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드 五賊(오적)’ 이야기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 (뉴욕에서)

  • 김지하 시인은 1970년 思想界 5월호에 부정부패로 썩어빠진
    사회지도층을 乙巳五賊(을사오적)에 비유한 譚詩(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있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기를 하나 쓰것다/---’며
    짐승스런 몰골을 한 다섯 도둑(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將星, 장차관)의 흉폭하고 타락한 실상(김지하 시인의 표현)을
    통렬한 풍자로 엮어낸 김지하 시인은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다”고 했다.
    나 역시 나라 거덜 내는 ‘사드 五賊’이 있으니까 ‘사드 五賊’ 이야기 좀 써야겠다.

    김지하 시인이 말한 짐승스런 몰골을 한 다섯 도둑은 오늘의 도둑에 비하면
    도둑 축에도 끼지 못하는 좀도둑들이다.
    뇌물 좀 챙겨 일반 서민들보다 조금 잘살기는 했어도
    사드五賊처럼 나라 거덜 내는 도둑심보(매국보)는 없었다.

    김지하 시인은 다섯 도둑의 뱃속은 오장육보가 아니라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 붙어
    오장칠보라고 했지만, ‘사드 五賊’(더민주당, 국민의 당, 새누리당(좀비 21명), 언론, 깡통지식인)은 황소불알이 아니라 南山만한 도둑보(賣國-매국보)가 하나 더 붙어 오장팔보다.

    1950년대 말, 그처럼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백성(국민)을 향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一喝(일갈)한 함석헌 옹은 “모든 역사적 현실은 자신이 택한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적 弊害(폐해)는 김대중, 노무현이 元祖(원조)다. |
    하지만 국민의 좀비정신이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국민 스스로가 책임져야할 문제다.

    함석헌 옹이 精神(생각)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말하며 “국민아, 깨어나라!”고 절규하던
    1950년대, 60년대는 6.25전쟁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악의 빈곤과 갈등을 겪던
    시대였다. 김지하 시인이 五賊을 쓸 때만해도 나라 살림은 그와 비슷한 상태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드 五賊’이 국민전체를 좀비(살아 움직이는 영혼 없는 시체)로 만들어
    나라를 김정은에게 송두리째 상납하려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를 되새겨 봐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한 조지 샌타야나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 평화, 풍요가 어디 공짜로 얻은 것인가?

    거기엔 건국주역들과 산업선배들의 엄청난 피와 눈물과 땀의 흔적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흥건히 배어있다. 불과 반세기 전의 비참했던 처지(역사)를 벌써 잊었다면 조지 샌타야나의 경고는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보편적 양심마저 저버린 오만 한 자들에게 역사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역사의 기억은 정확하고 공정하다. 뒷거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섭다. 그러면 ‘사드五賊’은 역사의 기억에 어떤 몰골로 남을까? 그들의 뱃속을 들여다보자.

    ‘사드 五賊’이 벌이고 있는 짓거리, 이게 어디 대한미국 국회의원, 정치인, 언론, 지식인들이 할 짓인가. 어느 사회건 정치엘리트와 지식엘리트 두 집단이 그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간다고 하지만, 국가와 사회를 망치는 집단 또한 그들이다. 지금 한국의 경우가 그렇다.

    첫째 도둑, 더불어 가 아니라 더러운 민주당, 분열, 거짓말(속임수), 선동, 친북, 부도덕의 대명사인 이들의 유전자에 알 맞는 서식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인민공화국이다. 북이 있어 김대중이 있고, 김대중이 있어 더민주당이 있다.

    사드 문제가 국가적 큰 이슈가 된 근본 원인은 바로 북核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공범자 김대중과 북核 비호에 앞장서며 철저하게 국제대변인 역할을 한 노무현의 ‘매국보’에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원죄라는 말이다.

    한국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철저하게 배신한 김대중의 졸개 6인방의 訪中행각, 4억 5천만 불 뇌물 싸들고 김정일을 찾아가 무릎 꿇은 김대중의 ‘賣國행각’과 무엇이 다른가.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시대의 영웅을 보내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신 조물주께서 어쩌다 黑心(흑심)의 화신 김대중 같은 奸雄(간웅)을 보내며 노무현 졸개까지 딸려 보내는 실수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햇볕정책(sun shine-썬 샤인) 내걸고 김정일의 구두 닦아주는 슈 샤인(shoe shine) 사기행각 벌인 결과가 오늘의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죽어도 대한민국 잘되는 것은 못 보겠다는 더민가 사드배치에 박수를 친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고 이상한 것 아닌가?

    둘째 도둑, 박지원의 당으로 전락한 국민의 당,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천하의 모사꾼 박지원이 국민의 당을 장악하는 과정이 2차 대전 후, 동구권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던 스탈린의 수법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호박에 줄그어 수박 만드는 박지원의 공산당 수법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다.

