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명외교관' 이미지 오버랩에 TK 표심 살피기까지 일거양득
  • 29일 경북 안동을 찾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환영나온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29일 경북 안동을 찾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환영나온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을 방문했다. 임진왜란 시기 국난을 극복했던 명재상이자 외교관이었던 류성룡 선생의 업적을 본인과 오버랩시키면서, 동시에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 표심을 살피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행보로 풀이된다.

    반기문 총장은 2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 류성룡 선생 고택인 충효당을 방문해 기념 식수를 했다.

    서애 류성룡 선생(1542~1607)은 미증유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재상이자 명외교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란을 앞두고 권율·이순신 등을 천거해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전쟁 중 조세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공납 부담을 줄이는 길을 열었고 △전란 중에도 가라앉지 않는 서인·남인·북인 간의 당쟁을 조정하려 힘썼으며 △최대 동맹국인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면서 국난을 틈탄 여진의 준동을 방지하는 등 나라를 구하는 활약을 펼쳤다.

    외교관 출신인 반기문 총장이 이날 류성룡 선생의 고택을 찾은 것은 이와 같은 서애의 위상과 자신의 이미지를 오버랩하기 위한 행보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반기문 총장은 이날 취재진에게 "서애 선생은 조선 중기 재상을 하면서 아주 투철한 조국 사랑 마음을 가지시고, 어려운 국난을 헤쳐오신 분"이라고 추어올렸고, 방명록에도 "살신성인의 귀감인 서애 류성룡 선생의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투철한 사명감을 우리 모두 기려나가기를 빈다"고 적었다.

    이후 반기문 총장은 경북도와 하회마을 측에서 준비한 주목(朱木)을 고택 경내에 기념 식수했다. 하필 주목이 기념 식수 대상으로 준비된 배경도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류왕근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주목은 '나무 중의 제왕'으로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유지하는 장수목이자 으뜸목"이라며 "반기문 총장의 건승을 기원하며 주민들의 마음과 뜻을 모아 주목을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29일 경북 안동을 찾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함께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 고택 경내에 나무 중의 제왕이라는 주목을 기념식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29일 경북 안동을 찾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함께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 고택 경내에 나무 중의 제왕이라는 주목을 기념식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이처럼 지역 민심이 '제왕목'의 식수를 권하는 등 귀부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이날 안동 방문에서는 직접적으로 대권 도전 시사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러나 반기문 총장은 이러한 취재진의 질문에 헛웃음을 지으며 답변을 피했다.

    이는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이 나날이 심해지는데도 침착하게 천하의 3분의 2가 귀부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주문왕(周文王)의 고사를 따라, 천시(天時)가 이를 때까지 몸을 굽혀 기다리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이날 반기문 총장의 안동 방문에는 이 지역구의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 장대진 경북도의회 의장, 권영세 안동시장, 김한규 안동시의회 의장 등이 동행했다.

    또, 하회마을은 반기문 총장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몰려나온 600명 이상의 현지 주민과 반기문 총장 측의 수행원, 취재진들이 뒤엉키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러한 지역 민심의 뜨거운 환영에 호응하기 위해 반기문 총장은 김광림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한 오찬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경북도청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회마을을 찾은 뒤 이뤄진 경북도청 방문에서 반기문 총장은 방명록에 "300만 도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고 기재했다. 이후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과 함께 경북도청 입구에 금강송을 심었다.

    이처럼 지역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반기문 총장의 안동 방문은 지난 27일 이뤄졌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방문과는 대조적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시 문재인 전 대표의 안동 방문은 호응도, 감동도 없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TK 표심의 추이가 어느 정도 확인됨에 따라 '반기문 대망론'에 한층 불이 붙을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날 오찬을 함께 한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오찬에서) 대선의 '대' 자도, 정치의 '정' 자도 안 나왔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이상하리만큼 그런 (정치적) 언급은 없었다"며 "나도 당 차원에서 온 것이 아니고, 안동 국회의원으로서 (반기문 총장이) 안동에 오니까 온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