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潘基문 총장, "대망론이 자랑스럽다."

    潘基文 총장에게 泥田鬪狗의 정치를 권한다.

    趙甲濟     
      
    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임기 종료 후)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을 그때 가서 고민·결심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대통령 출마의 뜻을 비쳤다.

    潘 총장은 이날 오후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언론인 간담회에서 '지금까지는 유엔 여권을 갖고 있지만 내년 1월1일에 저는 이제 한국 사람이 된다'며 아래와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국가나 너무 분열돼 있다. 정치지도자가 국가 통합에 나서야 한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쟁, 계파, 지역 분열을 누군가가 없애야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제가 대통령을 한다는 것은 예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솔선수범하며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제가 그런 (출마 관련) 말을 안했는데 자생적으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 대해 개인적으로는 '제가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헛되게 살지는 않았고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 국내에서 나의 퇴임 후 거취를 놓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임기까지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한다. (고령인 점에 대하여) 제가 1년에 하루도 아파서 결근했다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도 없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파서 결석한 적은 없다. 체력은 별 문제가 안된다. 미국에서 대통령 나오는 사람들이 민주당의 경우 전부 70대이다. 가족간에 이야기가 달라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정도 발언이라면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그의 말대로 가족이 반대하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 정치판은 泥田鬪狗의 정글이지 紳士道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가장 넓은 규모의 세계 정치 무대 한 복판에서 10년간 山戰水戰을 다 겪은 그가 한국 정치의 속성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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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潘基文 총장에게 泥田鬪狗의 정치를 권한다(5월1일 작성)

    나는 지난 주 MBC 100분 토론회에 나가 '潘基文(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의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이 본인으로선 泥田鬪狗(이전투구)를 하는 것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좋겠다'고 말하였다. 金武星(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총선 직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차기 대선 출마설이 나오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반 총장이 (대선 출마) 생각이 있다면 자기 정체성에 맞는 정당을 골라 당당히 선언하고 활동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감이 잘 안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었다. “새누리당은 (반 총장을) 환영한다”고도 했다.

    政街의 일반적 관측으론 박근혜 대통령이 潘 총장을 영입, 새누리당의 친박세력이 그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도록 할 것이며, 공천도 이를 위한 整地(정지)작업이란 분석이 유력하였다. 새누리당이 패배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약진한 반면,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들은 거의 전멸한 지금, 반기문 총장의 行路는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1. 그가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說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중국의 戰勝節 행사에 참석하고 年末엔 북한 방문을 추진한 것이 유력한 단서이다.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도 강력한 권력의지의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가 있다.
    2. 그러나 그가 독자적 정치세력을 구축, 출마하기란 불가능하다. 현존하는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약화되었지만 국민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안철수, 문재인 씨가 있어 반기문 총장을 영입할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감들이 총선으로 약화된 것이 오히려 반 총장을 더 필요로 하게 된 면도 있다.

    3. 그렇다고 친박세력이나 박 대통령이 나서서 반기문 총장을 영입하는 것은 逆風(역풍)을 부를 것이다. 당장 '반기문은 박근혜의 아바타'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번 총선으로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된 친박세력은 새로운 보수정권을 창출하는 데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다. 누가 반기문 총장을 새누리당으로 끌어올 것이냐가 문제이다. 새누리당의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반기문 총장을 찾아가 '우리 당에 들어오셔서 정정당당하게 한 판 합시다'라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4. 반기문 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 정당은 없다. 한국에서 가장 힘 센 자리는 쟁취하는 것이지 추대 받아서 앉는 자리가 아니다.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에 들어오더라도 치열한 競選(경선)을 치러야 한다. 潘 총장이 새누리당 경선에서 압승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이기든 지든 해야 보수정권 재창출의 길이 열릴 것이다. 드라마 메이커가 킹 메이커가 된다. 

    5. 반기문 총장이 한국 정치에 몸을 싣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첫째, 그는 10년간 세계 頂上級 외교를 경험한 사람이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주요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인물이다. '세계 정세를 높은 수준에서 정확히 이해한 사람'(미국 대사 무초)이란 평을 받은 李承晩 이후 처음으로 1급 외교관이 핵위기 속의 한국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 意義를 가진다. 

    6. 폐쇄적인 한국 정치에 국제적 시각을 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총선 쟁점으로 핵문제가 완벽하게 무시될 정도로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국내 문제, 특히 복지에 집중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은 안보, 외교뿐 아니라 경제와 복지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안목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저급한 한국 정치의 닫힌 談論(담론) 구조에 청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특히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남다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청년, 바보, 그리고 바깥에서 온 사람'이란 말이 있다.

