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하게 투표 부쳤다가 책임질 일 만들어…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아야
  • ▲ 새누리당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권성동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했는데도 새누리당이 쉽사리 내홍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의 진퇴부터 시작해서 향후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이 적시될 백서 발간까지 언제 긴긴 터널을 빠져나올지 끝도 보이지 않는 게 더욱 문제다.

    이처럼 끝없는 내홍이 이어지는 책임을 묻자면 역시 사공인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원래부터 김희옥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지만, 이번 내홍을 거치면서 당을 혁신할 추동력은 완전히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명칭만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일 뿐 실상은 그냥 비상대책위원회만도 못하다. 그동안 꾸려진 비대위는 그래도 전당대회는 무사히 치러내겠거니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혁신비대위'는 8월 9일까지 불과 한 달여 기간을 지켜보는 것조차 매 순간이 조마조마하다.

    새누리당을 '막장 내홍' 속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 지난 16일 비대위의 '일괄 복당' 의결 이후 보여준 김희옥 위원장의 행보도 한심스럽다.

    김희옥 위원장은 그날 오전에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일괄 복당'이 의결된 뒤 4~5시간이 지나서야 돌연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며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도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을 통해서였다.

    비대위원회의에서 사회를 잘 봐놓고 의사봉까지 두드린 뒤 몇 시간이 지나 돌연 거취를 고민한다는 말에 우선 배석했던 비대위원들조차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범죄'라는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배석자들은 다들 "그런 말이 있었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비대위원은 전혀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던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작 정진석 원내대표가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고 실토하면서 전말이 드러난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마저 그런 말이 나왔었는지, 나왔다면 누가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임팩트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범죄행위'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회의 분위기가 정말로 싸늘해지고 김희옥 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참지 못할 치욕적인 모멸감을 느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취를 고민할 정도로 수모를 당했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회의 주재를 중단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서도 될 일인데, 4~5시간이 지나서야 비서실장을 통해 심중을 알리는 모습이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김희옥 위원장이 그날 회의 석상에서 오판을 했다가 일이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자,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 상황을 재구성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이브(Naive)했던 것이다. 전업정치인이 아니고 선출직 경험도 없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수상이 브렉시트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듯이 '설마 일괄 복당으로 결론이 나겠어'라는 나이브한 생각에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했다가 여섯 번째 찬성표를 펼치는 순간 무를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렸다.

    이후에 당황해서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반대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 와중에 범죄라는 말도 듣고 모멸감을 느꼈다"라는 명분을 재구성했을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당의 비대위원장을 하려면 산전수전 다 겪고 노련하며 카리스마도 있는 사람이 쥐었다놨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최소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한마디로 아마추어"라며 "정무 판단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연구직이나 대학 총장 정도를 맡으면 딱 좋을 사람이 '생물'처럼 천변만화하는 자리의 중심에 앉아 있다보니 스텝이 끝없이 꼬이고 있다"고 혀를 찼다.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한 것부터가 이상한데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폴더 사과'를 받고 복귀하면서 권성동 사무총장의 경질을 들고나온 것이 완전히 패착이 됐다.

    특히 권성동 사무총장과 통화를 하면서 경질의 이유가 뭐냐는 말에 "검사 후배여서 믿고 맡겼는데 일을 하다보니까 뜻이 다른 것 같다"며 "그만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검찰 조직에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있고 기수 문화가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정치권에서, 민주 정당에서 이게 통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검사 후배'로 산전수전 다 겪은 3선 의원 권성동 사무총장은 아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건 내가 '버티기'로 나서면 100% 이기는 승부라는 확신이 섰을 것이다.

    정치는 외견상 서로 논의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본질은 연극에서 '방백'을 하듯이 상대를 염두에 두지 않고 국민에 호소하는 것이다. 김희옥 위원장이 비대위원회의를 할 때마다 "비공개로 하자" "할 이야기가 있으면 비공개로…"라고 제지하지만 참석자들이 꿋꿋이 공개 모두발언을 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김희옥 위원장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 후배여서 믿고 맡겼는데 뜻이 다르니 경질해야겠다"라는 말을 권성동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는 할 수 있겠지만, 과연 국민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국민 정서가 그런 이유를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공개적으로 경질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까지 몰리자 '경질'이라는 단어는 쑥 들어가버리고 '교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권성동 사무총장이 당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당직 하나 교체하자고 "매우 유감"이라는 표명까지 해야 할 상황이 됐다. 국민 앞에서 꺼내지 않을 이유라면 애초부터 입 밖으로도 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어어어어…' 하다가 브렉시트를 당해버린 데이비드 캐머런 수상은 오는 10월 전당대회 이후 물러난다고 한다. 혁신을 위한 비대위의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으니 사실 김희옥 위원장도 사퇴하는 것이 옳다.

    다만 비대위의 활동시한이 8월 9일 전당대회까지이고,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만 둔들 그대로 있은들 큰 차이도 없다. 부디 이제 더 이상 손을 대서 일을 어그러뜨리는 것은 그만 두고, 전당대회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