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적 판단 바로잡아… 이례적 당론 표결, 복귀 찬성은 4명에 불과
  • ▲ 새누리당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등과 함께 전국에서 상경한 책임당원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가 28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등과 함께 전국에서 상경한 책임당원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가 28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전격적으로 회군령(回軍令)을 내렸지만, 의원총회에서 거부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정현 대표와의 동조 단식에 돌입하기로 하는 등 되레 정세균 의원 사퇴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로 했다.

    국정감사 거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증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이정현 대표의 충정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지만 정치적 수순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전국 당원 1500여 명이 상경해 치러진 규탄대회로 투쟁의 열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황에서 국감 복귀를 호소한 것은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28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국회 보좌진·당 사무처 직원·전국 책임당원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날치기 의회독재 맨입 정세균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상경한 당원들은 조원진 비상대책위원장의 "68년 동안 지켜왔던 의회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일제히 "정세균!"을 외쳤으며, "정세균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사퇴하라! 물러가라!"라고 부르짖었다.

    이어 진통제 투혼에 나선 정진석 원내대표가 나섰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주 전 정세균 의원과 두 야당 원내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세 사람이 입을 맞춘 것처럼 계속 세월호특조위 연장과 어버이연합 청문회를 받으라고 강요했다"며 "정세균 의원 스스로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지'라며 자기 자리에서 고백하지 않았나"라고 규탄했다.

    이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강행처리된) 23일 밤에도 여당 원내대표인 내게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의사진행발언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며 "중요한 안건 처리를 앞두고 여당 원내대표가 의사진행발언 기회를 달라는데 그것도 묵살하는 의장이 어디 있나"라고 공격했다.

    나아가 "한 야당 원내대표는 페북에 "푸하하 코메디 개그구나"라고 적었고, 또다른 야당은 '정치쇼 하지 말라'고 한다"며 "의회민주주의를 능멸하고 새누리당을 조롱한 그 책임을 묻는 길에 여러분이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전국에서 상경한 1500여 당원들은 "이런 개XX들" "죽일 X들"이라고 분노에 떠는가 하면 "정세균 들어내라" "박멸하자" "때려잡자"라는 추임새로 공활한 가을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게 했다.

    이처럼 규탄의 분위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황이었다. '날치기 의회독재 맨입 정세균 사퇴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제일 앞열에 서 있던 지도부도 규탄대회가 잘돼 고무된 분위기였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조원진 수석최고위원, 이장우 최고위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박명재 사무총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등 새누리당의 지도급 의원들이 28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열린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에서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조원진 수석최고위원, 이장우 최고위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박명재 사무총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등 새누리당의 지도급 의원들이 28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열린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에서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강석호 최고위원은 순서 사이사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옆에 선 이장우 최고위원과 환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원진 위원장도 밝은 표정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단식 중인 이정현 대표가 등장했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이정현'을 연호했다. 한켠에서는 '대통령님! 이정현 대표님! 힘내세요'라고 쓰여진 펼침막이 펄럭였다.

    "내가 좀 많이 어지럽다. 양해해달라"고 말문을 연 이정현 대표는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단식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러더니 "사랑하는 새누리당 의원 여러분은 내일부터 국감에 임해달라"며 "국회의장에 거야(巨野)의 횡포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소수여당으로서 불리한 입장에 있지만 국민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 당 의원들이 국감에 매진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까지 남아서 정세균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며 "특정 야당 편에 서서 국회를 농락한 정세균 의원을 반드시 의장직에서 끌어내고 사퇴시키겠다"고 천명했다.

    한창 분위기가 끓어오르던 규탄대회장에서 천만뜻밖에도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요청이 나오자 일부 당원들은 "맨입으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고무돼 있던 당 지도부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정진석 원내대표와 조원진 위원장, 이장우 최고위원 등은 이정현 대표의 발언이 끝났는데도 박수조차 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즉각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계속하면서도 우리에겐 국감에 복귀하라 했다"며 "국감 거부로 인한 여론에 부담을 느끼는 듯 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세균 의장이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국회법을 준수했고 사과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더라"며 "이런 상황에서 단번에 국감에 복귀해야 할지 회의를 느낀다"고 모두발언을 했다.

