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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⑩ 휴전 반대...부통령에 김성수...내각제-직선제 대결
“미국-일본에 놀아나는 국회”...이승만, 직선제 개헌 결단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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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중 38선 표지판(자료사진)
▶<가거라 삼팔선>을 아시나요? ‘분단 철폐’를 외친 자유의 노래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 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남인수의 애절한 목소리로 울리는 ‘가거라 삼팔선’ 노래는 나오자마자 전국을 휩쓸었다.
소련이 38선을 막아버려서 남북의 왕래가 갑가지 끊어져 이산과 분단의 슬픔을 달래준 노래. 8.15보다 먼저 북한에 진주한 소련은 9월부터 ‘북한 단독정권’을 추진하면서 자유민주세력
과 자본가계급을 무자비하게 숙청, 일반주민들까지 대거 38선으로 밀려가자 철조망을 쳤다.
한반도 일본군 전후처리를 분할 관리하자던 38선은 이렇게 소련이 먼저 ‘분단선’으로 만들었
고 남한에 보내던 전기도 끊어버렸다. 피난민도 남한국민도 경제도 암흑 속에 빠졌다.
총칼로 막는다고 인간의 자유욕구를 막을 수 있겠는가. “가자, 남으로!” 북한 주민들은 줄을
이어 깊은 밤 목숨을 걸고 38선 뚫기에 피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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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남인수(자료사진)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든가
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1947년 ‘유엔감시 남북총선거’가 결의되었으나 소련은 북한 총선을 거부, 통일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였다. 스탈린의 완강한 국제공산주의 침략전술은 ‘신의주학생사건’등 민족적 반공의거
저항을 무차별 학살하고, 해방 6개월도 안된 1946년 2월에 단독정권(북한 소비에트 인민위원
회)를 세우면서 ‘남조선 해방’ 폭동을 잇따라 일으킨다. 그럼에도 자유민의 선거를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이승만대통령은 “38선 제거, 민족통일”을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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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 마을길에도 38선 표시.(자료사신)
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
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던 고갯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
분단의 고통은 ‘가거라 삼팔선’에 한 소절을 덧붙였다. 유명한 작사가 반야월이 만들어 2절로 끼워넣은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는 주제로써 그냥 유행가를 넘어 ‘자유의 노래, 반공의 노래’로 변하고 ‘통일의 노래’가 되어 국민애창곡이 되었다. 6.25남침보다 3년 먼저 나와 ‘분단 철폐’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국민 데모곡, 그런 점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라’ ‘이별의 부산정거장’등 6.25때 쏟아진 수많은 ‘전쟁가요’와는 본질이 다른 노래. 분단장벽을 쌓은 소련-북한 공산당에게 노래가 먼저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 “38선은 없어졌다. 새로운 선을 만들지 말라” 이승만 몸부림 시작
“38선은 이제 없어졌다” 6.25가 터지자 이승만의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다.
38선을 없애기 위해 단독정부-과도정부-자유민주 기지를 세웠는데 적군 공산당이 제손으로
38선을 깨트리고 침략하였으니 하늘이 주시는 절호의 통일 기회, 통일전쟁이 돼야한다.
이럴 때 구원의 손을 잡아준 미국의 오랜 동지들, 그 대표적 인물이 맥아더 장군이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쾌재를 부르며 중국대륙까지 쳐부수자고 맥아더와 의기투합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러나 아직은 이승만 편이 아닌 듯, 이번엔 믿고 싶었던 미국이
아예 이승만을 무시하고 맥아더 목까지 날려버린 강대국 패권주의와 다시 정면으로 싸워야한다.수원까지 쫓겼던 유엔군이 다시 밀고 올라가 38선을 넘느냐 마느냐” 또 주저할 때 이승만은
외국기자 회견을 열고 분연히 선언하였다.
