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넘도록 변변한 직업 없는 사람이 70 넘어도 국민들로부터 기대받는 사람에게…?
  •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었던 김홍걸 씨가 지난 17일 제36주년 5·18 민주대행진에 참석했다가 전야제가 시작되자 행사장인 금남로 일대를 빠져나가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었던 김홍걸 씨가 지난 17일 제36주년 5·18 민주대행진에 참석했다가 전야제가 시작되자 행사장인 금남로 일대를 빠져나가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일개 필부(匹夫)에 불과한 김홍걸 씨가 정치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내용이 자꾸 기사화돼 국민들의 정치 혐오와 피로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홍걸 씨는 25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권 도전을 강하게 시사해 화제가 되자, 같은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기문 총장을 향해 "명예롭게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라"고 권했다.

    유력 대권 주자를 향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김홍걸 씨는 4·13 총선이 끝나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해단된 이후로는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상황이다. 더민주 국민통합위원회는 당의 상설위원회가 아닌,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기구였기 때문이다. 이재경 대변인도 "선대위가 해단한 뒤라 (김홍걸 씨에 대해 마땅한) 직함을 못 불러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 신분은 그냥 일개 필부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3남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스스로의 노력에 힘입은 바는 아무 것도 없이,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지명도를 얻고 정치에 대한 얕은 식견이 기사화되는 사람이 있는 셈이다.

    반기문 총장은 전날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지난 10년간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뛰는 기분으로 계속 뛰었다"며 "자생적으로 (대통령)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해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헛되게 살지 않고 노력한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단순히 지난 10년 간만 마라톤을 100m 뛰듯 산 게 아니다. 충청북도 음성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나오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것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외무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과정에서 한시도 노력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김영삼정부의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 일했는데도 김대중정부에서 외통부차관으로 다시 중용됐다. 성향이 다른 정권에서도 중요한 자리에 발탁됐다는 것은, 정치와 무관하게 능력과 노력을 두루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반기문 총장을 향해 DJ의 3남이라는 '금수저'로 태어난 이유 하나로 정치권의 끝자락에 발을 걸치고 있는 김홍걸 씨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입을 열 자격이 있는가. 

    김홍걸 씨는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맞는다는, 허다한 박사(博士) 중 한 명에 불과할 뿐 아무런 특출난 연구 실적도, 주목할만한 논문도 내놓은 바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그 스스로도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못할 것이다.

    능력이 없으면 아예 존재조차 있는 듯 없는 듯 살기라도 했으면 모르겠으되, 김홍걸 씨는 김대중정부 후반기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부친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상황을 살펴보면 1993년 도미(渡美)해 이듬해 남캘리포니아대학교 국제정치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한 뒤 7년 만인 2000년에야 석사학위를 취득한 김홍걸 씨는 당시에도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김홍걸 씨는 2000년 8월 "타이거풀스가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도와달라"는 최규선 씨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 대가로 타이거풀스 주식 6만6000주를 챙겼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개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 신분이던 김홍걸 씨는 LA 팔로스버디스에 600평 대지, 방 5개·욕실 3개의 97만5000달러짜리 저택을 사들이고 6만5000달러 상당의 렉서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등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진 2002년 5월 김홍걸 씨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는 치욕적이게도 178일간 수감 생활을 한 김홍걸 씨는 같은 해 11월 집행유예 판결이 떨어지면서 겨우 풀려났다.

    그것도 죄질이 나쁘지 않거나 혐의가 가벼워서 집행유예가 된 것이 아니라, 당시 판결문에도 나와 있듯이 "형인 홍업 씨가 유사한 범죄로 같은 시기에 중형을 선고받아 자칫 한 집안 두 형제가 나란히 수감생활을 해야할 처지에 놓인 정상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것이었다. 형이 비리로 중형을 선고받은 덕(?)에 자신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기가 막힌 우애를 누린 것이다.

    이러한 김홍걸 씨의 전력을 국민들이 잊었으리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특히 그는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호남에서 국민의당으로 간 인물 중에 '김대중정신 계승'을 외치는 분들의 평소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며 마치 자신이 무슨 'DJ정신 감별사' 노릇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호남 민심은 부패·비리를 저질러 김대중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해 종지부를 찍은 김홍걸 씨에게 냉담했다. '감별사' 노릇을 하려 전남 목포를 비롯한 호남 몇몇 지역구를 동분서주했지만 전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미풍도 아닌 무풍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총선 기간 중에는 혹시 이용가치가 있지 않은가 해서 국민통합위원장이라는 감투까지 씌워줬던 친노·친문패권세력조차 두 손을 들었다. 지난 3월 30일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더민주, 나를 더 이용하라"며 '더 큰 감투'를 달라고 부르짖었던 김홍걸 씨에게 더민주는 선대위 해단 이후 아무런 공식 직함도 주지 않고 있다.

    일개 필부 자격으로 지난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의 5·18 기념식에 찾아와, '민주의 문' 근처에서 혹시 취재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나 서성거리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안쓰러워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일개 필부의 발언 하나하나를 기사화해주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매체의 잘못도 있으니, 오롯이 김홍걸 씨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다할 지위도 없는데, 페이스북에 한마디 쓸 때마다 기사화를 해주니 인생을 노력으로 살아보려는 의욕이 생기겠는가.

    그래서 충고한다. 반기문 총장에게 "명예롭게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라"고 권하기에 앞서, 김홍걸 씨 스스로가 이제는 인생에 있어서 뭔가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려는 진중한 노력을 시작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 국민들로부터 대권 주자로서 큰 기대를 받고 있는데, 누구는 지천명을 훌쩍 남긴 나이에 변변한 직업 한 번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면 실로 비참한 노릇이 아닌가. 하물며 공직 생활을 시작해본 적조차 없는 후자가 전자더러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라"고 운운해 국민들의 비웃음을 한 몸에 사고 있다면야 말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