    7.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후보군 여론조사에서 늘 1, 2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국제무대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에서 뛰고 있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과 평가일 것이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한국 대통령도 통역 없이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도 있다(영어 공부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나라에선 이제 그런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되었다). 둘째론 국내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기대이다. 반듯한 사람에 대한 希求(희구)라고 할까? 세 번째는 충청도 출신 대통령 待望論(대망론)이다.

    8. 역대 11명의 대통령 중 박정희, 전두환, 최규하를 뺀 8명이 국회의원 출신이다. 미우나 고우나 국회는 대통령의 産室이다. 11명 중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7명이 경상도 출신이다. 호남 출신이 1명(김대중), 서울 출신이 2명(이승만, 윤보선), 강원도 출신이 1명(최규하)이다. 유권자의 약 16%를 차지하는 충청도는 아직 대통령을 내지 못했다.
    9. 대통령 선거는 지역 구도가 중요한데 경상도가 기반인 새누리당이 반기문 총장을 후보로 내면 충청도와 경상도 연합구도가 된다. 경상도 유권자가 약 32%이니 충청도 16%를 더하면 합 48%의 안정적 지지기반이 형성된다. 이념적으론 보수 중도층이 기반이다.
     
    10.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하여 머슴 행세를 하는 사람이다'고 했다. 문제는, 엘리트 관료 출신인 반기문 총장이 진흙탕을 길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적 인간'인가의 與否(여부)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지만 관료적 체질은 선거판에서 毒이다. 潘 총장은 유엔사무총장을 10년간 수행함으로써 대성공한 관료라는 기록을 확실하게 남겼다. 그 경험을 살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老後를 편안하게 명예롭게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역사적 인물'이 되려면 '큰 정치인', 즉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핵문제를 해결하고 자유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이 반기문 총장과 같은 국제적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大義와 그에 따른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潘 총장은 泥田鬪狗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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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秘話/ 존 볼튼 대사 회고록, “미국이 반기문을 유엔사무총장으로 만들었다”

    볼튼 미국 대사가 총대 메고 표 몰아주다. 否票 던진 일본도 설득. 부시, 당선된 반기문에게 反美的 사무차장 축출 당부.

    조갑제, 김영남       
     
    2015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朴槿惠(박근혜)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라는 질문에 “국제사회에서 여러 나라 지도자를 만나도 반 총장이 성실하게 유엔 사무총장직을 잘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여러 언론기관의 年初(연초) 여론조사는,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인물로 潘基文(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꼽았다. 물론 潘 총장은 올해 말에 10년 임기가 끝나면 정치를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은 '압도적 지지'가 증명한다. 이런 지지율을 가지면 보통 사람도 욕심을 가질 터인데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가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라 大權(대권)에 야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해온 사람이란 흔적이 많다. 드러난 모습이 부드럽고 외교관이란 직업이 한국에선 非정치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가 지닌 '권력의지'가 과소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잘 아는 이들의 그에 대한 평은, '엄청 부지런하고 누구에게나 잘 하는 사람'이란 데 일치한다. 그의 위, 아래, 곁에서 일한 이들 중 그의 인간적 약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겠지만 '큰 뜻'을 품은 이의 계산적 행태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반기문 총장이 국내 상황을 의식하여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추리를 가능하게 한 일은 訪北(방북) 추진이었다. 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2월 16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관리들과 나의 방북에 대해 논의 중이며, 이른 시일 내 합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 DPRK(북한) 당국과 논의 중'이라며 '양측이 서로 편리한 날짜를 가능한 한 빨리 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서 “한반도의 평화·안정과 화해를 위해 사무총장직을 활용해 어떤 일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
      
