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난무하는 방송 언론.. 게이트 키핑은 독자들의 몫?
  • 한국신문방송인클럽이 발표한 '언론인 윤리강령'을 보면 언론인은 진실을 바탕으로 정확한 정보를 보도하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시인과 동시에 신속하게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엔 언론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가 담겨 있다. '사회의 공기'로서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해 '건전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언론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만 하는 '필수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과연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기본적 책무'를 규정한 윤리강령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부산·울산에서 포착된 가스 냄새를 두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각종 괴담(怪談)이 방송 프로그램과 신문에 여과없이 소개되고, 경찰 수사 단계에 있는 형사 사건을 함부로 예단(豫斷), 특정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시사패널들의 발언이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는 등, '건전한 여론 형성'과는 거리가 먼 보도행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

    특히 방송의 경우 '생방송 프로그램'이 대폭 늘어나면서 출연자들의 말실수로 오보(誤報)를 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의 노예가 된 일부 방송사들은 잘못된 보도를 신속하게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자극성 발언을 유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만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카더라 통신'이 취재원이 되는 시대"


    지난 20일 전파를 탄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에서는 공개석상에 참석하지 않았던 인물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묘사, '특정인의 언행'을 비꼰 SNS 루머가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다.

    우병우 검사가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참여 정부 때, 평검사와의 대화가 있었잖아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상고 졸업 출신에 검정고시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분이었는데, '몇 학번이시죠?' 이렇게 질문을 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사실입니까?


    이날 진행자는 "우병우(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과거 평검사 시절,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며 이때 우병우 검사가 노 대통령에게 학번 얘기를 꺼냈던 게 사실인지를 패널들에게 물었다.

    이에 패널들은 "정말 우병우 검사가 거기에 있었냐"며 "당시 어떤 검사가 대통령에게 아주 까칠한 질문을 던지니 대통령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가 있지만, 그 사람이 우병우 검사였는지는 너무 오래돼 확인이 안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패널은 "제 기억으로 그것은 아닌 것 같다"며 해당 소문이 근거없는 낭설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날 때까지 진행자는 자신이 입밖에 꺼낸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지 않았다. 보통 사건 사고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에선 사회자나 패널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경우 가급적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해당 내용을 정정하는 발언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사회자와 패널들은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만 했을 뿐, 우병우 검사가 등장하는 루머의 진위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2003년 3월 9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의 토론 자리에 우병우 검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을 꺼낸 것도 다른 검사였다.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토론회'는 당시 주요 방송사가 라이브로 중계할 정도로 전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이벤트였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참석자들의 이름과 발언 전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실 여부에 확신이 없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제작진에게 검증을 부탁한다는 일종의 사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행자와 제작진 모두 SNS에 나온 루머를 소개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정작 그 루머로 인해 야기될 각종 피해에 대해선 전혀 생각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 언론계 원로 인사는 "무심코 방송을 듣다가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사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문제의 질문을 던진 검사는 전혀 다른 분이었다"며 "저조차도 헷갈려서 인터넷을 뒤져봤을 정도인데, 일반 청취자분들은 오죽하겠느냐. 떠도는 루머라고 슬쩍 흘린 뒤 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