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보다가 삼복더위에 분통 터진 사연

      분통을 억지로 참았다. 아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TV를 보다가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 씨근씨근 대는 것 외엔
    달리 화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화면에서는 한 자유민주 우파 논객과 잘 알지 못할 한 젊은 사람이 논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 사람이 다소 '진보적'인 듯한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스펙트럼을 가졌든 사실에 맞지 않는 말을 시침 뚝 떼고 우기는 데는 화가 난다.
    누가 설령 그러더라도 "흠..." 하고 느긋하게 비웃어주는 게 오히려 한 수 위라는 건 잘 알지만,
    나는 수양이 부족해 그러진 못한다.

    그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도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존중은 한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반대 입장 때문에 화가 난 것도 아니다.
    내가 정작 화가 난 건 그가 반대의 논거(論據)랍시고 내세운 '소리' 때문이었다.

    사드배치 같은 '우리 측의 군비증강 때문에' 북이 화가 나 중거리 고각(高角) 미사일과 SLBM을 또 다시 실험하는 등 호전적이 되었다는 것, 그 때문에 한반도-동북아 냉전이 격화되었다는 것, 미소 냉전도 군비증강 대신 문화교류 등을 확대한 덕에 해소되었다는 것 등-이런 '소리'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군비증강으로 말 할 것 같으면, 그건 우리 측의 사드 배치 결정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격화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설마 누구처럼 "북한 핵은 방어용..." 운운 할 작정은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어디 말해보라.
    북한이 궁극무기인 핵-미사일을 만든 건 냉전격화-군비증강이 아니고,
    한-미 동맹이 사드를 방어용으로 배치하기로 한 것만 냉전격화요 군비증강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방적인 '소리'가 어디 있나?

    미-소 냉전이 끝났던 이유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스타 워즈라는 막강한 억지력(deterance)을 바짝 다그쳐 소련이 그럴 돈이 없어 깨갱대다가 고르바초프 대에 이르러 두 손을 번쩍 든 것-
    그것 때문이지, 저 TV 속 젊은이가 말하는 것처럼 미국이 소련에 대해 일방적 '햇볕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스탈린-히틀러 등 극단적 전체주의자들과 상대할 때는
    오직 '힘에는 힘'만이 끗발을 내는 법이지,
    특히 공산당 앞에서는 '일방적' 유화주의와 '일방적' 무장해제와 군사적 열세(劣勢)는
    그들에게 배신당하고 기만당하고 끝내는 짓밟혀 죽는 막다른 골목이다.

     이럼에도 일부는 우리의 억지력 확보, 힘의 대등성(partiy) 확보만 가지고 닦달 한다.
    왜 북한-중국이 싫어할 짓을 하느냐? 왜 사드를 배치하느냐? 왜 북한 인권을 거론하느냐?
    왜 일방적-무조건적-비(非)상호적 대북 유화를 하지 않느냐?
    그건 반(反)통일, 반(反)평화, 반(反)화해 아니냐?

    일부는 그러면서도 북이 우리가 싫어할 짓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일체 말이 없다.
    북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국군포로 억류, 핵-미사일 공갈에 대해서도 분노조차 없다.
    북이 아무리 그래도,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아무 대응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 말만 한다.
    외교? 6자 회담 백날 해봤자 돌아온 건 저들의 핵실험 아니었나?
    북은 '외교' 합네 하면서 뒤로는 시간을 벌면서 몰래 핵개발을 했다.
    온 세상을 '외교'로 속인 것이다.
    외교를 한낱 속임수 정도로 아는 상대방과는 외교를 하려 해도
    돌아오는 건 배신이다.

    중국이 혹시라도 우리 편 좀 들어줄까 해서 속절없이
    천안문 망루에 앉아 중국공산당 군대의 열병식을 바라보는 '외교'도 해보았지만,
    중국은 그 기대를 저버렸다.
    그래서 다른 대안 없어 불가피하게 택한 카드가 사드배치였다.
    한데 글쎄, 이 자위적 선택을 두고 우리만 가지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런 뻔한 사실과 진실과 실상(實相)이야 여하튼,
    시침 뚝 떼고 시종 우리 쪽의 '멍군'만 나무라니,
    이런 경우 대화나 토로이나 논쟁이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 없다.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 TV 등 미디어들은 "우리는 좌, 우를 공정하게 다루었습니다"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이 따위 프로를 만든다.
    요즘 '언론' 아닌 '매체산업주의자'들이
    연명하는 방법이요, 장사하는 법이다.

    날씨가 더워 화를 안 내려도 안 낼 수가 없더라고 했더니,
    식구가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그까짓 것 안 보면 될 터인데 뭣 때문에 보고 앉아 있느냐고.
    맞다. 맞아...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런가?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