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승부수로 위기 넘겼지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6일 당무에 복귀해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6일 당무에 복귀해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강행통과된 직후, 사퇴를 선언했던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의 전폭적인 재신임 속에 당무에 복귀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원내대표단회의에 이어 의원총회에 참석해, 당 소속 의원들의 전폭적인 재신임에 감사를 표하면서 타협없는 강경 투쟁 방침을 천명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의회민주주의 파괴·반헌법적 폭거에 따른 참담한 심경을 가누지 못하고 주말 내내 앓아누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이 당 지도부는 25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 의사를 수용하지 않기로 의결하고, 소속 의원들도 의총에서 이를 압도적으로 추인했다.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도 기력을 추스려 이날 국회에 등원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총이 열린 국회본청 예결위회의장으로 들어서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따뜻하게 환영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모두발언에서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정세균 의원의 날치기 폭거를 막지 못해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으로서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능력이 부족한 내게 힘을 모아주고 재신임해준 의원 여러분과 이정현 대표 이하 최고위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세균 의원과 두 야당은 70년 가까이 내려온 헌법과 국회법을 파괴했다"며 "명색이 국회의장인데 '(세월호특조위 활동기한 연장이나 어버이연합 청문회 없이) 맨입(으로 해임건의안 철회는 안 된다)' 운운하며 온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민과 헌법, 국회법을 조롱했다고 고백한 정세균 의원은 즉각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이 싸움은 국민과 헌법·국회법 그리고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싸움"이라며 "원내대표로서 그 싸움의 최선두에 서서 모든 것을 걸고 싸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정진석 원내대표의 모두발언 도중 새누리당 의원들은 여덟 차례의 박수를 보냈다. 모두발언 도중 여러 차례의 박수가 나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로, 정진석 원내대표가 완전히 재신임을 받은 반증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정진석 원내대표가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상황 속에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로 맞이했던 중대한 정치적 위기를 일단 돌파해냈다는 평가다.

    원내대표는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된지 4~5개월이 지날 무렵 정치적 위기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이 무렵에 닥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원내대표직을 상실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6일 당무에 복귀해 의원총회장으로 들어선 정진석 원내대표의 자리로 찾아가 직접 악수를 하며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6일 당무에 복귀해 의원총회장으로 들어선 정진석 원내대표의 자리로 찾아가 직접 악수를 하며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정치권 관계자는 "원내대표가 총재 밑에 정책위의장·사무총장과 나란히 당3역이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위상이 높아져 당대표와 함께 '투톱'이 되면서 계파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졌다"며 "원내 현안을 놓고 협상을 하면 승패가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반대파의 '흔들기'에 당할 명분도 (4~5개월 경과한) 이 무렵에 많이 생긴다"고 귀띔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5월에 선출된 정진석 원내대표의 입장에서는 이번이 중대한 정치적 위기였다는 평이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과 관련해 이렇다할 부결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국무위원의 석식 시간을 보장하라는 요구에는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가 "그렇게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핀잔을 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국회법 조문이 인쇄된 종이를 흔들며 정세균 국회의장의 독단적 의사진행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강경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직후 선제적으로 먼저 원내대표직을 던지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는데, 이 승부수가 먹혀들면서 위기 돌파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향후의 투쟁 방향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호칭을 떼고 그냥 '의원'이라고만 부르면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천명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투쟁을 통해 목표를 관철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정세균 의장을 사퇴시킬 방법은 없고, 정세균 의장도 스스로 물러날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분명한 목적 없이 끝없이 의사일정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는 정세균 의장의 지난 '사드 배치 반대' 개회사 사태 때처럼 '유감 표명'을 받고 뜨뜻미지근하게 접을 수도 없다. '사과'와 '사퇴' 사이에서 달성하기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승리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고민거리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내지 못하면 당내 친박계의 칼끝이 '정세균 사퇴 투쟁'에서 '정진석 사퇴 투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여전히 잠복해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새누리당에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꼭 필요하다. 충청권 4선 의원으로 균형잡힌 정무적 판단력을 갖고 있어, 새누리당을 정권재창출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내년 5월까지 임기를 잘 수행하는 게 긴요한데, 대야(對野) 투쟁을 그르쳐 계속된 정치적 위기 상황을 맞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새누리당 핵심관계자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 요구와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메시지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달한 건 등으로 당내 친박 강경파가 정진석 원내대표를 불편하게 여기는 기류가 있다"며 "이 와중에 정진석 원내대표가 타협적 태도를 보이면 위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열우당이 사학법을 강행처리하자 국회 의사일정을 53일 간 전면 거부하고 추운 겨울날 거리로 나아가 시민들에게 전단을 돌리며 장외투쟁을 벌였다"며 "사학법 재개정이라는 분명하고도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했기에 추동력이 있었던 것인데, 이를 선례로 삼아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