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하여 북한(北韓)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이 파견한 ‘특사 조의사절단’ 일행 6명이 21일 ‘고려항공’ 편으로 김포 공항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일행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비서 김기남,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양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약칭 ‘아태위원회’) 원동현 실장, 맹경일 ‘아태위원회’ 참사, 리이현 ‘아태위원회’ 참사 및 김은주(여) ‘국방위원회’ 기술일꾼 등이다. 이들은 이날 서울에 도착하는 길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직행하여 가지고 온 김정일 명의의 조화를 고인의 영전에 헌화하고 분향ㆍ조문한 뒤 고인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 김정일의 조문 인사를 전달했다.
     
     북한의 ‘조의사절단’은 서울에서 1박한 뒤 22일 오후 항공편으로 왔던 경로를 되짚어 평양으로 귀환할 예정이며 평양으로 출발할 때까지 아무런 다른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을뿐더러 북측이 최근 현정은(玄貞恩)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또 이번 ‘조의사절단’의 서울 방문에 때를 맞추어 작년 12월1일자로 발효시켰던 군사분계선 통과 통제조치를 일방적으로 해제하는 등의 일견 ‘유화(?)’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 있어서 혹시 이들의 서울 체류 기간 중 남측의 고위당국자와의 접촉, 특히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의 만남이 마련되는 것이 아닌가의 여부에 언론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측 ‘조의사절단’ 일행이 빈소 조문을 마치고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하여 미망인 이희호 여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측 김기남 단장이 동석했던 홍양호 통일부차관에게 “(남쪽 사람들을) 다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배석했던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이 전하여 남측 당국자들과의 접촉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켜 놓고 있다. 이에 대하여 언론보도들은 청와대가 북측 사절단 일행의 이명박 대통령 예방 가능성에 대해서는 “김정일의 친서를 휴대했다면 모르지만…”이라는 말로 평가절하 하면서 현인택(玄仁澤) 통일부장관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쪽을 희망한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북측이 현인택 통일부장관을 대좌의 상대로 수용할 가능성 또한 희박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이번 기회에 남북 고위당국자간 접촉은 무산되든지 아니면 결국 북측 인원의 청와대 예방이 실현되는 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짚어두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이번 북측 ‘조의사절단’의 입국 경위에 관한 것이다. 북측은 이번 ‘조의사절단’의 서울방문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남측의 정부당국은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북측의 ‘아태위원회’가 남측의 ‘김대중평화센터’에 보낸 전화통지문을 통해 ‘조의사절단’의 파견을 ‘통보’하는 절차를 취했다. 북측은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에 ‘조의사절단’의 파견에 대한 ‘허가’를 요청했어야 했으나 그같은 절차를 생략하고 ‘김대중평화센터’라는 민간단체에 대한 ‘통보’만으로 ‘불법 입경(入境)’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취한 조치는 사실은 주권국가로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북측 ‘조의사절단’ 서울방문 사실을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하여 ‘인지’한 상태에서 아무런 공식적 절차 없이 이들의 서울방문을 ‘묵과’했을 뿐 아니라 김포 공항에 정부 대표인 홍양호 통일부 차관을 내보내 북측 사절단을 ‘영접’하는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측 ‘조의사절단’은 마치 그들이 관할하는 지역인 북한 내에서 이동하는 것처럼 제 멋대로 남한으로 와 버렸다.
     
     북측의 이같은 방자한 행동은 그들의 행동이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북측과 가까운 남측의 민간단체를 통하여 특정한 상황을 조성하고 대한민국 정부로 하여금 이를 수용하게 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의 전통적 대남전략을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북측의 행동이 남측에서 논란을 촉발하지 않을 리 없다. 그렇게 되면 북측은 이 같은 논란을 촉발함으로써 이를 통하여 남한 사회의 갈등과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유발하는 부수입을 챙기는 것을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명박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 북측 인사들을 접견하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이명박 정부는 아마도 정권 차원에서 수습하기 어려운 후유 파동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경색되었던 남북관계의 해동(解凍)은 부당하게 억류되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의 석방과 현대그룹의 현정은(玄貞恩) 회장이 평양에서 만들어 가지고 온 5개 항목의 ‘보도문’이나 북한에 의한 일방적인 ‘12.1 조치’ 해제 또는 이번 ‘조의사절단’의 서울방문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의 진정한 해동을 위한 돌파구는 북측이 작년 7월11일 금강산에서 발생했던 고 박왕자 씨의 총격 살해 사건에 대한 분명한 마무리를 하고 ‘개성공단’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취했던 부당한 조치들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시정조치를 할 때라야 비로소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이 핵 폐기에 관하여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때까지는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의 대북 제재조치가 우리의 대북정책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의 하나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우물우물하다가 슬그머니 북측 ‘조의사절단’을 접견하는 일이 발생하고 또 그 접견의 자리에서 앞에서 언급되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이 제대로 짚어지지 않고 물에 술 탄 것과 같은 선문선답(禪問禪答)이나 주고받다 마는 것이 되기라도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 후유파동을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워지리라는 것이다. 사실은, 백보(百步)를 양보하여,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통일부장관이 이들을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 챙겨야 할 일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북측의 ‘말 공부’에 농락이라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정부 차원에서 그로 인한 결과 역시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대북정책은 더욱 꼬이게 될 것이 틀림없다.  
     김정일의 ‘조문 외교’에는 분명히 함정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이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