양하게 이뤄지던 시점에서 논의된 것"이라고만 할 뿐, 사태의 핵심인 '대북 결재 요청'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6일에 비로소 문재인 전 대표의 원내대변인 격인 더민주 김경수 의원이 나서서 "문재인 전 대표는 초기에는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17일 문재인 전 대표는 "기권을 주장했을 것 같은데 다 그렇게 (찬성)했다고 한다"고 하더니, 최종적으로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8일에는 이 문제를 질문하는 취재진에 "그 질문은 안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사실관계는 나올 만큼 나왔으니까 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노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태도에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조차 '일구삼언(一口三言)'이라 비판할 정도다.

    친노·친문의 지원을 등에 업고 8·27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더민주 추미애 대표도 공직선거법 상의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가 이뤄지면서, 공세 국면에서 벗어나 옷깃을 여미고 있다.

    8·27 전당대회 직후 열린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회사부터 '사드 반대' 사견을 늘어놓는 등 노골적으로 친야(親野) 성향을 보인데 이어, 이러한 국회의장과의 협조 하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정감사에서도 때마침 터진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우병우·정윤회·최순실·정유라 등을 끊임없이 언급해가며 여당을 코너로 몰아넣었다. 약 1개월여 간 계속됐던 공세 국면을 즐겨오다가 돌연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뼈아픈 것은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손지열 전 대법관(2003년 12월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검찰 조사에 응해, 추미애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선거공보물에 사용한 사진의 설명에서 "16대 국회에서 법원행정처장에게 동부지법을 존치하기로 약속을 받아낸 추미애 의원"이라고 기재한 문구가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추미애 대표는 "2003년 12월 6일 당시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에서 동부지방법원 존치를 요청드렸고, 공감을 표시하며 '그런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항변했다.

  •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난 13일 검찰의 기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소집된 긴급의원총회에 참석해 입술을 질끈 다물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난 13일 검찰의 기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소집된 긴급의원총회에 참석해 입술을 질끈 다물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손지열 전 처장과 추미애 대표 사이의 12년 전 면담이 속기록이나 녹취 형태로 남아있지 않은 이상 면담 당사자의 진술이 사건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데, 17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손지열 전 처장은 검찰 조사에서 "추미애 대표에게 동부지법을 광진구에 존치시키겠다고 확답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앞서 추미애 대표는 손지열 전 처장과의 면담 직후인 2004년 4·15 총선의 선거공보물에서는 "추 의원이 친정이 온 것 같다면서 동부지방법원이 이전돼서는 안 되는 점을 설명하자, 손지열 대법관이 '판사 출신으로 정치활동을 하는데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며 덕담을 건네는 등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면담이 진행됐다"고만 언급한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의 성립에는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공직선거법 상의 허위사실공표죄의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표한 사실이 '허위'일 것과,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허위의 인식'이 모두 필요하다"며 "손지열 전 처장의 진술은 공표사실의 '허위성'과 관련해, 2004년 공보물은 '허위의 인식'과 관련해 추미애 대표에게 불리한 요소"라고 우려했다.

    추미애 대표의 재판은 공교롭게도 문제가 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오는 2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릴 예정이다. 제1야당의 대표를 기소한 검찰의 공세도 이 부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손지열 전 처장의 진술이 있었으니만큼 면담에서 "동부지법 존치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은 허위가 아니냐는 점, 지난 2004년 공보물에서는 "존치 약속"을 언급하지 않았다가 12년이 지난 이번 총선에서 "존치 약속을 받아냈다"라고 쓴 것은 추미애 대표 본인도 면담에서 '존치 약속이 있지는 않았다'는 '허위의 인식'이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냐는 점을 중심으로 추궁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서는 판사 출신의 법조인 국회의원인 추미애 대표 측에서도 거센 반박과 반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유사한 사례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이 떨어졌던 판례가 있고, 추미애 대표도 이러한 판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니만큼 더욱 결사적으로 재판에 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앞서 2009년 대법원은 유사한 사례의 공직선거법 상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150만 원의 벌금형을 확정한 바 있다.

    검찰은 2008년 18대 총선이 치러진 뒤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이 "건설교통부로부터 울산~언양간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약속을 받아냈다"고 선거공보물에 기재한 것이 공직선거법 상의 허위사실공표죄라는 이유로 공소를 제기했다.

    윤두환 의원 측은 △건설교통부 관계자로부터 울산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에 대한 약속을 받은 것이 사실이며 △설혹 아니더라도 허위의 인식이 없었고 △당선무효로 하는 원심의 양형(벌금 150만 원)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맞섰다.

    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공표사실의 '허위성'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료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 '잘 검토하겠다'는 등의 답변은 울산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의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허위의 인식'에 관해서는 "(윤두환 의원이) 경찰조사에선 저녁식사 자리에서 약속받았다고 진술했고, 검찰조사에선 소위 도중 정회 때 약속받았다고 했다가 국회 속기록에 정회했다는 기록이 없자 진술이 엇갈렸다"며 "국회의원의 요청에 떠밀린 건교부 실무책임자의 '잘 검토하겠다'는 말은 약속까지 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홍보할 당시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양형'과 관련해서도 "(윤두환 의원이) 초범으로 범죄전력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큰 표 차이로 당선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벌금 100만 원에 해당하는 사소한 위반도 당선을 무효로 하겠다는 입법자의 의지 역시 존중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150만 원의 벌금형을 그대로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