  • ▲ 28일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국정감사 거부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발언한 법사위 간사 김진태 의원(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8일 정세균 의원 사퇴 관철을 위한 규탄대회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국정감사 거부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발언한 법사위 간사 김진태 의원(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조원진 위원장과 이장우 최고위원이 "대표의 충정이 그렇더라도, 우리에겐 우리의 길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은 "설령 국감 복귀가 결정되더라도 나는 내일 감사원 국감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헌법기관으로서 소신이 있는 것인데, 정세균 의원의 의회민주주의 파괴 행태를 방치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국감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정현 대표의 기습적인 국감 복귀 요청으로 다소 혼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개회한 의원총회는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에 이어 김진태 의원의 발언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태 의원은 정진석 원내대표를 향해서도 "정세균 의원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짐짓 모른 척 하면서 '내 파트너는 원내대표'라고 했다더라"며 "그렇다면 대표가 국감 복귀를 요청했더라도 정진석 원내대표가 거부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주문했다.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도 공감을 표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대표가 왜 그런 (국감 복귀)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국감을 들어가는 것은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미방위 간사인 박대출 의원도 "(의총에 와서 미리 의원들의 뜻을 물었더라면) 당연히 (국감 복귀 요청 발표를) 말렸을 것"이라며 "대표에게는 대표의 뜻이 있는 것이고, 우리에겐 우리의 길이 또 있다"고 밝혔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대신 단식 중인 이정현 대표와 함께 동조 단식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정세균 의원 사퇴 투쟁의 수위를 더욱 높이기로 의결했다.

    의총을 마치고 나온 조원진 위원장은 "당대표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혼자 단식을 하도록 놔두고 우리가 (국감에) 복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정현 대표도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이러한 뜻을) 전달받고 의총 결과에 따르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회군령(回軍令)은 결과적으로 판단 착오의 느낌으로 남게 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단식하는 기간 중에 지나치게 매체를 많이 접하다가 비판 여론을 과대 평가해서 받아들이게 된 것을 정무적 판단을 그르친 원인으로 꼽았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 3일차인 28일 오전 당대표실에서 〈경향신문〉등 조간 신문을 읽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정현 대표가 단식 중에 지나치게 매체를 많이 접하면서 비판 여론을 과대 평가하게 된 것이 돌발적으로 국감 복귀 요청을 하는 정무 판단을 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 3일차인 28일 오전 당대표실에서 〈경향신문〉등 조간 신문을 읽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정현 대표가 단식 중에 지나치게 매체를 많이 접하면서 비판 여론을 과대 평가하게 된 것이 돌발적으로 국감 복귀 요청을 하는 정무 판단을 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새누리당 관계자는 "옛 거물 정치인들이 단식할 때 신문이나 TV 등의 매체를 일체 끊고, 애초에 상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동료 의원들이 전하는 소식만 접했던 것도 단식 중에는 정무적 판단에 착오가 오기 쉽기 때문"이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도 단식 중에 신문을 봤더라면 23일이나 단식을 이어가 가택 연금을 해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이 완전히 거꾸로 됐다는 설명이다. 홀로 단식을 하다가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소속 의원들과는 의견을 나눌 시간이 적었고, 외부의 비판 여론만 접할 기회가 많아져 결국 사전 조율 없이 규탄대회에서 '덜컥수'가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YS의 상도동계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랜 정치적 경륜이 있고 그 스스로도 단식 투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서청원 전 대표가 격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총 직후 단식 현장을 찾은 서청원 전 대표는 이정현 대표를 면전에서 매우 꾸짖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청원 전 대표는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격노한 표정으로 "전국의 당원들을 다 모아놓고, 내일은 (정세균 의원을 규탄하는) 신문 광고도 나가는데 이게 뭐냐"며 "이정현 대표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이렇게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대표의 돌발 회군령이 나왔다가 이것이 의총에서 번복되는 등 '갈짓자' 행보를 보인 탓에 새누리당의 투쟁 동력이 더욱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벌써부터 야권에서는 이를 호재로 활용할 조짐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결의의 수준이 낮지 않고, 정세균 의장과 야권 인사들의 거듭된 조롱과 자극적 발언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투지를 더욱 불태우게끔 하는 측면도 있어 대치 정국은 최소한 이번 주를 넘겨서는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전혀 (투쟁의 동력이 떨어지는) 그런 것 없고, 오히려 결의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부인했다. 실제로 이날 의총 말미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개별적 행동을 우려한 듯 이례적으로 당론을 정하기 위한 표결까지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결에는 의총장에 있던 새누리당 의원 9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중 80여 명의 의원들은 국감 복귀에 반대하고, 찬성은 4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진태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표결까지 했으니 이제는 다른 소리가 나올 여지가 없지 않느냐"며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도 '당론에 어긋나는 돌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