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싸움'을 정확하게 꿰뚫어 봐야

  •   정국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앞으로 1년 반은 정권교체기다.
    각 정파와 사회집단들이 죽기 살기로
    ‘차기’를 선취(先取)하려고 이미 싸우기 시작했다.
    전선(戰線)은 지금 어떻게 그어지고 있는가?
    아직 최종적인 대치(對峙)선이 그어질 단계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무엇과 무엇이 맞붙어 싸울지는 대충 감 잡을 수 있다.

      크게는 우(右)와 좌(左)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이건 8. 15 해방공간 이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반세기 이상 이걸로 싸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계엔 이 수준의 싸움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싸움보다 낮은 차원에서 전개되는 싸움, 즉
    정쟁과 권력투쟁도 그 싸움 못지않게 치열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쟁과 권력투쟁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진영과 좌파 진영 사이의 싸움 이전에
    ‘박근혜 우파’와 ‘반박(反朴) 우파’ 사이의 싸움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친(親)문재인 야당(운동권)과 비(非)문재인 야권(野圈) 사이의 싸움이 있다.
    이른바 ‘보수’도 갈라져 있고, 이른바 ‘진보’도 갈라져 있는 모양새다.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가?
    다당제가 있기 어렵게 돼 있는 지금의 헌법적 제약 때문이다.
    다당제가 있기 좋은 헌법이라면 지금의 정계판도 그대로,
    보수당, 자유당, 온건진보, 급진당의 4개 정도의 당이 있으면 딱 맞을 노릇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지금 개헌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 결코 아니다.
    필자는 현재 시점의 개헌엔 분명히 반대한다.

      필자가 지금 지적하려는 바는 바로,
    양당체제의 압도적 중압 때문에 친박-비박이 갈라서지 못한 채 한 지붕 아래서 싸우고 있고,
    친문(親文)-비문(非文)이 서로 갈라섰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표밭(호남, 진보, 청년, 노동계,
    저소득층)을 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비좁은 영토를 서로 “내가 대표하겠다”고 하다 보니
    큰 틀의 좌-우 싸움에 앞서, 각 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이 더 격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부투쟁이 지금은 너무 과열된 나머지
    집안싸움 아닌 ‘이혼(離婚)도 불사(不辭)‘라는 정도까지 간 것 같다.
    아니, 이혼 정도가 아니라 골육상쟁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 각 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이 파생시킨 현상들 중
    김무성, 박지원 김종인 3인의 거동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이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김무성은 한 동안 꽤 반(反)좌파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더니 근래 와선 갑자기
    “새누리는 너무 극우다” “전에 노동계를 비난했던 것 잘못했다”
    “북에 대해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운운 하며, 좌 클릭 시늉을 하고 있다.

      박지원은 그런 김무성이 “그립다”고 했다.
    김무성은 일찍이 철도노조 불법파업 때도 박지원과 코드를 맞춰
    다 죽은 철도노조 구출 작전에 일역을 했었다.
    그런 김무성은 또 내각제 등 개헌을 통해 의회권력-정당권력-직업정치인 권력을 강화하고
    행정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거동을 보면 그는 ‘마음으로는’ 아마
    박근혜 새누리당을 떠나도 아주 멀리 멀리 떠나
    야당 일부와 오히려 코드가 맞아떨어질 개연성을 엿보이고 있다.
    이점에선 유승민도 비슷할지 모른다.

     김종인은 그 특유의 자질을 드러내 보이며 자신이 마치
    전국의 군웅(群雄)들을 불러다가 제3지대 빅 텐트라도 칠 것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엔 박지원도 코드를 맞추고 있다.
    그가 JP를 찾아간 건 다 그런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1년 반 후의 대선을 앞둔 지금의 권력투쟁은
    호남인 이정현을 당대표로 앉힌 박근혜 캠프,
    TK출신 추미애를 당대표로 뽑은 문재인 캠프,
    그리고 제3지대 빅 텐트론(論)자들 사이의 얽히고 섞인 3자 대결 구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한 것은 박근혜 캠프와 문재인 캠프 둘 뿐이다.
    김무성-박지원-김종인-안철수-손학규-정운찬 운운은, 말은 그럴듯한데 실체가 불분명하다.

     김무성이 과감히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올 타입일까? 나온들 별수가 있을까?
    박지원이 한 정파의 도덕적-문화적 리더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을까?
    김종인에게 ‘말’ 아닌 실력의 인프라가 있나?
    손학규가 대중성과 보스(boss) 기질과 떼거지가 있나?
    정운찬? 안철수? 글쎄요...

     결국 전쟁은 '떼''와 ’떼‘가 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선 박근혜 캠프와 문재인 캠프 둘만이
    장졸(將卒)의 위계질서를 가진 ’무리‘를 이루고 있다.
    문재인 캠프는 야권 내부에서 가장 조직적-정서적 응집력이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말이 임박했는데도 그 어떤 전직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30%대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현재로선 박근혜 캠프와 문재인 캠프만이
    한반도 이념지형을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8. 15는 광복절이자 건국의 날”이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과
    “8. 15 건국 운운은 얼빠진 주장”이라고 한 문재인 전 대표 두 사람의 대척(對蹠)-
    이게 오늘의 한반도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했다가 이내 다시 ”경제도 진보, 안보도 진보’로 왔다 갔다 하는가 하면, 내내 보수라고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중도파 시늉을 하는, 뭐가 뭔지 남도 모르고 자신도 모를 언동을 하는 ‘정체불명’은 ‘제3의 길’도 아닐뿐더러, 확실성-엄밀성-명징(明澄, 깨끗하고 맑은)성도 떨어진다. 이런 것을 중도-중용-중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찍이 참 중도와 참 중용을 설파하신 공자님 부처님에 대한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니다.

     친박과 친문을 다 같이 배척한다고 하는 수사학과 구호 자체는 그럴듯하다.
    필자도 그 둘 다 아니다. 친박-반박 싸움엔 더더욱 끼이지 않는다.
    그저 필자 자신의 기준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 할 따름이다.

    그러나 예컨대 8. 15란 어떤 날이냐고 물었을 때
    거기엔 “해방된 날이자 대한민국 건국일이다”와
    “건국일은 아니고 해방된 날일뿐이다‘의 두 답변밖엔 있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당당하게 선택하는 것만이 정직하고 정확한 답변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정작 치열한 싸움은 바로 그 둘 사이의 싸움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도 그 둘 사이의 싸움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