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 동의 안해 여연원장 공석 vs 친문 수석사무부총장 내리꽂기최고위원 사퇴하면 지도부 붕괴 vs 사퇴해도 정족 줄여 패권 유지싸움나면 "회의 끝" 대표가 퇴장 vs "공갈" 발언에 퇴장해도 노래 불러
  • 새누리당의 지도체제 개편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14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이하 단일지도체제)로 선회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는 별 이견도 없었는데, 점차 논란이 커지더니 급기야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 분화까지 촉발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지도체제 개편안을 공론화하기로 한 오는 6일 의원총회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예상된다. 새누리당의 현행 집단지도체제가 지난 2년간 어떤 모습을 보였기에, 상당수 의원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고 단일지도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1년 반 정도 앞서 먼저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지도체제로 지도체제를 개편했던 사례가 있다. 상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체제를 개편했던 더민주는 이후 단일지도체제로 당무를 운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지난 시기 벌어졌던 일들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났었는지 대조해서 살피면, 집단지도체제와 단일지도체제의 명(明)과 암(暗)도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추천권과 의결권이 어쩌고 하는 공리공담의 논의보다도, 지난 시기 정치권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과 당연직 최고위원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과 당연직 최고위원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장면 1-A

    지난 2014년 7·14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김무성 대표는 그 해 12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전당대회에서 차점 득표를 했던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임명이 강행된다면 최고위원을 사퇴하겠다"고까지 배수진을 쳤다. 그러자 범친박으로 구성돼 있던 최고위원 대다수도 임명 반대에 동조하고 나섰다.

    결국 김무성 대표는 상정해봤자 부결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박세일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안'을 최고위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추천한 것도 아니어서, 이듬해 6월 박세일 이사장이 스스로 고사할 때까지 7개월간 핵심 당직인 여의도연구원장은 공석으로 남아야했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사무총장을 필두로 한 핵심 당직에 대해 대표최고위원은 추천권만 있을 뿐 임명을 하기 위해서는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계파가 다른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 다수가 서로 추천권과 의결권을 가진 채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당무에 관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 장면 1-B

    지난해 2·8 전당대회로 당대표가 된 문재인 대표는 그달 16일 친문(親文) 김경협 의원과 진성준 의원을 각각 수석사무부총장과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을 최고위에서 밝혔다.

    총선을 불과 1년여 남겨둔 상황에서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수석사무부총장과 여론조사에 관여하는 전략기획위원장에 친문패권 친위세력을 내리꽂겠다는 문재인 대표의 방침에 최고위원들은 아연실색했다.

    특히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득표를 했던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은 "관례적으로 수석사무부총장은 수석최고위원이 추천했다"고 반발했으나, 문재인 대표는 25일 최고위에서 "이것 하나 내가 마음대로 임명 못하느냐"며 그냥 임명해버렸다.

    단일지도체제에서 핵심 당직자는 최고위와 협의만 거치면 될 뿐 추천권자인 당대표가 임명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친문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은 그해 6월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비노(非盧)는 새누리 세작" 등의 발언을 하며 물의를 빚다가 낙마했다.

  •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에 격노한 가운데, 문재인 대표가 이를 만류하려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에 격노한 가운데, 문재인 대표가 이를 만류하려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장면 2-A

    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 갈등이 극을 향해 치닫던 지난 3월말,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주호영 의원 등을 배제한 친박측 공천안을 의결하지 않을 기세를 보이자,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범친박 최고위원들은 일제히 최고위원직을 사퇴해서 지도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이기도 했던 박종희 사무부총장은 "김무성 대표가 도장을 못 찍고 있으면 모르겠지만 안 찍고 있는 것"이라며 "최고위원들이 사퇴해서 비대위 체제로 가는 수순이 예고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단지도체제에서 대표최고위원은 대외적으로만 당을 대표할 뿐 최고위원회 내부에서는 다른 최고위원들과 동등한 N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표최고위원이 그대로 버티고 있더라도 일정 수 이상의 최고위원이 사퇴해 의사정족수가 무너져버리면 자연스레 지도체제는 붕괴되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 장면 2-B

    문재인 대표의 친노·친문패권주의 당무 전횡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말, 오영식 최고위원이 11월 27일 전격적으로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한데 이어 주승용 수석최고위원도 그 다음달 8일에 최고위원을 사퇴했다.