“진격중인 유엔군은 38선에서 정지하리라 하는데
공산당이나 친공분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미 없어진 38선을 다시 운운하며,
또 귀신같은 새로운 선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분단 선이 또 생긴다는 것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절대로 배격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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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군의 38선 월경문제와 이승만의 '38선은 없다"는 발언 보도. 51년 2.6일자 동아일보(동아DB)
가거라 38선!
이승만이 일찍이 걱정한 것은 38선 분단이 아니라 소련이 다시 한반도를 점령하는 사태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승만은 성명을 발표,
“일본이 패하여 물러가면 소련이 한반도에 내려올 테니, 미국과 열강은 즉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 이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당시 국무성의 실세 알저 히스(Alger Hiss)는
들은 체도 않고 이승만을 ‘독립 미치광이’로 냉대한 것은 잘 알려진대로다.
(히스는 1950년 2월 소련 간첩 유죄로 투옥.)
그후 카이로 회담, 테헤란 회담, 포츠담 회담, 얄타 회담등 미국과 소련이 만나
한반도문제를 멋대로 흥정할까봐 전전긍긍했던 이승만은 얄타(Yalta) 회담후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에 넘겨주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는 증거를 입수하였다며
미국 정부와 언론에 폭로전을 전개하였다. 물론 미국정부는 부인하였지만,
사실은 루즈벨트는 스탈린에게 일본전쟁에 빨리 참전해달라고 호소하면서
커다란 양보를 덜컥 해버리고 말았다.
스탈린이 내민 참전조건은 “소련이 진주한 지역은 소련 프레미엄을 인정하라‘는 엄청난 것,
예민한 이승만은 정보원을 통해 이 냄새를 맡았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 항복하기도 전에 소련은 한반도에 밀려들어왔고
미국은 서둘러 38선으로 타협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가거라 38선! 통일이냐, 분단이냐, 자유냐, 노예냐, 이승만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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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전을 반대한 이승만대통령 특별성명. 51년6.15일자 조선일보(조선DB)
▶"휴전은 거짓 평화"...이승만 책상에 새로운 투쟁의 좌우명
맥아더가 해임된 직후, 애치슨 국무장관은 전 소련 대사 조지 케난에게
소련과 한국전쟁 휴전협상을 모색하라는 밀명을 주었다.
6.25남침 1년이 되는 6월 23일, 유엔 소련대사 말리크는 라디오 방송에 나와
“소련 인민은 한국전쟁의 해결을 원한다. 당사자들이 38선에서 물러나는 정전회담을 하자”고
선언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스탈린도 정부의 공식입장이라 인정했다.
애치슨은 동경의 리지웨이 유엔사령관에게 공산군 사령관에게 휴전을 제의하고 협상하라는
지시를 보냈다. 리지웨이는 6월30일 방송을 통해 원산앞바다 덴마크 병원선에서 만나자고
제의하고, 공산측은 개성에서 7월10일 회담을 열자고 받았다.
“타협은 거짓 평화다.” 이승만은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유엔과 미국 그리고 중공침략국에 대하여’ 발표한 성명에서 그는 이와같이 천명한다.
“거짓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확대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은 평화문제가 일어나선 안된다. 거짓 평화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떠한 정전(停戰)명령협상도 해결 할 수 없다.
국제공산주의와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만약 한국에서 유엔이 승리하지 못하면
평화는 없을 것이오, 아시아는 물론 유렵에서도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민은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오직 싸워 이겨야만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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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전반대 통일촉구 국민총궐기대회 결의문. 51.7.2일자 동아일보 2면. ⓒ동아DB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그야말로 한덩어리로 뭉쳐서 총궐기 하였다. 국무회의를 끝낸 변영태 외무장관은 ‘38선 정전설을 거부한다’는 전제를 못 박고
다음 5가지 조건을 제시하는 성명을 배포하였다.
첫째, 중공군의 한반도 전면 철수
둘째, 모든 북한괴뢰군의 즉각적인 무장 해제
셋째, 북한에 대한 제3국의 지원 금지를 유엔이 보장할 것.
