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전국에 퍼진 ‘바이러스’ 잡겠다”…터키 관리 “3000명 더 붙잡아야”
  • 지난 16일 새벽,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몰려나온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 세력들. ⓒ美CNN 관련보도 영상캡쳐
    ▲ 지난 16일 새벽,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몰려나온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 세력들. ⓒ美CNN 관련보도 영상캡쳐


    지난 15일(현지시간) 불과 6시간 만에 진압된 터키 쿠데타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피의 숙청’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에르도안이 쿠데타를 기획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美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터키 쿠데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석연치 않은 문제들을 전하고 있다.

    쿠데타를 진압했다고 주장한 레세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데타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하면서 군인 6,000여 명, 판사와 검사 2,745명, 경찰 149명을 붙잡아 강제 구금했다. 강제 구금된 군인 가운데는 장성급과 대령 등 고위 장교만 52명에 달한다고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군인, 판·검사, 경찰들을 붙잡으려는 계획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 또한 “바이러스가 암처럼 나라를 뒤덮고 있다”면서 ‘쿠데타’를 빌미로 많은 사람들을 체포할 것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英파이낸셜 타임스(FT)는 “아직 3,000명을 더 체포해야 한다”는 터키 관리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 대령급 이상 고위 장교 수십여 명이 현재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

    외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 때문에 다수의 터키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6일과 17일, 터키 곳곳에서 거리로 몰려나와 터키 국기를 흔들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현 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수천여 명의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같이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케말 아타튀르크(일명 케말 파샤)’의 뜻에 따라 ‘신정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날 거리에 거의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터키는 신정일치 국가였던 투르크 제국을 케말 아타튀르크가 술탄 제도를 폐지하고, ‘신정분리 원칙’에 따라 통치하면서 근대화가 됐다. 이후 터키에서는 군, 법조계, 경찰, 관료 등이 이런 근대화와 혁신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다수의 터키 국민들은 이번 ‘쿠데타’가 실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기획한 ‘쇼’가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2007년 이전까지 이원집정제 아래에서 총리였던 에르도안이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 자신이 대통령이 됐고, 이제는 독재체제로 가기 위해 ‘비상시국’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신정분리 원칙’을 지키려는 ‘세속주의자’가 대부분인 터키 국민들 사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터키를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꿔 ‘신정일치 체제’로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기 때문이다.

    여기다 테러조직 ‘대쉬(ISIS)’가 활동 중인 시리아, 이라크와의 접경 지역에 대한 경비를 소홀하게 하는 경우가 많고, 자국 내에서 활동 중인 ‘대쉬’를 소탕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과 전투 중인 쿠르드 족을 탄압하는 등의 행태도 국민들의 의심을 샀다.

    2013년 7월 이집트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前대통령과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것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쿠데타를 진압한 뒤 대통령궁 대변인이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에 대해 ‘총살형’을 집행할 수 있다고 직접 밝히자 터키 현지의 공포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의 경우에도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로 분류되지만, 그가 지향하는 방향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히즈메트(봉사)’ 활동으로 서방 진영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어서 쿠데타와는 거리가 있어 현 터키 정부의 주장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과 현 터키 정부는 미국 정부에 “쿠데타 배후 세력인 귈렌을 인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유엔은 물론 미국 등 서방국가와 중국, 러시아까지도 쿠데타를 진압한 에르도안 정권에 지지를 표시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