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女궁사들 "여기는 태릉이다" 되뇌며 긴장감 해소

  • "오른쪽 깊이.. 10점 방향.. 강하게!"

    지난 8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의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기보배(광주시청)는 '루틴 카드'에 쓰여진 문구를 조용히 되뇌며 활시위를 당겼다.

    기보배의 주문처럼,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연거푸 10점 과녁에 명중했다. 1세트에서 러시아의 '에이스' 세냐 페로바가 6점에 그친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의 '에이스' 기보배는 연달아 10점을 맞추며 러시아 선수들의 기를 죽였다.

    세트 스코어 5-1.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날 대한민국의 여궁사들은 러시아 선수들이 자멸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리 10점 과녁을 뚫는 신기(神技)를 선보이며 올림픽 8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했다.

    이날 기보배가 주문처럼 읊조린 말은 자신의 '루틴(Routine) 카드'에 적힌 문구였다. '루틴 카드'는 수년 전부터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애용하고 있는 마인드 컨트롤 장치다. 선수들은 평소 훈련 때 몸에 밴 동작이나 심리 상태를 글로 적은 뒤 이를 수없이 되뇌면서 자신만의 '경기 리듬'을 유지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한다.

    일종의 자기 최면인 만큼 선수들의 사용하는 '루틴 카드'에는 스스로를 격려하는 문구들이 많다. 기보배는 2012 런던올림픽 당시 "내 자신을 믿고 쏘자" "바람 그 까짓 거 이길 수 있다" 같은 문구를 자신의 루틴 카드에 새겨 넣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선 보다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한 번 슬럼프에 빠졌던 기보배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문구를 카드에 적고,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까지 암송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대표팀의 맏언니 장혜진은 자신의 별명인 '땅콩'에 최고라는 뜻의 '짱'을 덧붙인 '짱콩'을 루틴 카드에 적었다. "첫 발, 과감하게"라는 문구도 경기 중 그녀를 최상의 상태로 이끄는 길잡이가 됐다. 루틴 카드에 적힌 글처럼, 장혜진은 부담감이 큰 첫 번째 사수로 나서 '과감하게' 과녁 정중앙을 맞추는 만점 활약을 펼쳤다.

    '강심장' 최미선은 "연습 때처럼 나를 믿고 자신 있게 쏘자"는 말을 되뇌며 활시위를 당겼다. "여기는 태릉이다"라는 '팀 루틴'도 경험이 부족한 그녀에게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한편 양궁 여자 개인전에 나선 기보배는 또 하나의 신화를 준비 중이다. 개인전 32강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를 세트 스코어 6-2로 꺾고 16강에 안착한 기보배는 올림픽 양궁 사상 첫 개인전 2연패에 도전한다. 16강전은 11일 오후 9시 52분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