넷째, 대한민국 대표 참여 없이는 어떠한 국제회의도 한국문제 논의 반대.
다섯째,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보전(북한도 대한민국 영토).
이와같은 조건을 보장하지 않는 휴전 협상은 전면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국회는 같은 날 장면 총리를 불러 5개조건 설명을 듣고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한편 애국단체들은 ‘정전반대 국토통일 국민총궐기대회’를 충무로앞 광장(현 신세계백화점앞)에서 개최하고 주요한의 사회와 신익희 국회의장의 연설에 이어 결의문 채택, 모든 참전국의 원수들에게 5개조건 수락 및 남북통일 완수를 요구하고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후 수십만 시민들은 “38선 정전을 분쇄하라”등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경무대 이승만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들이 붙었다.
<원칙에 대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공산주의에 굴복하지 않는다>
<한국은 반드시 통일되어야하고 자유가 보장되어야한다>
<이런 것들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도 죽음만 같지 못하다>
이승만 스스로 쓴 ‘좌우명’ 같은 이 원칙들은 정전설 때문에 새로 쓴 것이 아니요,
그가 1923년 레닌의 공산주의를 비판할 때부터 줄곧, 그리고 소련이 한반도에 진주할 때부터
그의 평생 신념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건국과 독립의 민족주의 국가정신-자유정신이다.
이를 새삼 집무실 책상에 써 놓은 것은 이승만이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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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시로 전선 시찰에 나서는 이승만 대통령.(지료사진)
▶ 국회도 언론도 이승만 반대편...그래도 무초는 이승만이 두렵다
한국전쟁을 통일에서 휴전으로 급선회한 미국은 맥아더를 해임하면서
이승만을 견제하는 작업도 본격화하였다. 고집불통 이승만이 휴전 협상에
걸림 돌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사실 한국에서 이승만 견제 공작은 미국으로서는 ‘누워서 떡먹기’만큼 쉬운 터였다.
첫째, 이미 한국 국회와 언론들이 ‘이승만 반대 세력’이 되어 잘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3년전 정부수립 전부터 ‘내각제냐, 대통령제냐’를 두고 헌법제정과정에서 이승만과 갈라선
정치판은 정부구성에서 밀려나자 거의 ‘적대세력’처럼 굳어져, 이승만의 국민적 카리스마만
아니라면, 또 전쟁만 터지지 않았다면, 벌써 국회의 힘으로 이승만을 쫓아 낼 수도 있다.
둘째, 언론 공작도 힘든 일이 아니다.
양대 민족지라는 동아일보는 야당 당수 김성수의 신문이오,
조선일보는 한때 김구와 임정의 신문이다.
또한 갈수록 두 언론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지지자들도 섞여들면서
이승만의 ‘반공’을 정치선동으로 반격해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셋째, 대학이나 종교계는 물론 군부까지도 미국 유학과 미국 원조로 키운 ‘달러 장학생’들이
지배하는 현실이므로 이승만의 ‘휴전 반대’는 일시적인 약소국의 외침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넷째, 무엇보다 이승만은 다 살았다. 한국나이 77세 노인네가 살면 얼마나 더 살 것인가.
내년(1952) 7월이 임기 끝, 의원들이 선출하는 간접선거제이므로 얼마나 편리한지,
이미 국회는 이승만 반대세력이 절대다수다.
출마해봤자 낙선이 빤한 판에 현명한 노인 이승만이 나설 리가 있겠나.
주한미국 대사 무초는 대선까지 앞으로 1년만 잘 관리하면 휴전은 성사되리라 안심하면서도
한편 이승만의 불같은 투지를 잘 알기에 불안한 예감이 자꾸 뇌리를 스치곤 한다.
제주도로 피난가자니까 권총을 빼던 이승만, 만날 때마다 무기원조를 강요하는 불호령,
38선을 마음대로 넘으면 안된다니까 “이 자를 쫓아내버려”라고 부인에게 소리치던 이승만이
맥아더가 사라지자 더욱 흥분상태가 가시지를 않는다.
