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은 언론에 대통령 비서 인사권을 준 적이 없다

    언론이 취재 부족을 메우려 하지 않고(그렇게 하는 데는 힘이 든다),
    손쉬운 몰아내기 캠페인을 벌인다면 “당신들은 과연 公器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언론은 경영상으로는 私的 소유물이지만 그 기능은 公的이다.
    그래서 公器라고 불리면서 특권을 누린다.
    언론의 특권은 私的 오기(傲氣)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선 안 된다.
    公器가 아니라 凶器가 되기 때문이다.

    趙甲濟         
      


  • 선진국 언론도 정부 비판은 많이 하지만 한국 언론처럼 누구를 잘라야 한다는 투의 기사를 이렇게 많이 쏟아내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비서를 몰아내야 한다는 社說을, 연재소설 쓰듯이 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결례이고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이다. 
      
      한국 언론의 한 병폐는 특권의식이다. 이는 士農工商의 신분 질서 속에서 지식인(士)이 늘 권력을 잡았던 조선조적 봉건체제의 전통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은 주자학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조선조의 양반 체질을 상당 부분 계승하였다.
     
      무엇을 해내는 능력보다는 무엇을 비판하는 능력을 더 重視한다. 이런 기질은 日帝 때 언론이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저항적 기질로 강화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 언론의 자유가 최우선시되면서 기자들의 고자세는 습관화되었다.
     
      물론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에 끼친 한국 언론의 역사적 영향을 과소평가할 순 없다.
    건국 대통령 李承晩 자신이 언론인 출신이고 그가 가장 중시한 것은 언론을 통한 국민 계몽이었다. 韓國戰을 치르면서도 그는 언론 검열을 하지 않았다. 신문이 전투중인 군대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정부를 비판하여도 내버려두었다. 4·19는 학생의거로 알려졌지만 언론의 정부 비판이 촉발한 혁명이기도 하였다.
     
      1960년 4·19에서 1961년 5·16에 이르는 사이 한국 언론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實證하였다. 주요 언론의 대안 없는 선동과 펜을 든 공갈배에 가까운 似而非 기자들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5·16 군사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폭력배와 함께 사이비 기자를 가장 먼저 단속,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비판과 저항을 正義로 여겨온 한국 언론은 전통적으로 정확한 사실 전달과 代案 있는 비판엔 소홀하거나 무능하였다. 논평을 보도보다 앞세우거나 보도를 논평 식으로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보도는 취재를 수반하므로 어렵고 논평은 思考에 의존하므로 쉽다. 한국 언론은 漢字 문명을 떠나면서 교양과 균형감각을 상실하였다. 韓國語로 먹고 사는 언론이 한글專用을 채택, 한국어를 반신불수로 만드는 문명 파괴에 가담한 것은 국민 교양의 기반을 무너뜨린 自我 부정이었다.
     
      1980년대부터 계급투쟁론에 물든 기자들이 등장, 언론을 정치투쟁의 한 도구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같은 시기에 진행된 정보화 추세는 언론의 영향력을 양적으로 확대시켰다.
     
      약 3만 명의 기자가 매일 써내는 기사의 질이 선진국 언론에 비교하면 너무나 저질이다. 이는 국민들의 분별력을 해치고 정치를 誤導한다. 국민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시간은 늘어만 가는데 언론이 공급하는 정보의 질은 떨어지고 기자들의 조선조적인 특권의식은 약해지지 않는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씨 관련 의혹 보도 행태에서도 한국 언론의 이런 특권의식적 惡習이 되풀이 되고 있다.
     
      1. 의혹은 의심이므로 확정된 사실과는 다르다. 의심만으로 사람을 斷罪하다가는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든다. 언론은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의심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실'처럼 무겁게 다루어선 안 된다. 의혹 보도는 머리기사로 올리지 않아야 한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때 머리 기사로 昇格시켜도 늦지 않다. 거의 한 달 동안 ‘사실’이 아닌 ‘의혹’이 너무 크게 다뤄지고 있다.
     
      2. 별건 수사와 비슷한 별건 취재가 유행이다. 기자가 맨첨 제기한 의혹을 확인하는 일에 실패하니 우병우 수석의 가족, 친족으로 취재를 확대하여 이것 저것 다른 의혹들을 제기한다.
     
      3. 언론은 사실이 확정되기 전인데도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대통령이 우병우 수석을 해임해야 한다는 論旨를 편다. 한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물고 늘어진다.
     
      4. 한국 언론의 특권의식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정부의 人事에 대한 개입이다.
    "우리가 이렇게 기사를 쓰면 정부는 잘라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기자들이 많다. 스포츠 기자들까지도 기사를 통하여 국가 대표 팀 감독 인사에 간여하려고 한다.
     
      5. 한국 언론이 의혹 제기 다음에 밟는 手順은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몰아내는 일이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처럼 선동적 의혹 제기에 굴복한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면 오보한 언론은
    勝者가 된 듯 기고만장하고 집단 공격을 받고 물러난 사람은 변호의 기회를 놓친다.
     
      6. 대한민국 헌법을 아무리 읽어봐도 언론에 정부 고위직에 대한 인사권을 준 대목이 없다.
    대통령 비서는 대통령의 分身이라서 인사 청문회 대상도 아니다. 언론이 대통령의 비서 인사에 대하여 한두 번 비판이나 건의는 할 수 있지만 “이래도 자르지 않을래”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이다. 언론은 대통령이나 우병우 수석이 國政 수행을 하다가 잘못을 저지를 때 대신 나서서 책임을 질 수가 없다. 따라서 인사에 간여할 권한도 없는 것이다. 권한 없는 자의 권한 행사가 바로 직권 남용이다. 기자들은, 특권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7. 선진국 언론도 정부 비판은 많이 하지만 한국 언론처럼 누구를 잘라야 한다는 투의 기사를 이렇게 많이 쏟아내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비서를 몰아내야 한다는 社說을, 연재소설 쓰듯이 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결례이고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이다.
     
      8. 언론이 정밀한 취재를 통하여 우병우 수석의 명백한 법률 위반을 밝혀내면 대통령도 감쌀 수가 없고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버티는 것은 언론이 그런 증거를 들이대지 못하였다는 反證이다. 이는 취재 부족이나 혐의 없음을 뜻한다. 언론이 취재 부족을 메우려 하지 않고(그렇게 하는 데는 힘이 든다), 손쉬운 사람 몰아내기 캠페인을 벌인다면 “당신들은 과연 公器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언론은 경영상으로는 私的 소유물이지만 그 기능은 公的이다. 그래서 公器라고 불리면서 특권을 누린다. 언론의 특권은 그러나 私的 오기(傲氣)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선 안 된다. 公器가 아니라 凶器가 되기 때문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