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광우병 사건 비웃었던 보수진영, 사드에 부화뇌동한다면…
  • ▲ 국회에서 사드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하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에서 사드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하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사람들은 때로는 비과학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는 사주를 믿기도 하고, 누군가는 병원이 아닌 대체요법으로 치료를 받는다. 종말론을 진실로 믿고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뉴스를 장식한다.

    최근 부산과 울산에서는 개미떼가 출몰하고 가스 냄새가 난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지진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바뀌어 유포되기도 했다.

    예전이야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지만,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비과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시대는 물론이고 학력과도 무관하게 비과학을 믿으면서 과학을 경시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하다.

    사람들이 똑똑해졌다는 믿음은 오히려 헛소리가 퍼져나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전에는 좋은 대학 나온 이들의 말이면 무조건 신봉하고 학벌이 나쁜 사람의 말은 비록 맞는 것일지라도 무시하고 보는 풍토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본인들 개개인이 틀리지 않았을 거란 자기 확신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견고히 구축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말로 포장 되면서 괴담은 어느새 과학과 동등한 수준에서 논의된다.

    이는 정치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똑똑하다는 엘리트들이 모인 정치권에서도 과학의 영역에 도전하는 황당한 설들이 퍼져나간 사례들이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확증편향'(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주장하는 것. 정보의 객관성과 상관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는 행태를 일컫는다)된 가설들이 광기어린 믿음으로 굳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10여 년 전 있었던 광우병 파동이다. '뇌 송송 구멍 탁'으로 요약되는 광우병 파동은, 프리온 단백질(PrP Sc)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갖가지 근거를 들이댔다.

    주장의 요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10년여 잠복기를 거쳐 인간 광우병에 걸리게 될 것이란 내용이다. 정치권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해 우선 반대부터 하도록 종용한 셈이다. 공포심에 이성을 잃은 군중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졸지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는 한·미 FTA의 핵심 쟁점이 됐다.

    그들은 인간광우병에 대한 증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여러 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의 숫자가 이미 통계로 집계돼 있었지만, 광우병의 유해성을 믿고 퍼뜨렸던 자들은 이런 증거를 애써 부정했다. 대신, 높아진 '치매 발병률'을 근거로 "치매 환자 증가분의 상당수는 광우병 소"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무리 과학으로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하지만 미국산 소를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은 지 8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미국산 쇠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쉑쉑버거'가 인기를 끌면서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미국산 쇠고기를 향한 분노 어린 반감이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다.

  • ▲ 지난 2012년 최재천 전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DB
    ▲ 지난 2012년 최재천 전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DB

    과연 8년 전 사건을 통해 정치권은 교훈을 얻었을까. 10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좀 더 비과학적인 괴담이 유포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바로 사드 문제다.

    사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주장을 일부 시민단체는 물론, 일부 언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는 전자파의 속성을 무시한 채로 말이다.

    우리는 전자파를 내뿜는 기기들을 달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켜고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한다. 다른 사람과는 휴대전화 통해 소통한다. 뇌에 바싹 붙여 통화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증거를 많이 발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부 단체들과 정치권은 사드의 유해성에 목소리를 높인다.

    사드는 기본적으로 멀리 떨어진 비행물체를 식별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주파수로 유해성이 약한 전파를 멀리 보내도록 설계돼 있다. 좁은 지역을 정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강한 전자파를 발산하게 되는 패트리엇은 물론이고 그린파인 레이더보다도 더 약한 전자파를 내보낸다는 것이 여태까지 알려진 과학적 정설이다.

    더군다나 사드의 레이더는 339m 고지에서 5도 이상 하늘을 보고 설치된다. 레이더는 공중에 있는 물체를 식별하기 위해 직진성이 강한 전자파를 방출한다. 이쯤 되면 일반인이 레이더의 전자파와 마주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과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사람도 아니고 성주 참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파를 오래, 많이 쪼이면 유해하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라며 성주 참외가 전자파에 오염되고 이를 먹은 사람도 해를 입는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 ▲ 성주 참외 포장 박스에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뉴시스 DB
    ▲ 성주 참외 포장 박스에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뉴시스 DB

    우선 성주 참외가 사드 전자파를 많이 머금을 정도라면 애당초 그 지역은 사드 설치 지역으로 적합지 않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레이더에 걸림돌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앞서 말했다시피 사드의 배치 지형을 고려할 때, 참외가 지상 340m 근처에서 열리는 경우에서나 유해성을 논할 여지가 생긴다. 63빌딩이 249m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높이의 '공중정원'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유해성이 있을지 없을지 논란이 된다는 뜻이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도 상주에 만들려고 반대하는 것인가. 실제로 그런 게 있다면 오히려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이번에도 광우병 때와 마찬가지로 일각에서 과학을 부정해보려는 시도들이 나온다.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전자파가 산란하면 땅으로 내려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 됐다.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비 오는 날의 도심은 생지옥이란 말인가. 각종 휴대전화 전자파가 내려앉아 우글거릴테니 말이다.

    〈조선일보〉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 신공항에 서로 찬성하며 유치를 못 해 안달 냈던 사람들이, 사드의 전자파를 근거로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공항의 레이더는 항공기를 향해 직접 전자파를 쏘는 '나쁜 레이더'여야 하지 않나.

    특히 이런 괴담에 맞서 지역구민들을 하나로 화합·통합하면서 설득 작업에 나서야 할 정치인들이 되레 사드 반대에 앞장서는 행태는 8년 전보다 정치적 수준에서 진전을 보긴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8년 전 광우병 괴담을 믿는 진보진영을 비웃었던 보수진영이 사드의 전자파 괴담에 부화뇌동해 우왕좌왕한다면, 이같은 코미디가 또 없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앞다퉈 이공계 육성·과학 중시를 외쳐왔던 우리 사회가 정작 중요한 사안이 등장할 때마다 과학을 부정한다면 이 말에 진정성이 있다 할 수 있을까.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도출된 객관적 결론에는 이견을 달지 않아야 정치적 논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사드 배치 논란을 통해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무조건적 확증편향 대신, 과학적 검증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