    사드배치에 까무러칠 정도로 반대목소리를 크게 낸 집단이 ‘국민의 당’이다. 박지원이 누군가? 김정일의 忠犬(충견) 중 충견 아닌가. 대한민국의 40여개 언론 수장들을 김정일에게 충성맹세 시킨 박지원, 아마도 사드 결사반대는 김정은에 대한 제2의 충성맹세일 것이다.

    김정일에게 4억 5천만 불이라는 엄청난 核 자금을 상납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사기 친 박지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그런 박지원 당이 앞으로 어떤 대형 사고를 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공산가족사를 들추어 봐도 확인되는 일이지만 제 입으로 공산주의자라고 밝혔으니 박지원은 철저한 북쪽 사람이다. 그런 박지원이가 지금 국민의 당을 ‘박지원 공화국’ 만들기 공작의 전초기지로 삼아 좌향좌 행보를 강행하고 있다. 사드배치 반대도 그 일환의 한 수단, 국민전체의 감시대상이다.

    건전한 판단력은 성숙한 인격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저분한 과거(여성편력부터 국가배신행위까지 박지원만큼 흉측한 과거를 가진 정치인은 없을 것)의 인격체에서는 절대로 건전한 판단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박지원의 국민의 당은 가장 위험한 정당이다.

    셋째 도둑, 최경환을 비롯한 새누리당 좀비 21인이 사드반대를 거들고 나섰다.
    票만 준다면 김정은에게도 영혼을 팔아넘길 위인들, 한마디로 여의도 쓰레기들이다.

    새누리당이 두 야당과 다른 게 무언가. 사드반대 팻말을 여당, 그것도 현 정부의 부총리 출신이 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도 헤아리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엔 희망이 없다. 어쩌면 새누리당의 매국보가 제일 클지도 모른다.

    넷째 도둑, 한국 언론이 이처럼 썩은 것은 언론이 권력화 되면서 친북좌경 화로 빠져든 게
    그 원인이다. 썩은 고목나무엔 꽃이 피지 않고, 부러진 펜 끝에선 바른 글이 나올 수가 없다.

    언론의 기본은 현실을 바로 진단하고 바른 처방을 내는 데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이슈일수록 언론의 보도태도는 정직하고 공정해야 한다.

    특히 용어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같은 사실 보도라 해도 용어선택에 따라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절망을 줄 수도 있다. 더욱이 이념문제가 전제된 사안이라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곡보도는 다반사고 슬픔을 더 슬프게, 아픔을 더 아프게 하며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끌어내리는 보도행태는 우리 언론의 자질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성숙된 언론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부정적 思考(사고), 특히 이념에 편향돼있는 상태에서는 언론의 기본인 올바른 방향제시를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힌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거기서 어떻게 바른 글이 나올 수 있는가.

    사드문제에 대한 보도태도는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부정적이다. 우리 언론이 정말 좌편향 돼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됐다. 지나치게 상업화 됐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언론이 바로 서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국가의 미래가 밝아진다.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우리언론의 그 패기와 정의는 다 어디로 갔는가? 속물근성에서 벗어나라. 曲筆(곡필)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정직한 언론, 밝은 언론이 자리한 양지에는 좌경바이러스가 서식할 수 없다. 곡필이 直筆(직필)이 되는 정직한 언론을 기대해 본다.

    다섯째 도둑, 대학 교수들은 2016년도의 사자성어로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의 昏庸無道(혼용무도)를 선택했다. 읽어본 느낌이 어째 개운치가 않았다.

    知識(지식)은 무기와 같아서 성숙한 인격자에게는 약이 되지만, 미숙한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지식인 사회가 하도 한심해서 하는 소리다.

    지식인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시대정신에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는 지식인과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므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지식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식인들(교수들)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드문제가 국가적 큰 이슈로 떠오른 현 시점에서 어느 부류에 속한다고 봐야 하나. 미안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므로 자신의 위치를 보전하려는, ‘노불리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먼 양심 없는 지식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참 지식인의 자세일 터인데, 사드문제와 같은 국가적 대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몇 몇 양심 있는 극소수의 지식인 외에는 모두가 죽어있는 상태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왜 ‘혼용무도’를 뽑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국가생존의 문제만큼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나? 그런데 ‘혼용무도’를 뽑은 지식인 집단에서는 별 말이 없다.

    죽은 지식인의 사회, 더욱이 입신양명에 영혼마저 팔아버린 지식인 사회엔 봄이 오지 않는다,

    이제 희망은 국민이 깨어나는 것, 길은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에 있다.
    다툴 때가 아니라 밀려오는 위기의 파도를 타고 성공을 항해할 때다.
    그럴 때 사드문제의 다툼은 오히려 축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