      유엔사무총장이 북한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유엔 총회가 압도적 표로써 김정은 일당을 국제법상의 反인류범죄집단으로 규정, 유엔 안보리에 그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건의해놓은 상태였다.
       潘基文 총장이 국제범죄 집단인 북한정권에 訪北을 간청하는 모습이 되면 김정은은 이를 역이용하려 들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독재자는 임기가 있는 선출직 공직자를 조종하기 쉽다. 독재자는 시간이 많은데, 선출직은 임기 내에 인기나 得票(득표)에 유리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지난 1월6일 북한의 핵실험은 潘 총장에게는 다행이었을지 모르다. 만약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평양에 가서 김정은을 만나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고 돌아온 뒤 핵실험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 총장을 새누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밀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두 사람이 유달리 친밀하고 상호 협조적이다. 年初 반기문 총장이 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韓日 합의를 높게 평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朴 대통령은 潘 총장이 주도한 세계 기후 협약의 성과를 칭찬하였다.
       반기문 총장이 정치를 하겠다면 기존 정당을 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외교부 장관으로 중용하고 유엔사무총장으로 밀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선을 계승한 더불어민주당인가, 새누리당인가? 반 총장의 이념적 성향과 출신 지역, 그리고 朴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종합하면 새누리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親朴세력이 중심이 되어 반기문 총장을 새누리당으로 영입, 김무성 대표와 競選(경선)을 붙이면 재미 있는 게임이 된다. 반기문 총장은 충북 출신이다. 대통령 선거를 결정 짓는 가장 큰 요인은 지역구도이다. 本籍(본적)을 기준으로 하면 충청도 출신은 전체 유권자의 약 16%이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기 기반인 경상도 유권자는 약 31%이다. 호남은 약 25%.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가 되면 경상도와 충청도 연합전선이 형성되는데 전체 유권자의 약 47%이다.
     
      반기문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으로 유엔사무총장이 된 면도 있지만 유엔의 내부 사정을 이해하는 이들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역할이 보다 결정적이었다고 평한다. 유엔사무총장을 뽑는 일은 유엔안보리의 고유 권한이고, 그중에서도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 그 중에서도 유엔의 호스트 국가인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반기문 총장이 反美的 성향이 강한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美 대사의 회고록 ‘항복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 유엔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지키다(Surrender is Not An Option: Defending America at the United Nations and Abroad)’ 10장에는 2006년 당시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潘基文(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는 과정의 秘話(비화)가 담겨 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이었다. 임기 1년을 앞두고 코피 아난은 ‘석유-식량’ 스캔들에 휘말렸다.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이라크에 대한 人道主義(인도주의)적 지원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금융제재로 인해 합법적 석유 수출이 불가능했던 이라크에 돈 대신 음식으로 代價(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돈으로 석유를 구매하면 이라크가 軍費(군비) 확장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피 아난의 아들인 코조 아난이 아버지의 지위를 남용, ‘석유-식량’ 프로그램의 관계자로 이름을 올린 뒤 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액수는 몇만 불 수준이었고 내부 조사결과 코피 아난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유엔 회원국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유엔이 腐敗(부패)했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점, 즉 改革(개혁)이 불가피한 시점과 새로운 사무총장 선출 시기가 겹친 것이다.
     
      2006년 사무총장 선출 당시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나올 차례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사무총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흔히들 알고 있지만 이는 정해진 규칙은 아니다.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국가들이 결정, 총회의 추인을 받는다. 안보리에 속하지 않은 유엔 회원국들은 후보를 등록시키는 것 이외에는 선출에 있어 실질적 권한이 없다.
     
      1991년 이후 아프리카 출신 사무총장 두 명이 15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임기는 5년이다. 존 볼튼에 따르면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아시아 국가들이 밀어줬으며 다음 번에는 아프리카가 아시아 후보를 도와주기로 했다고 한다.
     
      2006년 당시 사무총장 후보로는 태국 부총리를 지낸 수라키앗 사티라타이, 스리랑카 출신으로 駐워싱턴 대사 및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을 역임한 자얀타 다나팔라, 인도 국적으로 유엔 사무차장에 올랐던 샤쉬 타로어가 거론됐다. 존 볼튼은 이들 후보들에게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티라타이의 경우는 그냥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미지가 짙었다. 다나팔라의 경우는 동남아 국가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도의 지지가 필요했지만 인도가 자체적 후보를 내면서 사실상 가능성이 사라졌다.
     
      가장 유력했던 후보는 인도의 타로어였다. 하지만 볼튼은 타로어의 사상과 이념이 미국이 추구하는 유엔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설명했다. 타로어는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을 비난해왔다. 一例(일례)로는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이다. 그는 칼럼에서 인도의 대표 스포츠인 “크리켓과 (미국의 대표 스포츠) 야구의 차이는 微積分(미적분)과 단순 덧셈 뺄셈의 차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인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가고 싶은 야심이 있던 국가였다. 하지만 인도 출신이 사무총장에 오르는 것은, 유엔에서 不文律(불문율)로 지켜지던 ‘강대국은 후보를 내지 않는다’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파키스탄의 反撥(반발)도 거셌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반기문 이름이 거론됐다. 반기문은 외교관을 지내며 뉴욕과 워싱턴 등에서 근무하는 등 전형적인 ‘미국통’이었다. 볼튼은 조지 부시(41대,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한국과 북한이 동시 유엔 가입을 할 때 반기문과 같이 일을 한 인연도 있었다고 했다.
     
