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러시아 정부,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외교문서 300여 종 한국에 제공
  • 86세대 운동권들과 전교조 교사 일부 등 좌익 성향 인사들은 지금까지도 6.25전쟁 북침설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사진은 6.25전쟁 당시 남진하는 北인민군.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캡쳐
    ▲ 86세대 운동권들과 전교조 교사 일부 등 좌익 성향 인사들은 지금까지도 6.25전쟁 북침설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사진은 6.25전쟁 당시 남진하는 北인민군.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캡쳐

    1981년 ‘한국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이 나왔다.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大 교수가 쓴 이 책은 “6.25전쟁이 남침이 아니며, 미국의 사주를 받은 한국이 북침한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전쟁의 기원’은 당시 국내에도 번역돼 순식간에 퍼졌다. 당시 ‘반미’에 빠져 있던 86세대 운동권은 이 책을 ‘경전’처럼 취급하면서, 반미 반정부 투쟁의 근간 가운데 하나로 사용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무너지고,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86세대 골수 운동권들은 ‘북침설’을 계속 믿었다. 북한 김씨 집단과 中공산당 또한 같은 선전을 해댔다.

    ‘미국의 소리(VOA)’는 25일(현지시간)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한국 전쟁의 기원’ 저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大 교수의 말을 보도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의 소리’측에 “한국이 북침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면서 “당시 미국은 이승만 한국 대통령에게 ‘대북 도발을 하지 말라’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는 “1994년 6월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삼 한국 대통령에게 옛 소련의 외교문서들을 넘겨주면서 6.25전쟁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당시 러시아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외교문서는 300여 종으로,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외무부와 북한 외무성 간에 오간 외교전문 등 6.25전쟁의 원인과 시작을 알 수 있는 ‘극비문서’들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는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나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스탈린은 당시만 해도 남침을 허락하지 않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면서 “1950년 2월 9일 스탈린은 북한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고, 5월 14일 中 마오쩌둥에게 보낸 외교전문에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인들의 제창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소리’는 美워싱턴에 있는 윌슨 센터의 로버트 해서웨이 연구원을 인용, “소련은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1951년 3월에는 북한에 2개 항공사단과 트럭 6,000대를 제공했다”면서 “이처럼 소련 비밀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전 세계 학계에서는 6.25전쟁을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한 전쟁’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의 소리’는 “최근 中공산당 또한 6.25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꾸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中공산당 국책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이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조선이 소련의 지지와 소련으로부터 강요받은 중국의 묵인 아래 군사행동을 개시했다”고 서술했던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86세대 운동권들에게 ‘경전’과도 같았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교수마저도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고 규정하는 상황에서 향후 국내에 아직도 활동 중인 86세대 종북 운동권 인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