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당분간 현실정치 떠나라"는데… 도통 은거 못하는 초조함은 무엇 때문?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사진 가운데)가 지난달 8일 광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사진 가운데)가 지난달 8일 광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올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이후로는 본격적인 대선 운동에 나설 뜻을 피력했다.

    4·13 총선 당시 광주 충장로에서 공언했던 '호남 참패시 정계은퇴' 약속에도 아랑곳없이, 전대가 끝나면 당의 새로운 지도부를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자기자신이 스스로 더욱 옥죄겠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28일 부산 금정산에서 산행 도중 "8월말 전당대회까지는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지금처럼 정중동(靜中動) 식으로 시민을 만나고 다닐 생각"이라며 "그 시기가 지나고나면 정권교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천명했다.

    "정권교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라고 애매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더민주는 4·13 총선을 지나면서 완전히 '친문패권당'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돼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20일 취재진과 만나 "더민주는 사실상 (대선 후보가) 문재인 대표로 확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교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뛰겠다"는 것은 자기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8월말까지로 한정지은 '잠행(潛行)' 시기도 너무 짧을 뿐더러 그 형식도 적절치 않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8일 광주 충장로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더민주는 4·13 총선에서 광주 8석 전석을 상실하고, 전남과 전북에서도 각 1석과 2석을 건지는데 그치는 참패를 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원내대표는 "호남이 지지를 않으면 정치도, 대권 후보도 거두어들이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 된다"며 "기장 토굴에 가서 반성을 하고 참회하고 있으면 (손학규 대표처럼) 국민이, 각 당이 찾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당의 전남 유일한 당선인인 이개호 의원도 "문재인 대표가 광주에 와서 한 약속에 대해 광주·전남에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매듭지어야 한다"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당분간 현실정치에서 떠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표 본인 스스로도 마지못해 "8월말까지는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정중동"하겠다고 말한 모양이지만, '8월말'이라는 기간은 정치인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정치 인생까지 건 약속의 무게감에 비하면 너무 짧다는 지적이다. 스스로의 약속을 깃털처럼 가볍게 희화화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또, "중앙정치에 거리를 두면서 정중동"하고 있다는 행보도 기실 중앙정치와 거리가 별로 없고 정중동도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27일의 경북 안동 방문이 대표적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29일 안동을 방문할 것으로 예고되자, 문재인 전 대표는 이틀 전에 급히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 반기문 총장의 '류성룡 행보'에 맞서 '이황 행보'를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처럼 하나하나가 대권의 포석이 되는 행보를 하면서 중앙정치와 거리를 뒀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표는 수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왜 과감하게 중앙정치에 관심을 끊고 은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날 금정산 산행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내일이 지나면 국회의원이 아니다"라며 "과거에는 제도권 안에서 정치를 하는 편한 면도 있었는데 이제는 편한 기회를 놓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 말대로 문재인 전 대표는 19대 국회 임기 만료에 따라 원외(院外)의 신분이 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26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대통령 선거가 거의 1년 7~8개월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 1년 간은 현실 정치가 여의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국회라는 교두보가 없을 때 과연 잘 부각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대로 원외(院外)로 나가게 되는 상황에서 중앙정치와 연을 끊고 은거하게 되면, 아예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대권으로 향하는 길이 막힐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초조한 '대권병'이 진정한 '정중동'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의 행보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강력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그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강력한 부정 평가층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있는 것도 한 방법인데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