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士無雙의 인재, 상처 없이 물러나 다행… '당이 바라는 손님' 왔을 때 역할 기대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권성동 사무총장이 23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공개 모두발언을 자청해 "지금까지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정치를 해왔다"며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더라도 조용하게 묵묵히 우리 새누리당의 혁신과 정권재창출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했다.

    사실 권성동 사무총장은 하등의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지난 16일의 '일괄 복당 파동'의 책임을 묻는다지만, 복당 결정은 권성동 사무총장이 혼자 내린 것이 아니라 비대위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의결됐다. 책임을 묻는다면 김희옥 위원장을 포함한 비대위원 모두가 연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사무총장인 권성동 의원이 김희옥 위원장을 잘 보필하지 못했다지만,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비대위원의 직위를 겸할 때는 각각의 직위에서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무총장으로서야 당을 대표하는 비대위원장의 명을 받들어 당 사무처 업무를 맡는 것이지만, 비대위원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 의결권이 무기명 비밀투표의 방식으로 행해졌는데 그 중 한 명의 찬반 투표 행태를 문제삼아 문책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19일 저녁 김희옥 위원장의 경질 방침이 알려지자 권성동 사무총장은 "복당 결정할 때 나 혼자 결정해서 결정이 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비대위원 다수가 복당에 찬성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난 것을 왜 사무총장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우기를 하느냐"고 항의했다.

    아울러 "나를 왜 희생양으로 만드느냐"며 "나도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내 명예와 인격이 있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이 23일 비대위원회의에서 김영우 의원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이 23일 비대위원회의에서 김영우 의원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에 대해 김희옥 위원장은 "검사 후배라서 (사무총장을) 믿고 맡겼는데 일하다보니 나와 뜻이 다른 것 같다"며 "그만둬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정당이 검사동일체 원칙(檢事同一體 原則)이 지배하는 검찰조직도 아닐진데 말이 되지 않는다.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것"인데 이래서는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가 없다. 나흘간 '버티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김희옥 위원장이 이날 "그동안 권성동 총장이 당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고를 했는데 당무 보좌에 대한 견해차 때문에 사무총장을 교체한다"며 "이러한 결정을 하게 돼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물러섰다. 그러자 권성동 사무총장은 그 자리에서 두말 않고 물러날 뜻을 밝혔다.

    명분을 지켜 버틸 때는 태산같이 흔들리지 않고, 비로소 물러날 때는 전당대회라는 중대사를 앞둔 당에 부담을 끼치지 않기 위해 바람같이 빠르게 행하는 모습이다.

    한(漢)나라 창업 때의 삼걸(三傑) 중 한 명으로 한고조가 천하를 통일할 때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은 젊었을 적에 향리의 무뢰배들과 시비가 붙었다.

    무뢰배 중 한 명이 "너는 큰 칼을 차고 다니지만 겁쟁이가 아니냐"며 "겁이 없다면 그 칼로 나를 베고, 아니면 내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고 모욕했다. 한신은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그 사이로 지나갔다. 과하지욕(袴下之辱)의 고사다.

    그러한 모욕을 참고 견뎌낼 하등의 이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무뢰배를 벤들 무엇했을 것인가. 이 일이 알려지자 초(楚)나라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지만 역시 한삼걸 중에 한 명인 소하의 생각은 달랐다.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이 23일 비대위원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이 23일 비대위원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소하는 "다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한신은 나라의 장수로서 둘도 없는 사람(國士無雙)"이라며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한신 말고는 더불어 일을 도모할 사람이 없다"고 간언했다. 이에 훗날 한고조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권성동 의원은 여염 무뢰배들과는 역량이 다른 인물이다. 소하가 한신을 가리킨 말처럼 국사무쌍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내년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을 시도하려면 온전하게 보존해야 할 당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8·9 전당대회까지 불과 한 달여 활동할 비대위에 몸담았다가 상처를 입을까 많은 여권 관계자들이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진퇴 문제가 큰 타격 없이 매듭지어졌다는 평이다. 오히려 "날이 어두워져야 등불의 밝음을 알고, 나라가 혼란해져야 비로소 충신을 알게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평하는 관계자도 있다.

    논어에 이르기를 "군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도가 없으면 재능을 거두어 감춘다"고 했다. 지금의 혼란스런 비대위 체제는 아무래도 권성동 의원이 사무총장이라는 당직을 맡기에는 적절한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비록 사무총장에서 물러났지만 국회의장과도 맞바꾸지 않았던 핵심 국회직인 법사위원장을 맡게 된다. 가권이회(可卷而懷)라는 말대로 내년 5월까지 귀한 재능을 거두어 숨기며, 법사위원장으로서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데 주력할 일이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미국 뉴욕에서 떠난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다. 그 때가 내년 초다. 권성동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내려놓을 때에 즈음하면 비로소 나아가 벼슬을 하고, 대업을 위해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장이 펼쳐지리라 본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더라도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조용하게 묵묵히 우리 새누리당의 혁신과 정권재창출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는 말이 헛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때 가서 권성동 의원이 스스로 하는 바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