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김재수 해임건의 거부할 듯… 68년 헌정사 유산도 丁의장 손에 파괴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심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회를 요구하며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던 정진석 원내대표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따로 협의하자며 단상 밖으로 떠밀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심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회를 요구하며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던 정진석 원내대표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따로 협의하자며 단상 밖으로 떠밀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진DB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국회 일정 전면 거부가 결의된 직후 원내대표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 자리가 일시 공백 상태가 되면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가 불러온 국회 파행은 장기화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3일 심야, 정세균 의장이 일방적으로 상정한 김재수 농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국회본청 로텐다홀에서 취재진과 만나 원내대표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국회법을 거리낌없이 위반해 헌정사에 치욕스러운 오점을 남긴 정세균 국회의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앞으로 국회의장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의원일 뿐"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공정한 진행을 책임져야 할 의장이 아닌, 아주 비열하고 교활한 의원인 정세균 의원의 사퇴를 촉구한다"며 "받아들일 때까지 새누리당은 국회의 모든 의사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오만한 다수 의석의 횡포를, 광란의 질주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 여러분 앞에 통감한다"며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선언으로 정국은 격랑(激浪)에 휩쓸리게 됐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을 상대로 △국회의장 해임결의안 제출 △국회 윤리위 제소 △국회의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 △국회의장 호칭 사용 중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퇴를 압박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회 의사일정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까지 동원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치킨 게임'에 돌입한 셈이다.

    문제는 '치킨 게임' 중에 핸들을 돌릴 타이밍을 놓고 원내 파트너와 '물밑 접촉'을 해야 할 원내사령탑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선언으로 공석이 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강석호 최고위원은 정진석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선언 직후 취재진과 만나 "의총장에서 '더한 결심도 하겠다'고 해서 말렸는데…"라며 "(원내대표 사퇴 선언은) 방금 나온 이야기니까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했다. "(사퇴 선언을) 수용은 못한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최고위에서 사퇴 의사를 반려하고 재고를 요청하더라도 정진석 원내대표가 곧바로 이를 거둬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결사 항전에 막 돌입한 마당에 결의가 무뎌지고 전열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심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겸 원내대표)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자리로 찾아가 위로하려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심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겸 원내대표)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자리로 찾아가 위로하려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진DB

    결국 당분간은 원내사령탑 공백 상태가 불가피한데, 그렇다고 정세균 의장이 순순히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할 리도 만무한 만큼 국회 파행은 누구도 손쓰지 못한 채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국은 여·정·청(與政靑)이 한 편이 되고, 의회권력을 쥐고 전횡하는 거야(巨野)가 다른 한 편이 돼서 첨예한 강대강(强對强) 대치 국면으로 확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이날 본회의에서 의결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청와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졌다.

    68년 헌정사상 다섯 차례 의결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청와대에서 수용하지 않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69년 권오병 문교장관 해임건의안과 1971년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이 의결되자, 격노하면서도 모두 수용해 해당 장관들을 경질했다.

    하지만 이들 사례에서는 모두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해 해임건의안이 정상적으로 의결됐다. 정세균 의장이 편법을 동원해 무리하게 강행 처리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은 과거 헌정의 사례와는 달리 정당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법적 요건과 절차, 내용과 명분을 모두 상실한 해임건의안을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박근혜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 친노·친문패권세력이 반발할 것임은 자명하다.

    게다가 친노·친문패권세력은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이른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 등을 법사위·운영위·교문위·기재위 등 관련 상임위에서 전방위적으로 제기해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국민들에게 반복 각인시킨다'는 전략을 수립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국회 의사일정 전면 거부로 당장 2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국정감사가 파행되면 친노·친문패권세력은 새누리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핑계삼아 청와대를 비호하려 한다며 대대적인 정치 공세를 전개할 개연성이 높다. 전선(戰線)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첨예한 갈등 국면에 돌입했을 때 '중재·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국민의당도 그럴 역량을 상실했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사태 때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결국 마지막 순간에 사실상 더민주의 손을 들어줬던 탓이다.

    설령 누군가가 중재·조정을 위해 나선다고 해도,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할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이 공석인데 누가 누구와 머리를 맞댈 것인가. 더 이상 원내 1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국회의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조차 못하게 된 정세균 의장이 초래한 '국회 파행' 사태의 결말이 쉽사리 예상조차 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