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위원회 2개월 진상조사결과 333페이지 공개… '시민 질의'에 답 못하거나 거짓해명
  • 지난 5월 28일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선로측에 있던 은성 PSD 직원 김(19)씨가 들어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 5월 28일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선로측에 있던 은성 PSD 직원 김(19)씨가 들어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서울시가 지난 6월 8일 발족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지형 前 대법관)'가 지난 28일 오후 2시부터, 2개월 간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진상조사 발표에 참석한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인 김지형 前대법관은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며, "위원회는 그동안 구의역 사고에 대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제안하는 데 집중했다"며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위원회를 구성해 종합보고서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김지형 前대법관은 구의역 사고 원인을 ▲인적요인 ▲관리적 요인 ▲외부적·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나눠 설명했다.

    김지형 前대법관은 인적 요인에 대해 “승장장 유지 보수 업무를 외주화할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 용역 설계를 했다”면서 “부족한 인원 충원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등 적절한 인력 증원 배치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지형 前대법관은 관리적 요인에 대해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의) 외주화 결과 관리·감독이 최소화·형식화 됐다”면서 “사전승인 없는 선로 측 작업과 안전 미준수가 일상화됐고 안전 교육 및 훈련 점검도 정기적·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지형 前대법관은 외부적 사회 환경 요인으로 ‘정부 정책’을 지목했다. 

    그는 “정부는 1997년 이후 공공기관 경영 합리화 정책을 추진해왔다”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서울메트로가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승강장 안전문 유지관리 업무가 외주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외주화 과정에서 안전은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안됐다"면서 "정부가 공공평가 항목에 실적과 성과 중심, 비용 절감 등만 포함시켜 공공성과 안정성이 도외시 됐다"고 말했다. 

    김지형 前대법관의 논리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물론 기존의 스크린도어 사고는 ‘유지보수 외주화’에서 비롯됐고, 그 외주화를 만든 장본인 또한 '정부‘라는 것이었다. 

    김지형 前대법관은 이후 1시간 동안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합리화가 외주화를 불렀고, 효율만 따진 정부 정책이 안전에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 현실을 만들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15명으로 이뤄진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규명위원회'가 2개월 동안 '철저히' 조사해서 내놓은 결론은 박원순 시장이 스크린도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한 ‘정규직 對 비정규직’ 문제와 거의 일치했다.

  •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구의역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에서 김지형 진상규명위원장이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6.7.28. ⓒ연합뉴스
    ▲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구의역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에서 김지형 진상규명위원장이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6.7.28. ⓒ연합뉴스


    김지형 前대법관은 스크린도어 안전 대책도 밝혔다.

    구체적인 업무를 명시하는 서울메트로 내부규정 제정, 종합정보제어시스템 구축, 안전 업무 감사 및 평가 기구 설치, 안전 업무 담당자 직영화(정규직 고용) 및 비정규직 철폐, 안전 재난 관리 총괄 기구(약칭, 안전시민청), 지하철 안전의 날 제정 등이었다. 

    구의역 사고 이후 ‘언론’에서 지적한 내용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점이라고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난 5월 28일을 '지하철 안전의 날'로 제정하자는 것 하나였다.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안전대책' 가운데 기술적인 부분으로는, 스크린 도어 센서를 적외선 센서나 포토 센서에서 레이저 센서로 교체하는 것, 승강장 안전문 제어 세스템을 무선주파수(RF) 제어로 바꾸는 방안, 안전문 개폐시 신호 경광등 설치, 중앙제어시스템 구축 등이 전부였다.

    김지형 前 대법관은 진상조사결과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구의역 사고는 누군가의 부조리를 탓하기에 앞서 불완전한 안전 시스템이 만든 필연적인 결과"라며 "위원회 보고서는 하나의 반성문 아닌가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구의역 사고는 우리 모두 숨은 가해자일지 모른다는 통렬한 반성의 뜻이 담겨 있다"며 "진정한 반성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다"라고 전했다. 

    멋진 ‘수사’로 발표회를 마쳤지만 서울시 관계자 몇 명을 빼고는 '박수'치는 사람도 없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 후 '시민 질의'가 있었지만 그 응답은 '거짓말'과 '얼버무림'으로 보였다.

    "현재 한국의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국제안전기준을 따르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자 "스크린도어를 처음 설치할 당시에는 국제안전기준이 없어, 한국 현실에 맞게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설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철도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확인 결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미 '스크린도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시설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2003년 가을 국제안전기준이 마련됐고, 2005년 10월 14일 '무결성안전기준(SIL)'에 따른 스크린도어 시공 및 유지보수 기준이 나왔다.

