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 이후 중단한 남파간첩 지령용 방송 16년 만에 재개
  • ▲ 과거 남파간첩들이 사용했던 난수방송 해독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과거 남파간첩들이 사용했던 난수방송 해독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보면 이상한 억양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방송은 “지금부터 ○○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역사 과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105 페이지 83번, 153페이지 51번, 178페이지 33번” 등의 이상한 숫자를 반복해서 불러주는 내용이었다. 이는 북한이 남파간첩에게 지령문을 불러주는 ‘난수(亂數)’ 방송이었다.

    북한이 보내는 ‘난수’ 방송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로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다시 ‘난수’ 방송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19일 “북한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중단했던 남파 공작원 지령용 난수 방송을 16년 만에 평양방송을 통해 재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 평양방송은 지난 15일 정규 보도를 마친 오전 0시 45분부터 12분 동안 여성 아나운서가 나와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과제를 알려 드리겠다”면서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135페이지 86번…” 등의 다섯 자리 숫자를 연속으로 불러줬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북한이 ‘난수’ 방송을 재개한 이유가 크게 세 가지일 것이라는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의 분석을 전했다.

    유동열 원장에 따르면, 첫째는 실제 남파 간첩들에게 실제로 지령을 내리는 것, 둘째는 한국 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거짓 지령을 내보낸 것, 셋째는 남파 간첩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훈련 차원에서 방송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이 ‘난수’ 방송을 재개한 것은 대남공작 활동을 재개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한 사이의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최근 북한의 남파간첩들은 IT기기 활용능력이 뛰어나 그림이나 영화 속에 파일을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 기법을 10년 전부터 사용해 왔고, PC방 등에서 G메일 등을 통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활동 중인데, 1990년대 이전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지령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이상하다. 

    다른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수십 년 전에 남파된 고정간첩 가운데 IT기기 활용능력이 모자란 간첩을 위해 ‘구식 통신방식’을 사용한다거나 국내에서 감시 중인 간첩들을 위해 대규모로 공개 지령 방송을 내렸을 가능성도 많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아무튼 북한이 다시 ‘난수’ 방송을 재개했다는 것은 북한 김정은 집단 스스로 6.15남북공동선언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다름없어 향후 상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