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총장, 제주포럼서 "북한 더 이상 도발 중단하라" 대권 레이스 콘셉트는 '안보'
  • ▲ 26일 오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제주포럼 개회식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
    ▲ 26일 오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제주포럼 개회식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


    4.13 총선 이후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던 새누리당에 모처럼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권 출마 시사 발언으로 '충청대망론'이 조기에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계의 갈등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유력 대권주자가 없어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이 이른바 '구원투수'의 조기 등판으로 대권판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기문 총장은 2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북한은 최근 대단히 우려스러운 행동을 취했고, 국제사회는 여기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행동했다"며 "북한은 더 이상의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적인 의무를 완전히 준수하는 방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방한 첫날인 전날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대선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던 반 총장이 강력한 대북 메시지를 던지며 다른 대권주자와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10년간 UN 사무총장을 역임한 만큼 차기 대선에서 '통일'과 '안보'를 콘셉트로 내세우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반 총장은 이날 오전 제주 롯데호텔에서 전직 외교장관 및 전·현직 외교부 인사들과의 조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전날 자신의 발언이 과잉 확대됐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발언으로 큰 파장이 일자 수위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 ▲ 악수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뉴데일리
    ▲ 악수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뉴데일리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사분오열 조짐을 보이던 새누리당이 반기문 총장 입국에 맞춰 단일성 집단 지도체제로 변경키로 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한국을 떠난 날 한국을 방문한 반 총장은 대권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분석을 제기한다.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반기문 대망론'을 현실화하기 위해 물밑에서 지속적인 작업을 벌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의 14년만의 지도체제 변화가 반기문 총장의 연착륙(軟着陸)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반 총장이 올해 말 임기를 마친 후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자연스레 본격적인 대선 구도에 뛰어들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특히 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가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반 총장을 강력한 대권후보로 내세우기 위한 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김무성 전 대표,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 만나 차기 당 지도부를 '단일성 집단 지도체제'로 바꾼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단일성 집단 지도체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당대표 권한 강화다. 유력한 대권주자에게 힘을 실을 수 있는 대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당에서는 그동안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두고 계파간 '이전투구'의 민낯을 드러내는 '봉숭아 학당'이라는 조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 리더의 권한을 강화화기 위해 작업이 시작됐다는 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권 장악이 예상되는 친박계 지도부 뿐만 아니라 대권 도전 등의 재기를 노리는 김무성 전 대표도 공정한 경선을 조건으로 체제 변경에 동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로 들어설 당 지도부가 올해 안에 당헌·당규를 개정, '반기문 대망론'을 더욱 공고히하는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 당 지도부 회동에서는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영입은 물론 정권 재창출을 위한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분리제도 도입과 당헌·당규 조항 변경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 ▲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왼쪽)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종현 기자
    ▲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왼쪽)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종현 기자

    다만 새누리당이 반 총장의 입국으로 일시적인 '화해 모드'를 보이고 있지만, 친박과 비박의 '오월동주(吳越同舟)'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의(大義)를 두고 양보없는 계파간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박계도 반기문 조기 등판이 무조건 불편하지만은 않은 눈치다. 총선 패배와 김문수-오세훈 등 비박계 후보들의 낙선으로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할 동력이 없던 차에 반기문이란 대권후보의 등장은 새로운 국면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개혁 방침에 김무성 대표도 최경환 전 부총리와 뜻을 같이한 것은 '반기문이란 대선 경선 경쟁자가 있어야 비박도 재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대권 도전 시사 발언으로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받으면서 정치권 전체의 대권 레이스도 조기에 달궈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친박계 측이 '반기문 대망론'에 더욱 불을 지피는 반면 야당은 자질 검증 의혹 논란 등을 제기하며 '반기문 흠집내기'에 나설 가능성이 다분하다. 반 총장이 험악한 야바우 정치꾼들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전날 제주포럼 행사에는 새누리당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 등 여당 중진 의원들이 상당수 다녀갔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지자 야권이 벌써부터 반기문 대망론을 경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야당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을 비판하며 반기문 깎아내리기에 나섰다.

    대권구도가 한방에 뒤바뀔 조짐이 보이자 야권의 불안한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반 총장의 제주포럼 참석을 계기로, 반 총장이 향후 여론조사에서 여야 대권후보 1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치권은 반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반 총장은 오는 27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미에현 이세지마에서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아웃리치 회의(각국 정상, 국제기구장 포함 확대회의)에 참석한뒤  28일 한국으로 다시 입국해 서울에서 가족들과 개인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권 출마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만큼, 반 총장이 이번 방한 일정에서 여권의 유력 인사와 접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