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우파·경제 좌파 영역 기반한 새로운 정치세력화 가능성 '꿈틀'
  •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문병호 전략기획본부장, 김영환 사무총장 등이 지난 21일 손학규 전 대표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영환 사무총장은 우회적으로 입당을 권유했지만, 손학규 전 대표는 소이부답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문병호 전략기획본부장, 김영환 사무총장 등이 지난 21일 손학규 전 대표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영환 사무총장은 우회적으로 입당을 권유했지만, 손학규 전 대표는 소이부답했다. ⓒ뉴시스 사진DB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원내 거대 양당의 당권 경쟁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은 외려 더욱 풍성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로 뒤덮이고 있다.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이정현 대표가 승리한데 이어, 더민주 8·27 전당대회에서는 친문패권계파를 등에 업고 있는 추미애 의원이 앞서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중간 세력이 모여서 새로운 정치 지형에서 독자 세력화를 모색한다는 그림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비박~비문 총결집 구상, 총선 이전부터 나와

    이를 최근 구체화하고 나선 것은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임기가 만료되는 더민주 김종인 대표다.

    김종인 대표는 19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에서 "새누리당의 친박은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지만 도로 친박이 됐고, 친문도 심판을 받았는데 여기도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며 "여야 모두에서 양 극단이 기승을 부리면 견디지 못하는 세력들이 중간에서 헤쳐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21일 열렸던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경제민주화는 내게 주어진 천명"이라며 "어떠한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더민주 당적에 연연하지 않고 모종의 정치적 역할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거슬러 올라가면 비박~비문 연합을 통해 솥발과 같은 천하삼분(天下三分)을 가장 먼저 주창한 인물로는 국민의당의 설계자로 불리는 '제갈량' 문병호 전 의원이 있다.

    문병호 전 의원은 애초부터 3당에는 기존 양당에서 계파패권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봤다. 또 일찌감치 "이번 4·13 총선은 친박과 친노패권주의를 동시에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기도 했다.

    4·13 총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이 있었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새누리당에서는 친박이 다시 당권을 잡고, 더불어민주당은 '도로친문당'이 된다고 하면, 내년 12월 대선에서 '재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다시 한 번 정계의 '빅뱅'이 일어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말이 된다.

  • ▲ 안보 우파·경제 우파의 영역을 새누리당 친박계가, 안보 좌파·경제 좌파의 영역을 더불어민주당 친노·친문패권계파가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 우파·경제 좌파의 영역이 새로운 정치 세력화의 근거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뉴데일리DB
    ▲ 안보 우파·경제 우파의 영역을 새누리당 친박계가, 안보 좌파·경제 좌파의 영역을 더불어민주당 친노·친문패권계파가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 우파·경제 좌파의 영역이 새로운 정치 세력화의 근거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뉴데일리DB

    ◆'제3대표주자' 산실 자처하는 국민의당에 笑而不答

    그렇다면 비박~비문 세력이 결집한 제3대표주자는 대체 어디서 나오게 될까. 문병호 전 의원이 설계한대로 국민의당이 제3대표주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영환 사무총장, 문병호·최원식 전 의원은 지난 21일, '제3대표주자론'과 관련해 끊임없이 정치권 인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영환 사무총장은 "저희(국민의당)가 집을 잘 지어놨다"며 "산(강진)에서 내려오면 좀 들러서 편히 쉬어달라"고 입당(入黨)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손학규 전 대표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었다.

    비단 손학규 전 대표의 소이부답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비박~비문 결집 시나리오 중에서, 이러한 세력들이 일제히 국민의당에 입당해 국민의당을 플랫폼으로 총결집한다는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재오 전 의원의 가칭 늘푸른한국당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원외 세력이 비유하자면 지난해 야권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선도창당(先導創黨)을 했던 박준영 의원의 신민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추후 손학규 전 대표와 다양한 새누리당 내의 비박계 인사가 이에 가세해 제4정당으로 거듭난 뒤, 국민의당과 5대5 지분으로 통합한다는 '3단계 비박~비문 통합론'이 거론되는 정도다.

    ◆안보 우파·경제 좌파가 비박~비문 최종 결집처?

    제3당이자 원내교섭단체로, 김영환 사무총장의 말대로 '잘 지어져 있는 집'인 국민의당이 왜 '비박~비문 제3대표주자'를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을까.

