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박제가도 당대에 개탄했거늘… 4200억 '민생 성과'에 초점 맞춰야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1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1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조선시대 임금도 가뭄 등으로 백성이 고생할 때는 감선령(減膳令)을 내렸다."

    지난 11일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의 신임 지도부가 청와대의 초청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할 때, 송로버섯 등 진귀한 식재료가 일부 사용된 것을 놓고 자칭 역사학자인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비난한 말이다.

    가뭄이 극심할 때 임금이 구중궁궐 안에서 수랏상에 고기 반찬을 물린 것이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됐었나. 조선이 망하고 문명 개화한지 백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진실로 감선을 입에 담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가뭄이 극심하면 수차(水車)를 보급하거나 저수지를 조성해서 농지 관개를 개선할 궁리를 해야 하는 게 위정자의 임무다.

    한당(漢黨)의 영수 김육은 일찍이 수차 보급을 주장했지만 "조선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저수지는 농민들이 부역(賦役)을 감내하며 애써 조성해놓아도 탐관오리나 세도 척족들이 차지하고 앉아 수세(水稅)를 악랄하게 거두니 백날 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임금이 이러한 현실을 어찌하지 못하고 단지 가뭄이라 백성들이 고통받는다 해서 몇 가지 찬수를 줄였던 것이 진정 이 시대에 인용까지 해가면서 본받아야 할 고사인가.

    그렇게 감선해가며 백성과 고통을 함께 하는 시늉을 한 결과는 망국(亡國)이었다.

    성리학근본주의가 도를 더해 밤낮없이 검소만 찾다보니,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증진해 백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백성 전체의 삶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된 것이, 마치 노무현정권 때 중산층을 서민으로, 서민을 빈민으로 끌어내린 것에 비견할 만하다.

    그렇기에 실학자 박제가는 이미 북학의(北學議)에서 "사치가 나날이 심해진다고 하지만 근본을 모르는 말"이라며 "우리나라는 검소를 찾다가 쇠약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제가는 "무늬 있는 비단옷 입는 것을 사치로 여기니 나라 안에 비단 짜는 기계가 없어졌다"며 "쭈그러진 그릇을 그냥 쓰는 것을 검소라 하니 대장장이나 옹기장이가 기예를 연마하는 일이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급기야 "사농공상이 다 곤궁해져 서로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궁문을 지키는 위병도 가죽띠 대신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매고 있으니 진실로 부끄럽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1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경청하는 가운데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1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경청하는 가운데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당대의 학자도 이미 가뭄에 감선하는 시늉을 하며 이를 검소의 미덕인양 포장하는 행태에 개탄했거늘, 초정(楚亭)이 타계한지 이백 년이 넘은 이 마당에 새삼 감선을 찾는 사람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이런 식이면 당장 끼니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밥은 어떻게 목으로 넘길 것이며, 밥먹고나서 그 비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떻게 사서 마실 것이며, 무슨 염치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쇼핑을 할 것인가.

    이른바 '맛집'도, 카페도, 대소 상점도 모두 폐하고 전 국민이 모두 '평등'하게 곤궁해져서 서로를 돕지 못하고 다함께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겨우 연명하는 시대가 도래해야 비로소 좌파 학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까 싶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주장에 그저 신이 나서 장단을 맞추는 세력들이 원내에 존재한다는 것에 더욱 기가 찬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원내부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예산은 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라며 "입으로는 콩 한 조각도 나눠먹자고 이야기하면서 청와대에서 이런 식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장정숙 원내대변인도 이날 "청와대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당선을 축하하며 식탁에 캐비어·송로버섯·샥스핀 등을 올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며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이 찜통 무더위에 에어컨조차 켜지 못하는 '민심의 강' 건너에 있는 궁중 옥반가효(玉盤佳肴)"라고 거들었다.

    감선(減膳) 주장에 장단을 맞출 정도로 사고 방식이 조선시대 성리학근본주의에 멈춰 있으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에 놀라 황망히 상국(上國)의 칙허(勅許)가 있었나 해서 분분히 연경(燕京)에 다녀왔나 싶다. 사대(事大)하며 대국(大國)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작태가 다 이 때문이었나.

    당청(黨靑)은 11일 오찬 회동에서 7~9월 전기료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치에 따라 인하되는 요금 총액 규모는 4200억 원에 달한다. 오찬 회동을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혹서에 따른 국민의 고통을 4200억 원 만큼이나 덜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송로버섯을 감선(減膳)했으면 단돈 1전이라도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가. 국민은 실제로 일을 해서 먹고사는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의 안위를 든든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청와대 회동의 식탁에 무슨 반찬이 오르고 물려지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진실로 헌법기관 중에서 일은 전혀 하지 않고 허구헌날 세비(歲費)만 축내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눈치가 보이던 판국에 조선시대 임금이 백성과 고통을 함께 한다며 감선하던 시늉을 했던 대목에서 무릎을 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