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결단하고 親朴 다른 주자 길 터줬어야 했는데… 이미 失期
  •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일사불란(一絲不亂)이란 다 헛말이다. 일부 의원들이 모여서 세(勢) 과시를 하는 모습도 실속이 없다. 희생번트를 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전부 자기 자리 욕심에 골몰하며, 좌장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은 좌고우면(左顧右眄)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작금 친박(親朴)의 현주소다.

    한때 여권 일각에서는 "친박은 있어도 비박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서청원 의원을 맏형으로, 최경환 의원을 좌장으로, 조원진 의원을 행동대장으로 하는 지휘통솔체계를 갖추고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연락책으로 삼아 청와대의 의중을 받드는 '친박'이 계파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비박(非朴)은 그저 '친박이 아닌 사람들'을 뭉뚱그려 일컫는 용어라는 것이다.

    비박으로 분류되는 한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 회동은 있어도 비박 회동이라는 말을 들어봤느냐"며 "'비박까지 한 번 모여보자'는 말을 할 사람조차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계파라면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대체 비박의 수장이 누구냐"라고도 했다.

    그말대로 새누리당 비박은 계파 수장조차 불분명하다. 몇몇 의원들이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가깝다고 해서 김무성계라 불리기는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비박 전체를 통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대표비서실장을 지낸 김학용 의원 등 몇몇에 국한돼 있다.

    비박으로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병국·김용태 의원은 김무성계와 무관하다. 그런데도 8·9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더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되레 비박이라는 평이 나온다.

    먼저 당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선 김용태 의원이 희생번트를 자처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친박패권'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리며 날을 세우고 있다.

    그 뒤에서 사실상 비박 단일 후보로 추대될 예정인 정병국 의원은 조용히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친박 저격수의 역할은 김용태 의원이 맡고 정병국 의원은 화합과 혁신이라는 화두에 주력할 모양새다. 비박 나경원 의원 등은 일찌감치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접어 '교통 정리'를 완료했다.

    반면 일사불란하고 결속력이 강하다던 친박에서는 좀처럼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당대회는 오로지 자신이 지도부에 진입하기 위한 장(場)인지, 유불리를 따지는 셈법에 정신이 없다.

    한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끼리도 서로 말이 다르다. 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 의원은 전당대회에 불출마한다더라"고 흘리자, 당사자가 펄쩍 뛰는 마당이다. 유력 친박 당권 주자의 친인척 채용 의혹을 다른 친박 당권 주자가 흘렸다는 소문이 정치권이 파다한데, 이를 접한 정치권 인사들이 하나같이 "있을 법한 일"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다.

    좌장이라는 최경환 의원의 좌고우면이 길어지는 것도 혼돈을 부채질하고 있다. 나가면 나간다, 안 나가면 안 나간다 라고 가부간에 빠른 결단을 내려야할텐데 그게 안 된다.

    어차피 총선 패배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최경환 의원이라면 "불출마하겠다"고 공개 선언해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같은 친박 의원들이 당권에 도전하는 길을 터주든지, 아니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욕을 다 먹으면서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정면돌파하든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최경환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설이 본인도 아닌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이를 당사자가 부인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제는 불출마를 하더라도 감동은 퇴색되게 됐다. 나가도 안 나가도 모양새만 이상해진다면 이것은 이미 실기(失期)다.

    문제는 당권 다툼의 와중에 정작 중요한 정권재창출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원한다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권재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정권교체를 당했다는 것은 국민이 선거로서 심판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당한 정권은 어떤 이유로든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자체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이 당권 경쟁에 골몰한 틈을 타 '반기문 마케팅'조차 빼앗기고 있다. 눈앞의 '자리'만 보다가 내년 12월 대선으로 가는 가도의 주도권마저 내줄 참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비박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되레 친박은 조용한 것이 의아하다"며 "어차피 곧 대선 정국인데 눈앞의 당권 경쟁에만 골몰하다가는 친박이라는 계파 자체가 곧 형해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