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북한 조문단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둘다 김 위원장의 측근중의 측근, 실세중의 실세로 꼽힌다.

    올해 83세의 고령인 김기남 비서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최측근 역할을 해온 북한 체제 선전의 수장으로서, 체제선전과 주민 사상교육을 책임진 노동당 핵심부서인 선전선동부와 당역사연구소를 관장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을 겸한 그는 지난 2005년 8.15민족대축전 참석을 위해 북한 당국측 대표단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한 길에 6.25전쟁 이후 북한 당국 관계자로선 처음으로 서울 국립현충원을 참배했으며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했다.

    지난 4일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위해 마련한 만찬에도 참석하는 등 최근 대외관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그는 2000년대 첫 10년의 초.중반에는 방북한 외국 고위인사들을 자주 면담할 정도로 대외관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는 올해 들어 지난 18일 현재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수행 간부 중 가장 많은 59회의 수행 기록을 갖고 있다.
    선전의 '귀재'로 알려진 그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정일체제 강화를 위한 우상화 및 선전을 전담해온 이력을 바탕으로 현재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 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는 업무를 총지휘하고 있다.

    김 비서가 김정운 체제 구축을 위한 선전업무를 맡은 배경에는 정운의 생모 고 고영희씨와 각별한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위원장과 고씨는 김기남 비서 부부를 저택 등에 자주 불러 만찬을 함께 했고, 특히 고씨는 김 비서의 부인을 별도로 저택에 불러 윷놀이 등을 함께 즐길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서는 강원도 원산 출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과 구 소련의 로스토브종합대학를 졸업했으며 1976년부터 10여년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책임주필, 87년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89년 선전선동부장, 92년 부장 겸 선전담당 비서로 승진을 거듭했고, 2000년 선전선동부장 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현재는 비서 직책만 갖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코냑 한병 정도는 거뜬히 해치울 정도의 말술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남 사업의 수장인 김양건(61) 부장 역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을 겸했으며,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참사로 외교 전반도 관장하고 있다.

    그는 2007년 말부터 당 조직지도부와 행정부가 대남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벌여 최승철 노동당 통전부 부부장 등 다른 대남관계 실력자들이 대거 숙청되는 와중에서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에 불러들여 면담할 때 배석했으며, 현 회장과는 별도로 만나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과 남북관계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5개항의 합의를 담은 공동보도문도 내놓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한 군부가 남북관계 전면에 나서 대남 강경책을 이어간 것을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나서 수습하는 과정이라면 김양건 부장은 대남사업 수장으로서 남북관계를 푸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그가 조문단에 포함된 것은 단순히 조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와 대화의지를 우회적으로 내비치고 접촉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2007년 10월 열린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회담 성사의 주역이기도 한 그는 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9월말 서울을 극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으며, 회담 직후인 11월에도 정상선언 이행 방안 논의를 위해 방한, 노 대통령과 주요 당국자들을 면담하고 산업시설도 둘러봤다.

    그는 2005년 김 위원장과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6.17 면담'에 국방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배석한 것을 시작으로 대남사업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 국제부에서 말단 부원으로 시작해 부부장, 부장으로 승진한 정통 당 관료이자 중국 및 일본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핵문제로 부시 미 행정부와 대립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당 국제부장과 국방위원회 참사를 겸하면서 줄곧 김 위원장의 외교브레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김 위원장의 대중국 라인역을 맡고 있다.

    그가 김 위원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것은 아부와 사심을 모르고 매너 좋고 성실하며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한반도 주변정세 등 외교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방한한 그에 대해 남측 인사들 사이에서도 부드럽고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좋은 매너를 보여주는 '젠틀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조문단원인 원동연(62) 아태평화위 실장은 20여년간 남북간 주요 고위급 회담과 접촉에 빠짐없이 관여해온, 대남분야 베테랑이다.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을 겸한 그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때 막후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할 정도로 이론가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력으로 이번 조문단 방한 기간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김양건 부장을 보좌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수행원으로 1차부터 7차 회담에 참가했고 1992년 고위급회담 때는 군사분과위원회 위원으로 나섰으며, 1995년 7월 베이징 2차 쌀회담 때는 북측 대표를, 9월 3차 쌀회담에서는 대변인을 맡았었다.

    그는 또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시찰단의 실무 현안을 책임지는 현장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으며 조평통 서기국 부장 등 여러 직책을 갖고 있다.

    원 실장을 대한 경험이 많은 한 정부 관계자는 그에 대해 "점잖은 성격의 소유자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으며, 일에서는 매우 꼼꼼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맹경일 아태위 참사는 2005년 제16차 장관급회담부터 북측 대표단원으로, 2007년 2월 제1차 핵실험(2006.10) 이후 중단됐던 남북 장관급회담 재개를 위한 남북간 실무접촉엔 북측 수석대표로 각각 참석한 주요 실무자다.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도 겸했다.

    리 현 아태위 참사는 북한의 `차세대 대남 일꾼'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원동연 실장과 함께 막후에서 활동했던 그는 2007년 11월 김양건 부장과 함께 남한을 방문했으며, 2005년 8.15공동행사 때 김기남 비서를 수행해 남측에 왔었고, 같은 해 금강산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 실무협의에도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리 참사는 비교적 중요한 회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비중있는 대남일꾼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차세대 선두주자로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주 국방위 '기술일꾼'은 이미 2007년 11월에도 김양건 부장을 수행해 아태위 실무자 자격으로 서울을 다녀간 적이 있다.

    '기술일꾼'이란 `기술서기'를 말한다. 기술서기는 노동당 비서와 부총리급 이상 간부들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주로 간호사들 가운데 선발돼 간부 1명당 1명이 배치된다.

    김양건 부장이 장관급임에도 기술서기를 대동하고 서울을 방문했던 것은 국방위의 대외업무를 총괄하는 참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