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가을에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들...
    ‘사드’, ‘대북 지원’... 그리고 ‘전통 야당’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2012년 11월의 어느 날... 18대 대선(大選)이 한창일 때였다.
    지난 시절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노시인(老詩人)께서 아무개 방송에 출연했다. 
      “후보가 된 이후 보니 안철수는 깡통... 처음에 뭐 있는 줄 알았다. 아직 어린애다...”
    모르긴 몰라도 그 깡통이 “텅 비었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로부터 세월이 제법 흘렀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자위적 조치로서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엊그제 아무개 조간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지난 7월 이 나라에 ‘사드’ 배치가 확정되고
    나서, ‘절안깡’[정치판에서 절대로 철수 안할 깡통]의 ‘쉰당’은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黨論)으로 정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더니 올 여름 처먹은 더위가 가을바람에 소화되는지 슬쩍 입장을 바꾼다.
    이어지는 인터뷰 내용이다.
      “그간 (자신이) ‘사드’ 배치에 반대했던 것은 대북 제재의 실효적 축이 되는 중국과의 외교적 협상을 생략하고 갑자기 발표했던 것 때문이다... 정부가 한 ‘스텝’을 빼먹으면서 많은 걸 잃었는데,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실시한 지금 중국·미국과 물밑 협상을 통해 새 활로를 찾아야...”
    여기까지만 하자. 더 이상은 글이 너저분해져서 안 되겠다. 
  •   적(敵)과 대치하고 있는 전시(戰時) 국가가 전략·전술 무기 배치를 ‘적(敵)의 동맹국’과 협상을 한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뛔국이 북녘 핵무기 포기를 위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이다? 
      뛔국에서 이 나라에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분석한 적이나 있나?
    북녘 핵무기와 뛔국의 전략적 이해 관계를 곰곰이 따져나 봤는가?
      뛔국의 대북 제재 동참은 예나 지금이나 북녘 돼지새끼를 자기 손아귀에 쥐락펴락하기 위한
    수단과 수준에서 적절히 조절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뛔국·양키나라와 물밑 협상을 통해 새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도대체가...

      분명 어디서 귀동냥 눈동냥을 꽤 하긴 한 듯하다. 헌데 그럴듯한 단어와 문장들을 가져다가
    뒤죽박죽 지껄여대니, ‘봉숭아 학당’식의 뜬금없는 줄거리가 되어버렸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빈 깡통에 오물이 들어가서, 이젠 X통이 된 느낌이다.
    이런 경우는 성숙(成熟)이 아니라 그냥 “곯았다”고 한다. 
      이젠 깡통을 치울 때가 된 듯하다. 

      그 애물단지(?) ‘사드’와 관련해서는 “병신(丙申) 육적(六賊)”이 소속된 ‘그당’도 마찬가지다.
    기회주의로 일관하다가 이제 와서 “전문가 간담회, 의원 의견 수렴” 후에 입장을 정하겠단다.
    대부분의 궁민(窮民)들은 그 속심을 이미 다 알아차렸다. “밍기적 대다 말겠다”는 배짱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난데없이, 아니 본색을 드러내며 “북한 당국과 수해 피해를 본 북한 주민을 분리해야 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정부와 민간단체의 지원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그당’ 원내 대표가
    일갈했다. 
      “수해 복구 지원”을 빙자하여 이 틈에 북녘 ‘돼지저금통’ 채우기를 하자는 말씀이다.
    이 나라가 북녘의 5차 핵실험 이후 양키나라·왜국과 함께 대북 제재의 끈을 더욱 조이려는,
    “돈줄 죄기” 압박을 강화하려는 상황이다. 하여, 이건 아무래도 ‘등 뒤에 칼침 박기’에 다름 아니다.
      ‘그당’이 하늘같이 뫼시는 ‘슨상님’과 ‘변호인’(便好人)의 시도 때도 없던 지난날 대북 퍼주기가 어떤 효능(?)을 발휘했는지, 그 원죄(原罪)를 까맣게 잊었나? 요즘 그 원죄에 대한 궁민(窮民)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가고 있다는 사정도 외면하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요즘 ‘그당’은 겹경사로 웃음꽃 시들 날이 없다. ‘그당’의 가오마담인 ‘법가여’[법조개 출신 가을 여인]와 이름뿐인 ‘민주당’의 ‘배영남’[배신의 영등포 남자]이 엊그제 경기도 광주 신익희 선생
    생가(生家)에서 포옹을 했다. 드디어 명실상부한 “도로 민주당”이 된 것이다. 신익희 선생이 ‘민주당’을 창당[1955년 9월 18일]한 61주년 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당’의 실질적인 주인이신 ‘안대재’[안경잽이 대권 재수생]께서 “이제 우리 당은 뿌리 깊은 ‘전통 야당’의 당명이었던 ‘민주당’을 약칭 당명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당의 뿌리인 민주당 창당 61주년을 맞는 날에 발표돼서 더 각별한 의미를 주고 싶다...”고 기뻐하셨단다. 그런데... 
      많은 궁민(窮民)들은 기억한다. 그 ‘안대재’께서는 지난 8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얼빠진 주장”이라고 맹비난했었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1945년 해방 이후 이승만 박사와 함께 그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힘과 열정을 쏟았던 신익희·
    조병옥·장면·김도연 선생 등은 말씀 마따나 ‘그당’의 뿌리라는 ‘민주당’을 창당하고 거기에 몸 담았었다. 
      이런데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얼빠진 주장”이라면서 “민주당이 우리 당의
    뿌리” 운운해서야 말이 되는가. 사실(史實) 외면이거나, 대단한 엇박자 아닌가. 

      한편, “도로 민주당”이 된 것과 더불어 ‘그당’의 또 다른 경사는 그간 ‘그당’의 그림자 실세인
    ‘골전총’[골프 좋아했던 전직 총리]의 복당(復黨)이다. 궁민(窮民)들의 거시기한 정서에 비추어
    앞으로 ‘커다란 역할과 활약’이 예상된다.

      하여간 이러한 겹경사 속에 ‘법가여’는 “하나의 민주당으로 민주 세력의 역사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의 마음과 희망을 담는 큰 그릇이 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전통 야당의 계승”이라...

      시시콜콜 결정적인 때마다 당내(黨內) 분열·상쟁(相爭)·이합집산(離合集散)과
    이 나라를 망조(亡兆)로 이끌었던 ‘무조건 반대’·‘민주 지상(至上)’의 혼란·무능,
    그리고 불분명한 안보·이념 가치관의 리더십은 널리 알려진 사실(史實)이다. 
      그 유전자가 2012년 12월 중순 이후 지속된 ‘대선(大選) 불복’과 사사건건 ‘국정 발목 잡기’,
    그리고 ‘병신(丙申) 육적(六賊)’으로 이어졌다고 하면 과언(過言)일까?
    하긴 그것만이 유일한 집권(執權) 전략이었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여 쭈-욱 ‘야당’으로 남으려는 의지의 표현이 “도로 민주당”의 기치와 그 분의 복당(復黨)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 큰 기대와 함께, 축하와 성원을 보낸다.

      올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이제 세월에 밀려 더위가 멀어져 간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밤에는 숙면(熟眠)하기 참 좋은 때이다.
    가끔 철 지난 모기가 심술을 부리긴 하지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얼토당토않은 딴말을 할 때 이르는 표현이란 걸 모르는 궁민(窮民)은 거의 없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