얼마 전엔 미국 가지들 회견에서는 직선제 개헌을 거론하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지
골치가 아파진다. 이탈리아 태생의 부드러운 외교관 무초는 원만한 성격으로
이승만을 잘 상대하고 있지만 잠이 깨면 신경이 덩달아 날카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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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초 주한미국대사와 장면 총리(자료사진)
▶ 무초 대사, 조병옥 해임에 격렬한 항의...“조병옥은 이런 사람” 비망록
국회가 또 내각 사퇴를 들고 나왔다.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사전 때문이다.
거창사건은 중공군 남진에 호응하여 협공하는 빨치산 부대를 토벌하던 국군이 공산군과 내통한 청년들을 함께 사살한 사건이며, 국민방위군사건은 중공군 인해전술에 대항하려 편성한 50만명 민병들이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식량부족과 혹한으로 수만명이 사망하였는데 고위장교들의 횡령이 원인으로 꼽혀 책임자를 사형시킨 사건이다. 거창사건은 전쟁과정의 ‘전쟁행위’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이승만은 내무장관 조병옥과 법무장관 김준연을 문책 경질하고
후임엔 장석윤과 조진만을 임명하였다.
그때 무초 대사가 이승만에게 달려와 숨 가쁘게 항의를 하였다.
“조병옥 장관을 물러나게 하면 이 정치혼란을 어떻게 할거냐”며 거세게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정치가 미국정치보다는 덜 혼란할 것이오.”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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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대말 조병옥과 장면.(자료사진)
★조병옥은 술을 너무 마신다”...미국인 접대 호화판 파티는 장안의 화제 이즈음 이승만의 비망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었다고 올리버 고문은 전한다.
[내무부장관 조병옥은 오랫동안 한민당(민국당)과 흥사단 운동을 위해 자신의 권력과 정부 자금을 사용해왔다. 그는 오로지 다음 선거에서 경찰과 민간 행정당국을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도지사
대부분도 한민당원으로 교체하였다. 먼저 전쟁터에서 이겨야만 선거도 치를수 있는데 이렇게
빨리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중략)....조병옥은 신익희와 손을 잡고 신익희가 대통령, 김성수가 부통령, 조병옥 자신은 국무총리로 한다는 조합을 만들어....(중략)....
조장관은 그의 비자금을 국회의원 접대, 콜터등 미군장성, 무초 같은 미국인들을 위해 쓰는데
그 고급 파티들은 장안의 화제다. 조병옥은 어느 때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 그 결과 국회는 더 이상 조장관의 해임을 요구하지 않는다....(중략)....무초는 조병옥 장관을 통해 내년 대선을 조종하려 한다. 조 장관을 해임하자 자기 사람을 잃은 무초는 대타를 찾고 있는데 그가 다름 아닌 목소리가 상냥한 장면이다. 미국무부는 앞으로 상당기간 한국을 자기들 손아귀(under its thumb)에 두려고 한다. 내년 대선은 미국의 휴전을 위해 중요하고 휴전에 동의해 줄 대통령을 선출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 절반을 중국에 양보할 것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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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시영 부통령(자료사진)
★이시영 부통령 갑자기 사임...이승만 “국회에 넌더리가 난다”
5월2일 부통령 이시영이 모처럼 임시경무대로 찾아와 ‘개각 청탁’을 하고 갔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임토록 하여 장면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 하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통령의 이 말을 들은 이승만은 미소로 답하였다.
정치판과 무초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이승만은 벌써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1주일후 5월 9일 이시영이 부통령 사임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승만에게 한마디 협의도 없이 이시영은 ‘국민에게 고함’이란 성명서까지 발표하였다.
사임이유로 ‘정부의 부패’와 ‘내가 아무 일도 못 할 환경“이라는 것을 들었다.
잇따라 장면 총리가 찾아와 부통령 사직서를 반려해 달라 청하고, 국회는 이승만에게
‘대통령이 국회에 나와서 부통령의 사임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하였다.
