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사실상의 대권도전' 선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도에서 있은 관훈클럽 토론회를 통해
    '사실상의 대권도전' 선언을 했다.
    그는 말했다.
    "내년 1월 1일 귀국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겠다."
    "지도자는 국가통합을 해야 한다. 계파, 지역 분열은 누군가가 없애야 한다."
    "내 연령과 체력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
    "이런 뜻을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알렸다"

  •  한 마디로,
    박근혜 대통의 축복을 받는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왜 지금이냐?”의 타이밍이 우선 주목된다.
    지금은 어떤 때인가?
    새누리당이 리더십의 붕괴로 콩가루 집안이 된 때이다.
    이런 몰골을 지지부진 계속 끌어가다간 현 집권세력은 그야말로
    ‘동반 자해(自害)+국민의 단죄=죽음’을 맞이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새누리당 안에는 지금 대통령 후보감이 단 한 명도 없다.
    김무성은 여론조사에서도 멀리 멀리 밀렸고, 깊이깊이 추락했다.
    ‘무슨 수’라도 내야만 할 판이었다.
    그 ‘무슨 수’가 바로 반기문 등판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반기문 총장 영입만으로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 헤게모니가 회복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이 아무리 죽을 쒔어도 반기문 한 사람만 내세우면 모든 게 저절로 풀릴까?
    다 무너진 집 바닥엔 쓰레기만 잔득 쌓여 있는데,
    그 위에 반기문 총장 한 사람만 달랑 갖다 놓으면 오케이냔 것이다.

    반기문 이전에 그래서 새누리당부터 먼저 쇄신하고 재정비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당이 무슨 수로 쇄신되고 재정비 된단 말인가?
    유력한 리더, 스타, 카리스마가 없으니
    누가 “이렇게 하자”고 선창한들 그게 먹히겠는가?
    그리고 친박, 비박 어쩌고 하는 계파들이 웅크리고 있는 한
    반기문은 뿌리 없는 나무로 겉돌 수도 있다.

     반기문 총장은 김연아처럼 한국인의 꿈을 실현한 캐릭터 중 한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자리는 누가 시켜주는 자리기 아니라,
    스스로 역사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생사를 걸고 쟁취하는 자리다.

    반 총장이 그럴 수 있을까?

    2017년 1월 1일 이후 그는 그걸 입증해 보여야 한다.
    상대방(야권)은 이미 “그는 고건 전 총리처럼 될 것이다”라고 벼르기 시작했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려 주저앉을 것이란 엄포다.
    반 총장은 이런 험악하기 짝이 없는 야바우 판에서
    과연 총검술도 하고 백병전도 할 수 있을지,
    이게 향후의 주목 거리일 것이다.

     반 총장은 또 계파싸움, 지역주의를 초월해 국가적 통합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당위(當爲)는 누구나 다 한 번 씩 해 온 이야기다.
    그리고 말로 될 일도 아니다.
    계파들이 “해산을 명하노라”고 해서 해산할 것도 아니고,
    지역주의 역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반 총장을 띄우는 이른바 ‘충청 대망론’이란 것 자체가 그중 하나 아닌가?

     자유주의-보수주의 진영 유권자들은 지금
    “케 세라 세라(될대로 돼라)의, 일종의 허무주의적이고 냉소적인 심사에 젖어 있다.
    표를 주려야 줄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의 등장이 과연 이 빈 공간을 메어줄 수 있을까?
    반 총장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년 1월 이후
    자신이 과연 자유주의-보수주의 유권자들의 지향에 얼마나,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지를 선보여야 한다.

     경제정책이야 다소 신축성을 가져도 괜찮다 하더라도,
    안보 분야에서는 그가 얼마나 원칙주의적인 입장을 취할지가 최대의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인도적인 남북교류야 누구나 의례히 해왔고 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는 김정은 집단에 대해
    그가 과연 어떤 철학, 역사관, 세계관, 그리고
    국방 관(觀)을 가지고 임할 것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국가통합’은 물론 당위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정치의 세계란 가치관과 가치관, 신념과 신념이
    맞붙어 싸우는 장(場)이란 점도 유념해야 한다.
    이걸 유념하지 않고 덮어놓고 ‘통합’만 강조하다 보면
    언젠가는 상대방의 독하고 모진 도전 앞에서 환멸만 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지장은 마주잡아야만 들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마주잡기를 거부하면 그 땐 어쩔 셈인가 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폄하하는 측에 대해선 또 어떤 향배를 취하고 있는지,
    미국-일본-중국사이의 고차방정식 앞에선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등등에 관해
    그가 자유주의-보수주의 유권자에게 분명한 어조로 설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다음 유권자들의 피드백(feed back)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내 친구는 누구이고 나를 적대하는 측은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아보고 설정하는 일이다.
    표를 얻기 위한 수사학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은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반기문 총장은 스스로 누구의 친구라고 생각하는가?
    누구를 대표할 작정인가?
    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지목하는가?
    이걸 잘못 짚어 실패하는 정치인 여럿 보았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