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에서라면 野 발목잡기 극심할 때 與가 선수 쳐 국회 해산할 수도 있어"
  •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던 조해진 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던 조해진 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가 무차별 고소·고발전으로 번지면서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같은 '교착 정국'이 개헌론에 탄력을 더할 가능성에 대해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조해진 전 의원은 일단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바 있는 조해진 전 의원은 29일 본지와 통화에서 "대치 정국이 개헌의 필요성으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며 "우리 개헌론자들은 당연히 (개헌만이 해법이라고) 느끼지만, 일반 국민들은 협치(協治)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아직 연결되지 않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의 현행 국정 운영 체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국민들도 어렴풋이 인식할 때가 됐음에도 이것이 개헌에 대한 지지 여론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해진 전 의원은 국회와 국회의원의 자질에 관한 보수층의 뿌리깊은 불신을 꼽았다.

    조해진 전 의원은 "의원내각제란 국회의원이 총리와 장관을 하면서 국회에서 내각을 만들어내는 제도"라며 "아직 국회의원의 수준이 떨어지고,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다보니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대안으로 권력이 국회에 간다는 것은 못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형편 없는 사람들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내각제를 주저하는 것"이라며 "그것도 일리는 있다"고 일단 수긍했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과반의 발의가 있은 뒤에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고, 다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내려면 실질적으로는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는 원내(院內) 세력 모두가 동의를 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적 추동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국민투표를 감안하면 찬성 여론도 높아야 한다.

    이른바 '6월 항쟁' 때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운동에 가담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개헌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개헌에 필요한 국민적 동력은 전혀 없이, 정치권 안에서만 개헌 논의가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23일 의원회관에서 창립한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조해진 전 의원이 개헌에 대한 확고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의 현 주소를 냉정하게 진단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조해진 전 의원은 "현행 대통령제에서 정치 실패는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 두고서는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내각제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나아가 의원내각제 헌정 체제에서는 지금과 같이 대통령도, 국회도, 국정 운영의 주체 그 누구도 손발이 묶인 채 어찌할 수 없는 교착된 상황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해진 전 의원은 "내각제였다면 지난 총선 결과에 따라, 우리(새누리당)가 국민의당을 잡았으면 (연립으로) 정권을 유지했을 것이고,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공조하게 됐다면 정권이 넘어갔을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원내 다수 의석이 전제돼야 새로운 내각이 출범할 수 있기 때문에 여소야대(與小野大)의 불안정한 상황 자체가 초래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내각제를 가정하면) 새 내각이 출범한지 3개월여 밖에 안 되는 실정일텐데, 총선을 다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정국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너무 안 좋다면 때이르긴 하지만 각 정치 세력이 확실한 다수 의석을 달라는 명분으로 총선을 다시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조해진 전 의원이 지난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맨 앞줄 사진 왼쪽부터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문병호 전 의원, 조해진 전 의원,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조해진 전 의원이 지난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맨 앞줄 사진 왼쪽부터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문병호 전 의원, 조해진 전 의원,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리 정치 현실에서 빈번한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에 대해서도 "야당의 발목잡기가 심하고 이에 대한 여론도 안 좋다고 판단되면, (내각제에서는) 여당이 먼저 (국회 해산과 총선 실시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정현 대표도 '야당이 의석 좀 많다고 완전히 국정을 발목잡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한다'고 했는데, 여당에서 열심히 하려는 마당에 야당이 그렇게 나온다면 선수를 쳐서 총선을 다시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내각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원내 의석 구성의 불안정이나, 핵심 국정 시책에 대한 야당의 '발목잡기식 결사반대'를 이유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러 민의를 들어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영국의 1974년 2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301석, 보수당은 297석, 자유당은 14석을 차지했다. 양당 중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함에 따라, 노동당은 자유당과 연립 내각을 구성했지만 보수당과 의석 수 격차가 워낙 미세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가 없었다.

    특히 전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탄광노조의 총파업 해법을 둘러싸고 노동당과 보수당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보수당은 "이 나라를 통치하는 주체는 노동조합인가, 선출된 대표인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당~자유당 연립내각을 흔들었다. 그 결과 국정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7개월 만에 국회가 해산되고 노동당~자유당 연립내각도 물러나 같은 해 10월에 다시 총선이 실시됐다.

    국정 개혁에 대한 신임을 묻는 의미에서 국회를 해산한 사례도 있다.

    일본은 2003년 11·9 총선에서 자민당이 237석, 민주당이 177석을 얻었다.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의원은 34석의 공명당, 4석의 보수신당과 연립해 원내 안정 의석(480석 중 275석)을 확보하고 총리가 돼 국정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 중 핵심은 우정공사(우리나라의 우정사업본부에 해당)를 민영화하는 개혁이었다. 우정공사 내의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짐에 따라 이를 금융개혁 차원에서 민영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우정공사의 우편사업 부문만 유지한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대해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는 우정공사 내의 금융 부문 종사자는 물론 수익성 악화에 따른 구조조정을 예견한 우편 부문 종사자들도 반발했다. 민주당·공산당·사민당 등 야당은 "국민을 무시하는 개혁은 없다"며 "권력의 폭주를 막아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각(倒閣)을 꾀했다.

    교착 정국에 빠져 국정개혁 추진 동력을 상실한 자민당~공명당 연립내각은 2005년 8월, 지난 총선을 치른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국회의 해산과 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우정공사 개혁 문제를 놓고 같은 해 치러진 9·11 총선에서 일본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개혁'에 표를 던졌다. 자민당이 296석, 공명당이 31석을 획득해 의석을 늘렸으며, 민주당은 113석으로 주저앉았다. 다시 총리가 된 고이즈미 의원은 총선을 치른지 불과 한 달만인 10월 14일에 우정민영화법안을 가결시켜 속전속결로 개혁을 밀어붙였다.

    개혁 과제 하나를 가지고 지난하게 국회에서 밀고 당기고, 대통령은 재촉하고, 그러다가 때를 잃기도 하며, 간혹 개혁 과제 하나를 통과시키려고 '주고 받기'를 하다가 더 큰 것을 잃는 등 현행 우리의 대통령제에서 보이는 부작용은 전혀 없이, 내각제 특유의 '국회 해산·총선거 실시' 하나로 개혁이 해결되는 셈이다.

    조해진 전 의원은 "지금은 사실 국민들이 총선 때 표를 던지는 의식이 굉장히 안일하다"며 "내가 뽑는 사람이 장관이 되고 그 중에 총리가 나와 국정을 이끈다고 하면 국민들이 좀 더 신중하게 (국회의원을) 선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공천제도도 국민들의 철저한 통제 하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개혁하면 지금보다 더 자질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뽑힐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내각제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이대로 대통령제를 두고서는 희망이 별로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