    서울메트로를 필두로 서울시내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본격적으로 설치된 시기가 2005년 1월부터이고, 같은 해 9월 2호선 선릉역과 사당역, 12월 말에 을지로입구역, 을지로3가역, 영등포구청역의 스크린도어 준공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보면, "국제안전기준이 없어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거짓말로 드러난다.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측은 질의응답에서 "안전기준을 떠나 스크린도어 센서를 레이저 센서로 교체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답한 것도 문제였다. 이는 지난 6월 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시스템을 전수조사해 만약 문젝 있으면 모두 재시공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질의응답 도중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스크린도어 업무와 신호 업무를 함께 맡고 있는 한 직원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직영화 사업이 진상조사위원회가 생각하는 직영 조건에 만족하느냐"면서 "부실인력 설계를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인원이 유지 보수를 위한 적정 인력인지 검토한 결과를 알려 달라"고 질문했다.

    서울시 측은 "역사당 2.58명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평가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진상규명위가) 따로 적정 인원을 산출하기에는 시간이 짧아 힘들었다"며 정확한 대답을 못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DB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DB


    시민들과의 질의응답이 끝난 후 박원순 시장이 마무리 발언을 맡았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구의역 사고 속에 숨어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인 문제를 확인했다"며 "지적 사항과 개선 대책을 시간이 들더라도, 또 돈이 들더라도 반드시 실천 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 만큼은 특혜와 기득권을 용납할 수 없다"며 "비정 규직 노동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고 안전도시 서울 마스터플랜을 제대로 준비하고 실천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은 "무엇보다 안전한 시스템을 마련해가는 과정에서 제3자 입장 가진 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모든 시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면서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고 서울이 탈바꿈하는 계기로 만들겠다. 하청, 위험사회에서 인간존중 사회의 지렛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의 이 발언은 '구의역 사고'의 대책 가운데 하나로 '시민사회단체' 출신 등이 참여하는 '일종의 감시기구'를 만들고, 동시에 이 사고가 구조적 안전문제가 아니라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진상조사발표가 끝난 뒤 본지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 적정인원’에 대해 질문했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을 만났다. 그에게 이날 '진상 조사 결과 발표'를 청취한 소감을 묻자 "대책이라고 내놨는 데 사실 이게 도대체 무슨 대책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서울시가 발표한 직영화와 정규직 전환이 스크린도어 안전 개선과 관련해서는 실효성이 없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스크린도어 업무'에 관련돼 있는 사람이 402명으로 모두 정규직이자만, 실은 '스크린도어 업무를 위해 뽑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는 지하철 '신호 업무'를 보는 직원들이 '스크린도어 안전 및 유지보수 업무'를 함께 수행한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주장은 결국 "이 일 저 일 모두 하면서 힘들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중심으로 본다면, 업무를 병행했을 때에도 사고가 나지 않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연례 행사처럼 인명 사고가 난 서울 메트로 측의 '관리 수준'이 너무도 차이가 난다는 점은 '사실'이었다. 

    참고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서울메트로와 비교해 스크린도어 고장 빈도는 10분의 1에 불과하고, 지금까지 인명사고도 발생한 적이 없다.

    이날 구의역 진상조사규명위원회의 조사 발표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발표회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명쾌한 해결책이나 정확한 진단도 없이 언론에서 나온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해놓은 느낌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학생은 "(서울시가) 시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무시한 행동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서울메트로 등이 거창하게 꾸린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2개월이나 조사를 했다면서도, 서울 지하철 1~4호선에 설치한 스크린도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이날 진상조사 결과 발표회에 참석했던 한 철도 전문가는 "역시 서울시의 대책이라는 게 과거 사고가 날 때마다 내놨던 안전대책의 재탕"이라고 평가했다.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시설물'이라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장기적인 조사를 해야 함에도 '쇼'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 주변에는 그에게 '직언'을 할 정직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거나 '거짓말쟁이'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한편 지난 27일부터 언론에서는 석 달 이상 공석이었던 '서울메트로' 신임 사장에 김태호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 '사실상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태호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을 '사실상 내정'한 이유가 "공약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이후 근로자 이사제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붙였다.

    평판조회를 거쳐 오는 8월 3일 면접 이후에 내정될 서울메트로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보는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관계자들의 속내도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