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서면 예산철에 법인세 인상 등 巨野와 결탁해 맘대로 처리할 가능성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원내대표단 연석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지난 약속 위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성토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원내대표단 연석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지난 약속 위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성토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새누리당이 이정현 대표의 국정감사 복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의원총회에서 국감 거부를 지속하기로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동조 단식에 이어 원내대표단의 서울 한남동 의장공관 항의방문, 초선 의원들의 국회의장 출퇴근 저지 투쟁이 시작되는 등 되레 투쟁의 강도가 올라갔다.

    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일각의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모습이다. 무엇이 '웰빙 정당'이라던 새누리당을 강경 투쟁으로 내몰고 있는가. 그 배경에는 '예산국회' 시즌이 도래하면 국회의장이 나라 전체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국회의장~거야(巨野) 카르텔 독재국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개정 국회법(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제85조3 4항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을 지정할 수 있다.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부수법안은 11월 30일까지 상임위에서 심사가 마쳐지지 않으면, 예산안과 함께 12월 2일에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부수법안은 심지어 무제한토론(이른바 필리버스터)으로도 막을 수 없다. 무제한토론을 규정한 개정 국회법 제106조의2 10항은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이 12월 1일 자정으로 자동 종료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거대 야당 소속 의원들이 무슨 법안이든 발의할 때 예산부수법안으로 신청하면, 이들과 결탁한 국회의장이 지정하고, 다시 이를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권이 자동부의된 본회의에서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있는 셈이다. 특정 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할 때에는 예산정책처장의 의견만 들으면 될 뿐 심지어 교섭단체대표의원과의 합의나 협의조차 필요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조를 통해 통과시키려 하는 법인세 인상안은 이것이 의결되면 세입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예산부수법안에 해당한다.

    더민주 박영선 전 원내대표나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이 대표발의한,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은 이미 예산부수법안으로 신청돼 있기 때문에 정세균 의장이 이를 지정만 하면 된다.

    정세균 의장의 지정으로 이는 예산부수법안이 돼버리고, 새누리당은 어떻게 손을 쓸 방도도 없이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부의될 운명만이 남아 있다.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지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민주~국민의당은 무난히 이를 의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정세균 의장도 지난 22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인세 인상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강행 처리할 뜻을 거리낌 없이 내비치기도 했다. 이날 정세균 의장은 "예산부수법안을 지정해야 할 상황이 오면 세입과 관련된 법안은 당연히 지정대상이 될 것"이라며 "법인세는 세수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상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식이면 극단적으로는 대기업집단을 해체하고 그 자산을 전부 몰수해 세입에 충당하거나, 포퓰리즘 무상복지정책을 위한 세목 신설 등도 전부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국회의장과 거대 야당이 '북치고 장구치는' 방식으로 전부 통과시킬 수 있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원내대표단 연석회의 도중 조원진 수석최고위원과 귓말을 나누고 있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이날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당 소속 의원들의 개별 돌출 행동을 경고하고 나섰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원내대표단 연석회의 도중 조원진 수석최고위원과 귓말을 나누고 있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이날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당 소속 의원들의 개별 돌출 행동을 경고하고 나섰다. ⓒ뉴시스 사진DB

    현행 헌법상 대통령조차도 행사할 수 없는 막강한 권능을 국회의장이 쥐게 되는 것이다. 예산부수법안 지정권이라는 단 하나만을 가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제왕적 국회의장'의 지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어찌보면 입법의 불비라고까지 할 수 있는 거대한 권한을 국회의장에게 부여한 것은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대로 국회의장이 개정 국회법에 따른 큰 권한을 중립의무에 따라 신중하게 행사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10조의 '국회의장의 국회 대표' 규정, 제11조의 '국회의장의 표결 참가 금지' 규정, 제20조의2의 '의장 당적 보유 금지' 규정 등이 모두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우회적으로 적시한 규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세균 의장은 이러한 헌법적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고 노골적으로 친정인 야당만을 편당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대로라면 해마다 12월 31일 자정까지 예산안을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면서 이를 처리하던 구태를 청산하기 위해 도입된 개정 국회법 조항이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만을 위해 악용될 우려가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국정감사 거부에 대한 여론 일각의 비판을 느끼면서도 정세균 의장을 강력히 성토하는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국회의장 독재국가'의 도래를 방지하고 정상적인 헌정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같은 사정을 세세히 국민들에게 알릴 수 없는 관계로 벙아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9일 최고위원·원내대표단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세균 의장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지난 사례를 일일이 언급한 것도, 장차 도래할 예산국회에서 정세균 의장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을 에둘러 경고한 것으로 읽힌다.

    '양치기소년' 정세균 의장의 행태를 이번에 바로잡지 못하면, 예산국회 때 국정의 토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비판 여론에 흔들려 국감에 복귀하자고 주장하는 의원들의 단견(短見)이, 예산국회 때 펼쳐질 '국회의장~거대야당 콤비'의 전횡 가능성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의 뜻도 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난 개회사 파동 때 정치적 엄정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국회의장을 질타했고 책임을 물었고 사과 요구를 했다"며 "정세균 의원은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국민들에게 유감스럽고 이번 사태와 관련한 새누리당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노라고 이야기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대국민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가"라며 "정세균 의원은 얼마되지 않아서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던 약속을 무시하고 또다시 협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원진 수석최고위원도 "당은 당론이라는 게 있다"며 "당의 결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은 합당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게 어제 의총에서 대부분 의원들의 입장"이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