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와 ‘여피’ 사라진 미국, 군인 보면 “당신의 임무수행에 감사드린다” 인사
  • 자신을 고속버스 기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보배드림'에 올린 첫 글의 일부. 할머니가 위독해 급히 귀가하려는 병사를 도와줬다는 사연이었다. ⓒ당시 보배드림 사연글 캡쳐
    ▲ 자신을 고속버스 기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보배드림'에 올린 첫 글의 일부. 할머니가 위독해 급히 귀가하려는 병사를 도와줬다는 사연이었다. ⓒ당시 보배드림 사연글 캡쳐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가 “한국도 이제는 모병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한동안 이어졌다. 여기에 네티즌들은 “한국의 군대 문제는 ‘돈’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네티즌들의 지적이 현실임을 보여주는 사건이 추석 연휴에 벌어졌다.

    지난 15일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자신을 고속버스 기사라고 소개한 사람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글쓴이는 추석 당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군인 양반’이라는 글을 통해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육군 병사 한 명을 태워줬던 사연을 올렸다. 내용은 이랬다.

    글쓴이는 이날 고속버스 터미널의 버스 승강장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한 병사를 봤다고 한다. 보통 휴가를 나오는 장병들은 군화를 깨끗이 닦고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 병사는 군화에 흙이 묻어 있는 등 일반적인 휴가 병사와는 달랐다고 한다.

    글쓴이가 사정을 물어보자 그 병사는 “할머니께서 위독하셔서 청원휴가를 받아 나왔는데 버스표가 없다”며 “어떻게 버스를 탈 방법이 없냐”고 하소연 하더라는 것이다. 추석 연휴여서 버스가 만석이 된 것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글쓴이는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사 좌석 오른편의 안내원 자리에 타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병사는 계속 미안해하면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들고 ‘버스비’를 내려 했다고 한다. 이를 본 글쓴이는 “그건 버스 내려서 택시비 하라”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고.

    이 내용이 올라오자 ‘보배드림’ 회원들은 글쓴이를 칭찬했고, 커뮤니티 인기글이 됐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이 사연은 삭제되고, 대신 ‘사과문’이 올라왔다. 이 사연이 다른 커뮤니티로 퍼진 뒤 글쓴이를 ‘여성혐오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주장이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글쓴이는 ‘사과문’을 통해 “제가 잘못했으니 ‘여성혐오다’ ‘여자였으면 안 태워줬을 것’ ‘왜 돈을 받지 않고 태워줬느냐’는 쪽지 그만 보내라”면서 “앞으로는 사람들 모르게 ‘좋은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글쓴이의 ‘사과문’이 올라오자 ‘보배드림’ 뿐만 아니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동향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도 관련 내용을 기사화 했다. “나라 지키는 군인에게 그 정도 대우를 해주는 게 무슨 ‘여성 혐오’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 병사를 태워준 버스기사는 이후 온갖 모욕을 당한 뒤 원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보배드림 사과문 캡쳐
    ▲ 병사를 태워준 버스기사는 이후 온갖 모욕을 당한 뒤 원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보배드림 사과문 캡쳐


    일부 네티즌은 군인을 태워준 버스기사를 모욕한 사람들이 ‘남성혐오주의 단체’ 회원들이 아니냐고 추정했다. 지난 5월 말,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두고 집단행동을 했던 ‘자칭 남성혐오주의자’들이 그 후로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군인과 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 공무원’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행동을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군인들이 받는 대우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며 ‘모병제 불가론’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이를 극명하게 대조하기 위해 미국의 사례도 곁들인다.

    미국의 경우 소위 ‘히피 세대’가 나타난 1960년대부터 이들이 ‘여피족’이 된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모든 사람들이 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일등 상사의 정복 수납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 9일(현지시간) 앨버트 마를 美육군 일등상사는 포틀랜드에서 샬럿으로 가기 위해 저가 항공사 ‘US 에어웨이’의 이코노미 석에 탑승했다.