      볼튼은 2005년 8월 뉴욕을 방문한 반기문과 만나 北核과 6자 회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반기문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유엔 개혁 방안 등을 털어놨다고 한다. 반기문씨의 구상을 들은 볼튼은 그의 생각이 미국이 추구하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고 자신의 책에서 회고했다.
     
      반기문은 2006년 초 다시 뉴욕을 방문해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부 장관 등과 회동했다. 이날 반기문은 미국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볼튼에 따르면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이 누구를 적극적으로 밀어줄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6월, 라이스는 볼튼에게 반기문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볼튼은 회고록에서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6년 4월 나에게 자신은 강력한 사무총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썼다.
     
      2006년 7월25일,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 간의 1차 비공식 투표가 있었다. 이날 반기문이 찬성 12표, 인도의 타로어가 10표를 받아 1~2위로 조사됐다.
     
      볼튼은 2006년 9월18일에 있었던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중국의 리 외무장관의 회담에서 두 나라가 반기문 장관을 총장으로 밀기로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결론이 났다고 썼다.
     
      같은 해 9월 14일 열린 비공식 투표에서 반기문은 찬성 14표, 반대 1표를 받았다. 10표를 받은 타로어와의 격차는 4표로 늘었지만 볼튼은 반대 한 표가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만약 거부권(veto)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가 반대를 한다면 사무총장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볼튼은 중국 측 대표와 얘기를 해본 결과 중국은 반기문에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볼튼은 반대표가 한국과 각종 외교적 마찰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했다.
     
      반기문은 볼튼을 만나 반대표가 가나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은, “나에게 반대표를 낸 사람이 타로어에게는 찬성표를 던졌다. 타로어는 코피 아난이 밀어주는 사람이다. 타로어가 아난의 치부를 낱낱이 밝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볼튼은 중국과 상의해본 결과 반대표는 일본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반기문에게 말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은 자신이 직접 일본 측과 대화를 해봤으며 그들이 반대표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볼튼은 자신이 직접 일본 대표와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책에서 설명했다.
     
      켄조 오시마 일본측 유엔 대표는 볼튼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점을 시사했다. 볼튼은 이미 大勢는 반기문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반대를 한다고 하면 외톨이가 될 뿐이라고 조언했다. 오시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10월에 방문할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투표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열린 예비 투표에서 반기문은 찬성 14표, 기권 1표를 받았다. 일본의 반대표가 기권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튼은 추측했다. 다른 후보들은 하나둘씩 사퇴 의사를 밝혔다.
     
      10월 9일 열린 안보리 정식 투표에서 단독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반기문이 선출됐다. 이날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날과 겹친다.
     
      10월 13일 볼튼을 만난 반기문은 북핵 문제 때문에 외교부장관직을 빨라야 11월에나 그만둘 수 있다고 했다. 볼튼은 반기문에게 고위직 임명과 관련해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미국은 유엔의 행정조직에서 평화유지활동(DPKO) 임무를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볼튼은 안보리가 추천한 반기문 장관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한 유엔 총회에서 반 총장이 한 연설 일부를 자신의 책에서 소개했다. 반기문은 1950년 북한의 南侵(남침) 이후 유엔이 준 도움 등을 언급했다. 볼튼은 이날 취재진에게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킨 한국과, 핵실험이나 하고 있는 북한과의 차이에 대해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10월 17일 반기문은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조지 부시는 이날 반기문에게 미국이 평화유지 활동을 관리하고 싶다고 했다고 볼튼은 전했다. 반기문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지만 부시는 유엔의 개혁을 요청하였다. 참모진을 확 바꿨으면 한다고 했다. 부시는 특히 유엔사무차장인 말로흐 브라운(영국인)을 특정, 그를 '반미주의자'로 부르면서 쫓아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부시는 유엔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임기를 이제 1년 남짓 남겨둔 반기문 사무총장의 최대 업적은 아무래도 지난해 말 채택된 ‘파리 기후변화 협약’이다.
     
      온실가스 문제를 비롯한 기후변화 대책은 일부 기업의 生死(생사)와 관련되기 때문에 모든 국가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潘 사무총장은 지난 9년간 북극과 남극, 아마존과 태평양 국가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기후변화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반기문은 “가난을 끝내는 첫 세대, 지구 온난화를 막는 마지막 세대가 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각국 언론들은 파리 협정의 최대 공로자로 반기문 사무총장을 꼽았다. 협정 채택 이후 195개국 중 187개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한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이었다. 반 사무총장은 年末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파리 협정을 유엔의 대표적인 성과였다고 밝힌 바 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