이승만은 넌더리가 났다.
작년 전쟁중에도 장관들을 바꾸라, 총리 바꾸라, 성화를 부려서 국회에 달려가 애걸하다시피
전쟁 협조를 부탁했었고, 신익희는 총리시켜달라고 몇차례 남몰래 조르기도 했다.
이승만은 다시 한번 되풀이 답변하였다.
“의원 여러분들은 모두 우리 청년들이 지금 나라를 위해 싸우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에게 모든 지원을 보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면서
공산당이 우리를 치는 마당에 내부에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본인은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부통령은 본인의 조언도 요청하지 않고 사임했습니다.
정부에 대한 그의 비난에 대해서는 그가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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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수 2대 부통령(자료사진)
▶ 김성수, 드디어 부통령 당선...“독재와 싸우겠다” 폭탄발언
이시영이 사퇴한 1주일후 국회는 5월17일 후임 부통령에 김성수를 선출하였다.
3차투표까지 가는 난립속에서 최고득표자 2명을 투표한 결과, 김성수 78표 이갑성 73표
근소한 차이로 판가름난 과정은 동아일보가 상세하게 대서특필하였다.
3년전 건국때 총리로 입각했어야 마땅한 김성수가 뒤늦게나마 부통령이 되었으니
각계의 축하 인삿말까지 상보하면서 김성수의 신문 동아일보는 기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김성수는 국회에서의 당선소감과 진해의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취임 포부를 밝히면서
<독재>란 용어를 썼다.
“정부의 과실(過失)을 지체없이 고치고, 일본이나 독일 같은 독재를 배제하고
명실 공히 민주주의를 갖추어 우방들의 협력을 얻어야겠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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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수부통령의 취임수락 인터뷰. 51년 5월18일자 동아일보ⓒ동아DB
김성수의 부통령 탄생을 기다렸다는 듯 국회 각정파들은 ‘내각제 개헌’ 추진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19일자 머리기사--<내각책임제로의 개헌, 국회 각파 대표 완전합의> 5단 제목,
‘헌법 개정론이 국회 각파간에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던바 19일 오후4시 각파대표들의 회합에서 드디어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에 완전합의를 보아, 모모 의원으로 하여금 그 구체적성안에 착수케 하였다. 즉 동 개헌안은 과거 제헌국회당시에도 상정되었던 것인데 당시 국민당계 의원들의 맹렬한 반대공작으로 인하여 3분의 2이상의 표수를 얻지 못하고 실패한 것인바 이번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사건등이 속출함을 계기로 개헌론은 또 다시 국회에서 심의하게 된 것’이라 보도 하고,
김성수와 장면이 포진한 정부의 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와 응원을 은근히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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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수 부통령취임직후 국회 각파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51.5.21일자 동아일보ⓒ동아DB
▶8.15 독립기념일 경축사 <대통령 직선제-국회 양원제> 개헌을 요구
세 번째 건국기념일 8월15일, 이승만의 새로운 결단은 마침내 경축사에서 공개되었다.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유엔이 공산군침략자와의 협상에서 정당한 결말을 짓고 모든 자유국가를 위한
집단적 안전보장책이 수립될 것을 희구하여 마지않는다.
우리 민국 정부의 탄생과 존립은 대부분 미국과 유엔에 의존하고 있다.
오늘 자유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목표로 하고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확고부동한 평화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희망인 것이다.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간에 있어서
언제나 거대한 세계적인 쟁투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 양 사상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이 양자중 하나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봉착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대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합심하여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산주의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정부의 진실한 기초로서 국민이 각자의 정당한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의 2개 조항 수정을 국회에 요구하였다.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직접선거제로 할 것이며 또 하나는 국회를 양원제로 할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국가를 민주주의적으로 건전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각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이 2개 수정안을 지지하도록 요구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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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2대 개헌을 요구했다.ⓒ조선DB
동아일보는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요구는 무시하고 ‘신당 창당’만 2면에 작게 취급했다.