    당연직 최고위원인 이종걸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표의 친노친문패권 '막가파 정치'에 불만을 품고 최고위 출석을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유승희 최고위원조차 그달 11일 최고위에서 "당이 무너지고 분열될 현실 앞에서 최고위원직을 이렇게 태연하게 지킬 것인지 자괴감을 느낀다"고 사퇴를 경고하고 나섰다.

    최고위의 의결정족수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문재인 대표는 당무위를 기습 소집해 최고위 정원 자체를 2명 줄이는 '꼼수'로 지도체제를 지탱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권한과 비중 자체가 다른 단일지도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사퇴한 최고위원 수만큼 정원을 줄이는 '꼼수'는 패권적 당무 운영의 극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면전에서 당연직 최고위원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자,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회의 종료를 선언한 뒤 퇴장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면전에서 당연직 최고위원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자,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회의 종료를 선언한 뒤 퇴장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장면 3-A

    '유승민 국회법 파동'으로 새누리당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지난해 7월 2일, 김태호 최고위원은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최고위에 참석해 있던 유승민 원내대표의 면전에서 공개 발언을 통해 "당과 나라를 위해 결단을 촉구한다"며 사퇴를 압박했다.

    그러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 끝내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김학용 대표비서실장은 김무성 대표를 따라나서며 김태호 최고위원을 향해 "에이, XX야, 그만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지지 않고 "사퇴할 이유가 왜 없느냐"며 "무슨 이런 회의가 있느냐"고 맞섰다.

    기본적으로 최고위원회의의 모든 구성원들이 '메이저리그'인 당대표·최고위원 통합 경선을 통해 원 트랙(One Track)으로 선출되다보니 정치적 중량감이 작지 않다. 표만 부족했을 뿐 다들 대표최고위원을 할 수 있을 법한 인물들로 최고위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고위원 한 명 한 명의 발언이 모두 무거운 무게감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립이 시작되면 서로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굽히는 일이 드물어 타협과 조정이 잘 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 장면 3-B

    지난해 치러진 4·29 재·보궐선거에서 문재인 대표의 친노·친문패권세력이 영패의 치욕을 당해 당이 흉흉하던 5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이 주승용 최고위원의 면전을 향해 "공갈하지 말라"고 내뱉었다.

    모욕감을 느낀 주승용 최고위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자처해 "그렇게 정치하지 않았다"며 "최고위원 사퇴한다"고 밝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오영식 최고위원 등 일부는 이를 쫓아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좌불안석으로 있는 등 회의 분위기가 잔뜩 경색됐다.

    이 와중에 발언 순서가 돌아온 유승희 최고위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연분홍빛으로 옷을 '깔맞춤'한 상태에서 "오늘이 어버이날이라 어제 회관에 가서 어르신들께 노래를 불러드렸다"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중량감이 있고 정무감각이 탁월한 정치인들은 당대표 경선에 나갔다가 전부 떨어져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했다"며 "'투 트랙'으로 치러지는 최고위원 경선은 '마이너리그'처럼 돼서 '깜'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다보니 발언에 무게감도 없고 상황에 따라 자기 발언 원고를 수정할 줄도 모른다"고 개탄했다.

    

    이처럼 집단지도체제와 단일지도체제는 같은 국면에 처한다 해도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 전혀 달라질 정도로 장단점과 명암이 뚜렷하다.

    대선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는 당외(黨外)에 있는 등 새누리당이 여러모로 어려운 국면임을 감안하면 당대표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부여하는 단일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만 실제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식의 '패권주의적 당무 전횡'이 이뤄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마이너리그'를 통해 선출된 최고위원들의 격(格)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제왕적 당대표의 패권주의 당무 전횡을 방지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19대 총선을 거치면서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을 많은 의원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단일성 지도체제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제왕적 총재 때의 문제점을 견제할 수 있는 또다른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