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 팔아 목소리 내는 저렴한 행태, 산 자를 위한 고민 필요한 때
  •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조선의 수많은 백성이 죽었고, 국토는 유린됐다. 국난은 백성들의 의병으로 극복했건만, 전쟁통에 어디 가 있었는지 모를 양반들은 때아닌 장례절차로 권력다툼을 한다. 예송 논쟁이다.

    상복을 3년을 입느냐, 1년을 입어야 하느냐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서로 갈려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때 예송논쟁에 대한 후사의 평가는 다양하다. 하지만 도탄에 빠진 '살아남은 백성'보다 죽은 왕과 왕비의 장례에 국력을 낭비했다는 점은 오늘날에 와서 쉽게 납득할만한 문제는 아니다.

    예송 논쟁의 본질을 단순히 예절(禮)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성리학 국가' 조선에 비춰 바라볼 일은 아니다. 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 대신 왕위에 오른 효종(봉림대군)의 정통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나라가 혼란할수록 그리고 민생이 어지러울수록 유독 한국 정치는 '망자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인류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 북한이 그렇다. 3대 세습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져도 김일성 추종과 신격화에 국력을 쏟아붓는다. 정의(定義)라는 명분을 가지지 못한 추악한 전체주의 망령들이 정통성이라도 내세우려는 본능이다.

  • ▲ 김정일 장례식 장면 ⓒ 연합뉴스
    ▲ 김정일 장례식 장면 ⓒ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치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진보라 자칭하는 야당이 그렇다. 이미 죽은지 7년이 지난 김대중-노무현에 집착한다. 아직도 동교동계, 친노계라며 망자의 이름이 판을 친다.

    호남이 나를 버리면 정계도 떠나겠다던 문재인.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봉하마을에 버젓이 나타났다. 이해찬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상주는 문재인이 자처했다.

    이해찬의 선도(先導) 분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곧바로 자신이 추도식을 주도했다. 이해찬 이사장이 권양숙 여사와 회동을 위해 사저로 들어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꿰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는 문재인보다 앞에 있었는데 어느새 자리가 바뀌었다.

    문재인은 늘 망자 정치에 강했다.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한 노무현 정부 실패 책임은 이해찬-한명숙이 지고 폐족의 사약을 받았지만, 노무현 서거에 대한 반사 이익은 문재인이 모두 자기 품으로 안았다.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분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분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세월호 참사도 알고보면 문재인의 성역이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이 칩거를 풀고 재기에 성공한 동력이 세월호 추모 정국이었다.

    안철수-김한길에 당권을 내주고 기회만 노리던 문재인은 광화문 단식 투쟁이 벌어지자 갑자기 자신도 단식을 하겠다며 나섰다. 기자회견을 하기도 멋쩍었기에 그냥 문자 한통 여기저기 돌리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거기서도 상주를 자처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파문이 격해질때도 끊임없이 재기를 노리는 정치 행보를 간간히 보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는 달랐다. 문재인에게 다시 당권을 안겨줬고, 그 당권을 휘둘러 안철수와 동교동계를 쫓아냈다. 역시 문재인에게 '망자 정치'는 기회이자 장기(長技)였다.

  • ▲ 김영오 씨를 만나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재인 의원 ⓒ 연합뉴스
    ▲ 김영오 씨를 만나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재인 의원 ⓒ 연합뉴스
    안철수도 뭐 다를까. 그토록 문재인에게 휘둘리다 결국 찾아간 망령이 DJ였다. 새해 벽두에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 큰절을 하고, 광주로 끌려가 표정관리를 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심히 부른다.

    안철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불거진 이후 "국민통합을 위해 제창해야 한다"는 짧은 메시지만 의도적으로 반복하며, 여기에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다. 5·18 묘역 주차장에서 취재진에게 둘러쌓인 채 차가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답을 주고받게 됐을 때도 뭘 물어봐도 "국민통합에 저해되는 결정이다" "국민통합에 저해되는 행동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떻게든 호남을 가져가야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대권병에 병든 안철수도 망자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정치인일 뿐이다.

  • ▲ 안철수가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 이희호 여사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뉴시스
    ▲ 안철수가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 이희호 여사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상도동 막내 김무성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서거 후 상주를 자처했다. 노태우 대통령에 반발해 당무거부를 한 YS의 과거 행보를 공천 직인 거부로 흉내냈다. 26일 현충원에서 열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에 참석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총선 이후 정치 행보 재개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고 한다. 역시 망자를 팔아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저렴한 행태다.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에 당한 20대 청년의 소식이 국민의 마음을 후벼판다. 안타까움과 분노가 서린 그 곳도 정치꾼들이 저마다 목소리 한번 내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역시나 정치인 중에서는 문재인이 제일 먼저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박원순도 질세라 '추모 현장을 보존하라'며 거들었다. 한술 더 떠 박원순은 비가 내린 24일 현장에 붙은 포스트잇이 훼손될까봐 이를 수거했고, 서울시청 지하에는 추모공간도 만들었다.

  • ▲ 서울시청 지하에 마련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추모 공간에서 박원순 시장이 추모글이 담긴 포스트잇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왼쪽 위는 강남역 현장에 붙은 안내문. 사진 왼쪽 아래는 광주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는 문재인 전 대표. ⓒ 사진 오른쪽은 뉴시스, 왼쪽 위아래는 뉴데일리 DB
    ▲ 서울시청 지하에 마련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추모 공간에서 박원순 시장이 추모글이 담긴 포스트잇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왼쪽 위는 강남역 현장에 붙은 안내문. 사진 왼쪽 아래는 광주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는 문재인 전 대표. ⓒ 사진 오른쪽은 뉴시스, 왼쪽 위아래는 뉴데일리 DB
    최근 만난 한 기자의 강남역 취재 후기에 마음이 저릿했다. 추모 열기보다 셀카 찍어 SNS에 올리는 모습이 더 많았다는 한숨이었다.

    남에게 보여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그런 가슴아픈 풍경에서 국민들도 어느새 '망자 정치'에 길들여진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들어 마음이 괴롭다.