    정치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유권자 성향을 크게 구분 짓는 안보와 경제를 두 축으로 놓고 바라볼 때, '안보 우파·경제 우파'의 영역에는 새누리당의 친박계와 일부 비박계가 있다"며 "이와 극단에 위치하는 '안보 좌파·경제 좌파'의 영역에는 친노·친문패권 세력과 이석기 전 의원을 위시한 구 통합진보당 위헌세력, 그리고 국민의당 내의 이른바 DY계가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제3대표주자가 나올 수 있는 지점은 적잖은 유권자가 분포해 있는 '안보 우파·경제 좌파'의 영역"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비정상적인 3대 세습 북한 김정은 체제에 질려버려 대북(對北) 안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날이 심화되는 양극화 등으로 인해 경제 정책의 일대 전환을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안보 우파·경제 좌파'의 영역에는 사회적경제기본법 등 좌파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공언해 박근혜정부와 마찰을 빚었으면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있어서는 "왜 배치 않느냐. 청와대 얼라들 때문이냐"며 일찍이 친박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일부가 위치해 있다.

    또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보와 생존의 문제"라고 추어올리면서도 "경제민주화는 내게 주어진 천명"이라고 '안보 우파·경제 좌파'로의 포지셔닝을 분명히 한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노인기초연금을 둘러싸고 박근혜정부와 정면 충돌해 결국 당적까지 옮기게 된 진영 의원 등 더민주 비노·비문계도 이 영역에 있다.

    국민의당에서도 황주홍 의원 등 많은 합리적 인사들이 이 영역에 분포해 있다는 분석이다. 적잖은 정치인이 이 영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원내 3당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셈이다.

  • ▲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의 3대 세습과 핵개발·탄도미사일 위협 등 변화된 안보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낡은 포지셔닝을 고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의 3대 세습과 핵개발·탄도미사일 위협 등 변화된 안보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낡은 포지셔닝을 고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박지원, '사드 반대'로 극단 영역으로 치달아

    따라서 이 영역을 선점하고 이 영역을 기반으로 외연을 확장했어야 하는데, 안철수·천정배 전 공동대표 체제의 붕괴 이후 국민의당의 키를 잡게 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9단'이라는 별칭에 걸맞지 않게 결정적 오판을 저질렀다.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는 것일까. 사드 주한미군 배치 반대에 앞장서서 나서다가 국민의당의 기반이 돼야 할 중도 성향, 엄밀히 말하면 경제는 좌파 성향이지만 안보는 우파 성향인 유권자들을 전부 흩어버린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지원 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점이었을 것"이라며 "DJ의 정치적 영역이 '안보 좌파·경제 우파'였는데 그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하는 박지원 대표로서는 이 영역을 벗어나는 포지셔닝을 하게 어려웠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박지원 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7주기 추도식에서도 "DJ가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했겠느냐"며 "사드는 불필요하므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익을 지키라고 했을 것"이라고 고인의 말을 빌려오기도 했다.

    박지원 위원장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는 이 영역의 유권자 계층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협소하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DJ 시절'에나 통할 법한 포지셔닝으로, 비박~비문 세력의 최종 결집처로 '안보 우파·경제 좌파'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20년 전의 낡은 정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22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황주홍 의원이 "(박지원) 선배의 낡은 정치 때문에 당이 이 지경이 됐다"고 공박하자, 박지원 위원장이 격노해서 거친 언사로 맞받아친 것은 이러한 초조함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당의 잘못된 포지셔닝 때문에 '제3대표주자'를 낼 수 없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설계자' 문병호 전 의원의 4·13 총선 낙선이 다시금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그림'으로서는 그럴싸한데 실현 가능성은…

    국민의당이 그 일익(一翼)이 되느냐에 관계없이 '비박~비문 제3대표주자론'은 이론상의 그림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화될 수 있을까.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안보 우파·경제 좌파' 영역에서의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역 중심 대중정당 경쟁 구도를 근거로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점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언젠가는 정책과 이념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대결하게 되겠지만, 주요 정당들의 대선 후보 경선까지 불과 1년도 안 남은 지금 그러한 급격한 정치 지형의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며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갖지 못한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은 어려울 것"이라고 점쳤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충청 대망론' '신DJP연합론' 'PK동진론' 'TK~충북~강원 3각동맹' 등 지역연합 차원에서 대선을 조망해보는 게 좀 더 유의미하지 않겠느냐"며 "대다수 유권자들은 아직 경제와 안보의 좌우에 따라 표를 던질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내다봤다.

    만일 비박~비문이 결집한 새로운 정치 세력에 확고한 지역적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 정치 세력의 탄생에는 지난 4·13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석권한 국민의당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런데 정작 호남에는 '안보 우파·경제 좌파'와는 극단에 위치하는 '안보 좌파·경제 우파' 성향의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DJ의 햇볕정책 계승을 자처하는 이들 때문에 박지원 위원장도 이러한 노선을 걷고 있다. '전북의 맹주'를 자처하는 정동영 의원의 정치 노선도 '안보 우파'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두고 정치권 관계자는 "비박과 비문 성향이라는 것만으로는 너무 잡다한 스펙트럼의 정치인들이 모여 있어 하나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큰 그림으로는 그럴싸하지만 내년 대선에서 유의미한 실체화를 이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