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임기 반으로 줄더라도 개헌한다는 후보 나와야"… DJP 연립 모델?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서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이날 특강에서 임기를 반으로 줄이더라도 개헌을 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서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이날 특강에서 임기를 반으로 줄이더라도 개헌을 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 정국으로 국회 파행이 길어지면서, 개헌(改憲)을 매개로 한 '제3지대' 구상이 다시금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된 이후, 국회는 29일로 엿새째 의사일정의 전면 파행을 맞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정진석 원내대표마저 이날부터 동조 단식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국회 경내에 1500여 당원을 상경시켜 대규모 옥외집회를 여는 등 위력 시위도 병행했다.

    이에 맞서는 야당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푸하하 코메디 개그"라고 한데 이어 "정치쇼"라고 폄훼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 하면 (곧바로) 끝날 일"이라고 총력을 다해 조롱 중이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호소'가 나오자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국민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선수를 치려다가 정국을 그르치고 오히려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와중에 정치적 중립을 내던져 스스로의 권위를 훼손한 정세균 국회의장은 온갖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원래 뉴질랜드에 있기로 계획했던 때라 본청 일정이 없다"는 이유로 잠적 중이다.

    이처럼 국회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한때 국회 질타에 열심히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된 국회를 상대로는 감히 질타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질타를 하기는 커녕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처럼 국회가 청와대를 향해 비수를 들이대지나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회를 상대로 민생경제활성화법안을 처리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정기국회 중에 대통령이 직접 국회로 와서 시정연설을 하던 '아름다운 전통'이 끊기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국면이다.

    대통령과 국회 등 국정 운영의 주체의 손발이 전부 묶여 있는데, 더욱 암담한 것은 내년 12월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이와 같은 국회 의석 구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당에서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이 2020년까지 지속되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정 운영 체제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꽉 막힌 교착 정국이 돼서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면, 과감하게 내각과 국회를 동시에 해산해 국민의 뜻으로 과감히 새 판을 짜는 의원내각제를 상정한 개헌론이 원내외에서 세(勢)몰이를 할 적기라는 지적이다.

    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인물은 더민주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3일 "임기가 반으로 줄더라도 국가를 위해 개헌을 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필요하다"고 언명했다. 이는 내년 12월 대선을 통해 선출될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2020년 4월 총선까지로 한정하고, 이 때 치러지는 21대 총선을 새로운 내각제 헌법에 따라 치른다는 구상과 결부돼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대치 정국이 시작된 직후에도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대통령제 하에서는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개헌론에 불을 붙였다.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 참석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개헌론은 제3지대 구상이나 정계 개편을 위한 촉매로서 주목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토론회에 참석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개헌론은 제3지대 구상이나 정계 개편을 위한 촉매로서 주목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렇다면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에서는 이와 같은 대치 정국을 어떻게 해결할까. 그 답안이 '국회 해산'이다.

    보수 진영의 일부 인사들도 '국회 해산'을 거론하지만, 대통령제 헌정에서는 국회 해산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헌법학의 불변의 원리다. 대통령제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의회는 상원 6년 임기, 하원 2년 임기로 운영되는데, 임기 중에 그 누구도 의회를 해산할 수 없게 돼 있다.

    반면 내각제는 국회의원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만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일본은 전후(戰後) 헌정 70년 동안 중의원(衆議員)이 4년 임기를 채운 것이 단 한 차례밖에 되지 않는다. 자민당과 사회당이 극한대립을 벌여 정국이 막힐 경우, 언제든 국회를 해산해 상황을 리셋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가 해산되면 내각도 함께 물러난다. 정치인들끼리 '그들만의 링'에서 끝없는 싸움을 벌이느니 민의를 다시 물어 정국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치러진 총선에서 패배해 소수로 전락한 세력은 국정을 발목잡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도 된다.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이 안전행정부장관이었던 2014년 9월, 세월호특별법 협상으로 마비 상태에 빠진 국회를 가리켜 "내각제였다면 국회를 해산했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개헌론이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개헌을 매개로 '제3지대' 구상이나 정계 개편론이 활성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계 개편에는 항상 개헌이 끼어 있었다. 개헌은 서로 이질적인 정치 집단 간의 화합 작용을 하는데 최적의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정계 개편의 사례로 거론되는 1990년 3당 합당 당시 민정당을 대표한 노태우 대통령과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합당의 전제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다. 서로를 믿지 못한 이들은 '1년 이내에 내각제로 개헌한다'는 각서까지 만들어 서명했다가, 이것이 〈중앙일보〉에 유출돼 단독 보도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 사이에 성립했던 'DJP 연립'에도 개헌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있었다.

    이들도 단일화 협약문을 만들어 '1999년 연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발의한다'고 서로 약속했다. 연립정부 구성도 내각제 식으로 하기로 약속해, 실제로 DJ가 집권한 뒤 JP의 자민련 측 의원 5명이 입각하기도 했다.

    내년 12월로 예정된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계를 통째로 뒤흔드는 충격 요법 없이는 대통령이 되기 난망해지는 인물이 개헌을 매개로 정계 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계 개편의 모델이 90년 3당합당 식으로 마땅한 차기 주자가 당내에 없는 보수여당과, 경쟁하는 유력 야권 후보에게 다소 밀리는 제2야당 사이에서의 개헌을 매개로 한 전격 통합이 될지, 아니면 DJP 연립 식으로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제세력이 힘을 합쳐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가 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