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의장, 정진석에 "눈이 없냐" 막말하더니 스스로 "완벽한 의사진행"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국회 본회의 도중 정세균 국회의장에 항의하는 모습. "방금전에 국무위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하려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말한적이 없다고 하신다"며 황당해 하는 모습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국회 본회의 도중 정세균 국회의장에 항의하는 모습. "방금전에 국무위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하려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말한적이 없다고 하신다"며 황당해 하는 모습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두 정 씨의 싸움 끝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강행 통과됐다.

    당적이 없는 '심판'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대권 욕심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게 존재감을 부각하려 했던 정세균 국회의장, 이에 맞서 국회의장 본연의 미덕인 '공정함'을 당부했던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수 싸움을 벌였다.

    지난 23일부터 시작해 24일 차수 변경 끝에 마무리된 국회 본회의는 애초부터 정진석 원내대표로서는 정세균 국회의장에 맞서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3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 전에 필리버스터를 상정하려 신청서를 가져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올린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앞서 필리버스터를 열어 그를 구하려는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안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둘러 국회 본회의를 개의하면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첫 작전인 필리버스터 시도는 수포가 되었다.

    필리버스터 시도가 무산되자 정진석 대표는 눈을 돌려 국민의당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에 공을 들였다. 그는 김재수 장관 해임에 반대했던 국민의당 소속 농해수위 위원 3명을 추어올렸다.

    그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김재수 장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이 판명됐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의당 농해수위 위원들도 국민의당 의총에서 소상하게 설명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농촌은 지금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농림부 장관을 흔들어 버리면 커다란 농정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에 반대한 의원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같은날 저녁 즈음 "국민의당이 (김재수 해임 건의안을) 당론으로 돌리려 하면 비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활용해 국민의당을 회유하려는 시도였다.

  •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간 충돌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간 충돌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생각은 정진석 원내대표와는 달랐다. 그는 세월호 특조위 조사기한 연장 등을 요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의원총회에서 거듭 폈다. 형식상으로 '자율투표'임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찬성이 압도적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식이었다.

    결국 두 번째 본회의를 거치면서 더 이상 국민의당과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정진석 원내대표는 세 번째 대안으로 대정부질문을 통해 시간을 끄는 작전을 택했다.

    국회법 112조 7항에 따르면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때에는 의장은 그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고 돼 있다. 이 기간 내에 표결 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그 해임건의안은 폐기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이 21일 오후 16시 30분께 제출돼 22일 10시경에 본회의에 보고됐으므로 23일 오전 10시부터 25일 오전 10시 이내에 무기명 토론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는 셈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를 노려 대정부질문 의사 진행을 길게 늘어뜨려 표결절차가 진행될 수 없도록 막으려 한 것이다.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국무위원 관계자들이 답변하는 시간에는 제한이 없어 불가능한 전략은 아니었다.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은 긴 답변을 준비했고 새누리당 의원은 자세히 캐묻는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끌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세균 의장의 독단적 의사 진행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정치적 부담감을 가중시키려는 전술을 펼쳤다는 분석이다.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은 시종일관 야당 편을 들었다는 게 정치권 관전자들의 중론이다. 정세균 의장은 국회법 제20조 2항에 따라 당적을 가질 수 없다. 국회 의사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엄정히 지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정세균 의장이 보여준 것은 외견상으로는 무소속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편파적 진행 뿐이었다.

    정세균 의장은 대정부질문 중인 이우현 의원의 발언을 자르는가 하면 기습적으로 차수 변경을 하면서 차수 변경 사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 과정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정부지원촉구결의안과 상정 순서까지 임의로 맞바꾸며 의장의 권한을 어디까지 남용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새누리당 의석에서 "의장은 평창올림픽보다 해임건의안이 더 중요하냐"는 질타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진석 원내대표가 여기에 가장 거칠게 항의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 이후로 의장이 이렇게 독재 날치기로 한 적이 없다"며 "헌정사에 치욕적인 오점을 남겼다. 국회법을 어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의회주의를 말살시키는 독재자, 날치기 의장"이라고 강도 높게 항의했다.

    정세균 의장은 짐짓 중립적인 체했지만, 편파적 운영을 거듭 지적한 정진석 원내대표에 "눈이 없느냐"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이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의장으로서 권위의 근원이 되는 공정·중립성을 상실했다는 점이 여과 없이 국민들 앞에 노출된 셈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 부분을 끌어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정세균 의장이 아예 정치적 부담감 따위를 도외시한 채 노골적으로 해임건의안 의결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체면 불구하고 나아가자 '절반의 성공'에 그친 셈이 돼버렸다. 

    결국 정세균 의장은 "완벽하게 의사 진행을 했다"고 본인 스스로 사족(蛇足)을 달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임건의안을 표결에 부치기에 앞서 장황하게 의사진행과 관련한 해명을 굳이 해야만 했던 것이 정세균 의장이 처한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정세균 의장은 "(23~24일의 의사) 진행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완벽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전혀 하자가 없다"며 "의사일정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사일정 1항은 해임건의안, 2항은 평창올림픽으로 조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아가 "차수 변경을 해서 본회의를 개의한 것 역시 협의는 합의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법에 처리한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