<동아일보> 2면 3단기사
“....(전략).....한가지 더 말할 것은 일반국민이 정당의 의미를 철저히 알기 전에는
정당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이르다고 생각하였는데.....정당의 제도는 각각 국가의 복리를위해서 주장하는 정견으로 되는 것이오, 정권을 잡기 위해 사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그 시기가 와서 전국에 큰 정당을 조직해서 농민과 노동자들을 토대 삼아 일반국민과 나라의 복리와 자기들의 복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합당한 정당을 만들 때가 왔다.
우리 보통 빈한한 사람들은 각기 신문이나 대변인을 두어서 자기들의 의사를 발표하기 어려운 형편이므로 그들이 원하는 바는 종종 무시당하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도시나 촌락에서 근로하는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보호하는 자유와 복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서 이 복리를 장구 보유하기 위하여 이 나라를 더 좋고 더 자유롭게 만들며
자기자손에 전하도록 하여야 될 것이니 우리가 믿는 바는 이제 정당으로써 토대를 삼아
그 위에 정부가 굳게 서야 되는 것이다....(후략)....“
요컨대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 앞에 2가지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첫째, 간선제인 대통령 선출방식을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는 직선제로 개헌할 것.
둘째, 정당제도는 시기상조지만 ‘큰 정당’을 만들어 정당정치를 하겠다는 것.
그리고 휴전협상과 관련하여 ‘집단적 안전보장책’을 언급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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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작 패는 도끼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70대 노인 이승만 대통령.
▶“미국과 일본이 국회에 대통령 바꾸라고 압력 넣고 있다."
정치고문 올리버는 걱정이 되어 이승만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였다.
6.25직전 5.30총선으로 구성된 2대 국회는 무소속-좌익-김구파들에 장악되었고
전쟁하는 대통령의 손발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그들이 이승만이 내놓은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해줄 리가 만무하다. 부통령이 된 김성수마저 ‘이승만 독재’를 입 밖에 내지 않는가.
정치판은 즉각 “이승만이 국회 간선제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으니까 직선제를 요구한다”고
포문을 열었는데...이승만은 올리버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길게 대답하였다.
“국회가 반대할지 모르지요. 그 이유를 아시오?
미국과 일본은 나름대로의 이유로 한국의 대통령이 바뀌기를 원하고 있소.
우리 국회는 한국 국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지금 뇌물도 받고 압력 같은 것도 받고 있는 형편이오.“
일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승만이 그만 두기를 바란하고 말했다.
첫째, 한국점령 학정에 대한 거대한 배상금 요구. 수탈해간 한국보물들의 반환 요구.
둘째, 미국이 한국원조는 소비재 구입에 국한시키면서 일본 산압발전을 지원하는 정책 반대.
“미국이 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잘 알지 않소.
남북통일까지 계속 싸우지 않으면 안될 한국 전쟁을 지금 휴전해야 하겠다는데
나의 고집스런 주장보다는 장면과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맡는다면 38선을 받을 것이오.
한마디로 말해서 현행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출은 사실상 한국 국민들의 선택이 못 되고.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는 전혀 반대로 외부 세계의 압력이 선출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가 민주주의 독립국가라고 말 할 수 있겠소?“
그러므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으면 한국민은 또 다시 강대국의 이용물로,
나아가 구한말의 패권주의 경쟁의 먹잇감처럼 되돌아갈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백번 옳은 주장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이답지 않게 아직도 불타는 독립정신.
이승만을 안다고 자부하는 올리버지만 강인한 초지일관의 모습은 갈수록 새롭다.
자애로운듯 한 없이 어린애처럼 천진스럽다가도 애국심에 불을 뿜는 무서운 눈빛,
대화할 때 빛나는 주름진 얼굴을 쳐다보는 올리버는 존경과 한숨이 저절로 밀려온다.
이 나라에서 이승만은 완전히 혼자 싸운다. 그의 하나님이 어디까지 도와줄 것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