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측 변호인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정상참작해달라" 읍소
  • 지난해 8월 경남 남해에 사는 대학생 강모씨는 친구들과 4시간 가까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한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가 자고 있던 60대 부부를 흉기로 찔러 한 명을 숨지게 했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강씨는 놀랍게도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동종 범죄에 비해 4~5년 감경된 형을 언도 받았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 점을 정상참작, 즉 '음주감경'을 판결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법원은 대체로 술에 관대한 편이다. 정신질환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는 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을 낮춰 주는 이른바 '심신미약 감경'에 음주로 만취한 자들을 적용시켜 형량을 줄여주는 판례가 많다보니 '음주감경(飮酒減輕)'이란 말까지 생겨날 정도.

    법적으론 범행을 예견하고 자의로 술에 취한 경우엔 심신미약 감경을 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땐 제한하지 않는 예외 규정을 둠으로써 수많은 '주취범죄자'들을 방면하는 실수를 저질러 왔다.

    이같은 관행은 8살 여자 어린이를 무자비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이 만취상태였다는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받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해당 판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국회는 '성범죄'의 경우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강행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일선 재판 현장에선 여전히 '음주감경'이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 사실 관계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사건 당일 1차부터 4차에 이르기까지 폭탄주 20잔 이상을 마신 것으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법 제1형사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최명호)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사건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이 2심에 들어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폭탄주 20잔 이상을 마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피고인의 당시 상태를 정상참작해 달라"고 읍소했다.

    최씨는 유명 개그맨 이경실(50·사진)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인물. 지인의 아내(A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해당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 검찰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는 와중이었다.

    승용차 뒷자리에서 지인 아내에게 '몹쓸 짓'

    최씨는 지난해 8월 18일 새벽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술에 취해 살짝 잠이 든 A씨의 상의를 벗기고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더듬는 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검찰 진술 조사 당시 "사건 당일 술에 만취해 A씨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신의 혐의를 발뺌했던 최씨는 법정에 와서도 동일한 입장을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공소 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히면서도 "당시 4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참석하느라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고의적인 범행이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한 것.

    당시 최씨의 차량을 몰았던 '운전 기사' 오씨도 법정에 나와 "최씨는 평소 주량이 소주 1~2병 정도인데, 지인들과 4차까지 술을 마셔 인사불성인 상태였다"며 "1차 때부터 이미 만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최씨의 주장을 거들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선처를 호소한 최씨의 주장에 대해 3가지의 '정황 증거'를 들며 "이유없다"고 판시했다.

    최씨는 주점에서 지인이 술값을 내려 하자 자신이 나서서 계산을 했고, 조수석(앞좌석)에 앉아 있다가 지인이 내린 뒤에는 뒷자석으로 옮겨 앉았으며, 피해자의 집에 도착할 무렵 운전사에게 인근 호텔로 가자고 목적지를 바꾼 점 등을 볼 때, 당시 4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참석한 최씨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점은 인정하나, 피고인이 사물을 분별하고 의사를 결정하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재판부는 "이처럼 범행 수법과 범행 전후의 행동을 보면, 당시 최씨의 사물 분별능력이 미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건 초기엔 범행을 부인하다 법정에 와서야 죄를 자백하고 여러가지로 피해자를 힘들게 한 점에 대해선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일갈했다.

    최씨의 변호인은 '음주감경'이 통용되는 법조계의 틈새를 노리고 인사불성 상태였음을 강조하는 전략을 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조금의 정상참작도 허락치 않는 추상같은 판결을 내렸다.

    "폭탄주 연달아 들이켜 '만취'..심신미약 상태였다"
     
    1심 재판에서 보기좋게 '완패'한 최씨의 변호인은 2심 재판에서 보다 구체적인 증언으로 범행의 '고의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폭탄주 20잔'을 마셨다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언급, 승용차 뒷좌석에서 벌어진 일은 지극히 충동적이며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음을 역설한 것.

    그러나 감형을 받기 위해 자청한 2심 재판은 거꾸로 최씨의 '죄질'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

    최씨가 구치소에서 지인들과 접견을 할 당시 '내가 나가면 (A씨를)가만 안두겠다'는 말을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는 A씨의 주장이 공개되면서, 재판부로 하여금 최씨가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함과 동시에, '간접 협박'으로 A씨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의심까지 사게 만든 것이다.

    지난 5월 19일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검찰은 "구치소 접견 때 최씨가 (자신을)협박하는 말을 내뱉은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A씨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최씨의 구치소 접견 기록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밖으로 나가면 그 집안, 초토화시켜버리겠다!"

    이어진 3차 공판에선 더욱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다.

    피해자(A씨) 측 변호인은 "구치소 측이 제공한 최씨의 접견 녹취 파일을 들어보니, 실제로 최씨가 '(밖으로)나가면 그 집안을 초토화시켜버리겠다'며 A씨를 겁박하는 말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비록 사석에서 한 얘기이긴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저희가 녹취 파일 일부를 확인해봤는데 "(밖으로)나가면 그 집안을 초토화시켜버리겠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등, 피해자와 합의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그냥 시간만 끄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석에서 한 얘기이긴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고 봅니다. 만약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녹취록을 제출할 의향은 있습니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검찰에서 구형한 그대로 처벌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날 3차 공판에서 검찰은 "사실조회를 요청했던 '구치소 접견 기록'을 파일로 받아봤지만, 그 양이 방대하고 기술적으로 재생이 어려운 상태라, 아직 발언 전문을 문서화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접견 내용을 양형자료로 제출하지는 않는 대신, 피해자가 피고인이 접견인을 통해 피해자 측에게 좀 안좋은 얘기를 했다는 것을 들었다고하므로 그러한 사정을 양형 사유로 주장하는 것으로만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최씨의 변호인은 최씨가 지인과의 구치소 접견에서 A씨를 겁박하는 말을 꺼냈었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피고인은 피해자와 그 집안에 대해 10억원 이상의 채권을 갖고 있어, 그런 것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는 얘기였지, 물리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나아가 "현재 피고인은 이 사건 이후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크게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며 부디 심신미약 등의 정상(情狀)을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다.

    구치소에서 피고인이 접견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밖으로 나가면 가만 안두겠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피해자 분이 들었다고 하셨는데요.

    피고인은 피해자와 그 집안에 대해 10억원 이상의 채권을 갖고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 법적으로 조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채권 회수)을 언급한 적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는 얘기였지, 결코 물리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는 되지 않았지만 선고 기일 전에라도 합의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최씨와 변호인은 항소심이 결정된 날부터 지난 19일까지 총 18통의 반성문과 2통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구치소 접견 녹취록, '양형 자료'로 제출

    당초 재판부는 6월 23일 '3차 공판'으로 모든 변론을 마무리짓고 7월 14일 최종 선고를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측 변호인이 최씨의 '구치소 접견 녹취록'을 양형 참고자료로 제출함에 따라 '변론재개'의 필요성을 느낀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취소하고 (최씨에 대한)구속기간갱신 결정을 내린 뒤 7월 25일 항소심 4차 공판을 속개했다.

    이날 재판부는 별도의 신문 없이 피해자 측이 제출한 1건의 녹취록을 양형 자료로 채택하고 변론을 종결했다.

    검찰은 지난 3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최씨에게 징역 2년형을 구형하고 신상공개 및 고지명령을 청구했다.

    최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9월 1일 오전 10시에 내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