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 "곡식 여물게 하는 것엔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있어"정진석·나경원·강석호 압박에 '사태 해결 의지' 처음으로 밝혀
  •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우병우 사태의 해법을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건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우병우 사태의 해법을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건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를 둘러싼 집권여당의 어수선함이 극에 달했다. '피로스의 승리'까지 거론되며 전방위적 압박이 가해지는 가운데, 이정현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취지로 해명에 나섰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3선·전남 순천)는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지난 8·9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혁신 단일후보'를 칭하며 차점 득표를 기록한 주호영 의원(4선·대구 수성을)도 자리했다.

    주호영 의원은 이날 공개 모두발언을 통해 "언론 1면에 연일 나오고 있는 현안이 소위 우병우 사태"라며 "민심만 보고 가야 하는데, 당이 민심을 제대로 정리하고 있는지 걱정"이라고, '우병우'의 이름 석 자를 거론해 파문을 일으켰다.

    아울러 "내년 정치 일정에 선거가 많은데, 국민만 보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당정청이 협력해야 할 때가 있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있는데, 지도부가 심각하게 숙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병우 사태'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올해 4·13 총선에서 참패했던대로 내년 4월 재·보궐선거와 12월 대선까지 연패하고, 속절없이 정권을 야당에 내주게 된다는 준엄한 경고의 목소리다. 실제로 야당 초선 의원들은 '초선 의원 행동의 날'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한 언급을 굳이 빼기로 할 정도로 이 사태의 장기화를 즐기고 있는 형편이다.

    주호영 의원은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며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피로스는 기원전 에페이로스 왕국의 참주(僭主)였다.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원정해 고대 로마와 두 번 싸워 이겼으나 자신의 손실도 막심했다. 두 번째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러 온 사신에게 "우리가 로마군과 한 번만 더 싸워 이긴다면, 우리는 완전히 끝장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옆자리의 정진석 원내대표가 두 손의 깍지를 끼운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옆자리의 정진석 원내대표가 두 손의 깍지를 끼운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언론과의 싸움, 비판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들 그 과정에서 민심을 잃는다면 결국 '완전히 끝장날 것'임을 에둘러 일깨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도 "당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도 필요한 모습"이라며 "지금 당이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안타까움이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최근 인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면서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 특별히 말씀은 안 드리겠다"고 오히려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이러한 중진의원들의 지적에 강석호 최고위원이 맞장구를 쳤다. 강석호 최고위원(3선·경북 영양영덕울진봉화)은 "지난 19일 당의 원로인 고문들을 모셨을 때도, 정부와 여당의 관계에서는 건전한 쓴소리와 단소리를 다해야 여당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며 "대표와 우리 (최고위원)들이 그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열심히 잘하겠다"고 화답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로 민심을 잃는 사태에 대해서는 많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실제로 우려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4선·부여공주청양)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주변에서 '민정수석이 그렇게 쎈 사람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민정수석은 대단한 고위직 공직자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제기된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한 참석자들의 발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제기된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한 참석자들의 발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러면서 "맹자는 '저잣거리의 건달이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황제가 되고, 그 황제의 마음을 얻으면 공경과 대신이 된다'고 했다"며 "백성이 권력의 원천이라는 맹자의 가르침대로 국민이 무겁고 공직자는 가볍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당내의 저울추가 우병우 민정수석이 어떤 형태로든 거취를 정리하도록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쓴소리'의 형태로 건의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자, 그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정현 대표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논의된 전기료·학교급식 등 민생 사안에 전심전력하고 싶은데, 자꾸 '우병우 사태'가 발목을 잡자 이에 관한 당내 논란을 어떻게든 매듭지어야겠다는 의도에서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정현 대표는 "벼가 익고 과일이 익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해와 구름, 비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작용을 한다"며 "나아가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상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는 곡식과 과일을 여물게 만드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청와대에 우회적으로 민심을 전달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집권여당 당대표로서 공개적으로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 것은 피하되 '바람'처럼 보이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민심을 전달해서 '우병우 사태'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까지 나온 이상 8·9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권을 잡은 이정현 대표로서도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비유를 쓴 만큼 물밑 조율을 통해 사태 해결의 가닥이 잡히기를 기대해보자"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