    당시 중요한 군 예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복을 입은 마를 일등상사는 승무원에게 “정복 상의를 옷장에 보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승무원은 “옷장은 일등석 승객만을 위한 것”이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승무원의 태도를 본 다른 승객들은 이내 승무원에게 항의했다. 결국 기내는 고함소리로 가득 찼고, 이 소리를 들은 일등석 승객들이 사연을 들은 뒤 자신들의 일등석을 마를 상사에게 양보했다. 마를 상사는 “괜찮다”면서 자신의 정복 상의만 일등석 승객의 옷장에 보관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를 상사는 항공사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함께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은 집단으로 항공사를 비난했다. 결국 US 에어웨이는 장문의 사과문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군인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풍토는 마를 일등상사의 극적인 사례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이라고 한다.

  • 2014년 10월 앨버트 마를 일등상사 사건 당시 일등석을 양보한 승객의 인터뷰. ⓒ당시 MBN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4년 10월 앨버트 마를 일등상사 사건 당시 일등석을 양보한 승객의 인터뷰. ⓒ당시 MBN 관련보도 화면캡쳐


    영주권을 갖고 미군에 입대한 한국인 혹은 군 복무를 조건으로 美시민권을 얻는 ‘MAVNI’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미군이 된 한국인들이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들도 사람들에게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 왔던 한 사연을 보면, 해군에 입대해 기초훈련을 받은 뒤 신병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들렀다 수십 명으로부터 악수를 요청받고 격려를 받았고, 비행기에 오른 뒤에는 기장이 “지금 승객 가운데 군인 한 분이 타고 계신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큰 박수로 감사를 표시해 달라”고 기내방송을 해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또한 비행기에 탈 때 “일등석, 비즈니스석 승객, 그리고 군인들께서는 먼저 탑승해 달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신기했다는 소감을 털어놓는다.

    미국 유학 중이거나 장기간 생활 중인 사람들은 “미국에서는 군인이라면 백화점, 아울렛, 커피숍, 놀이공원에서 할인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 식사비를 대신 내주는 사람들도 많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군인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과 이미 전역한 군인들에게도 수많은 혜택을 준다고 한다. 

    스포츠계에서도 군인은 스타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매년 봄 프로야구 개막전 때는 경기 시작 전 군인과 그 가족들이 그라운드로 초청돼 관중들의 박수를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관공서, 은행들은 군인에게는 ‘새치기’를 허용하기도 한다고. 여기에 대해 민원인이나 다른 고객들은 누구도 항의를 하지 않는 게 미국 사회의 분위기라고 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당연한 대우라는 뜻이다.

    게다가 전역한 군인과 부상을 입은 군인, 참전 군인들을 위해 일하는 보훈부는 美연방정부 가운데 네 번째로 예산이 많은 부서라고 한다. 국가에서 그만큼 군인을 존중한다고.

    앞서 언급한, 안타까운 사연의 병사를 태워줬다고 버스 기사를 모욕한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아마도 '테러용의자' 취급을 받아 '수용소'에 갇혀 변호사도 없이 조사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스타벅스'가 여군을 비롯한 군인들에게 가장 작은 사이즈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을 당시 트위터 반응 가운데 하나. 현재 한국은 '남성혐오사회'나 다름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 관련화면 캡쳐
    ▲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스타벅스'가 여군을 비롯한 군인들에게 가장 작은 사이즈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을 당시 트위터 반응 가운데 하나. 현재 한국은 '남성혐오사회'나 다름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 관련화면 캡쳐


    고속버스 기사가 위독한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어린 병사 한 사람을 태워줬다는 이유로 ‘여성혐오주의자’라며 갖은 모욕을 당하고, 외국계 업체 스타벅스에서 여군을 비롯한 군인들에게 4,000원 짜리 커피 한 잔 공짜로 준다고 했다가 온갖 비난과 치욕을 받는 대한민국.

    이런 행태를 당연시 하는 나라에서 모병제를 한다면, 과연 누가 군대에 가려 할까. 범죄자? 불법체류자? 용병?

    정치권, 그 중에서도 '금수저 정치인'을 중심으로 '모병제'를 언급하는 저의도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